조선왕조실록 통째로 읽기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등록 2003.08.01 10:33수정 2003.08.01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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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규 지음
박영규 지음들녘
굳이 물 건너 전해오는 눈 파란 서양인의 감탄이 아니더라도 ‘조선왕조실록’의 사료적 가치는 딱히 견줄 대상을 찾기 힘들 만큼 월등히 높다. 한국 기록 문화의 결정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나라 전체로 보면 내란과 외침이 많았고 왕조로 보자면 모함과 패륜으로 얼룩졌으며 때로는 실보다는 격을 따져 지독히도 고여 있던 조선의 자취를 남기는 글이기에 기록이 끊기지 않고 지금까지 전해졌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선조가 직접 쓴 우리의 과거를 대할 수 있음은 유구한 역사의 한민족이라는 말이 헛것이 아님을 불연 깨닫게 해 주는 감격이자 감사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가 이 감격과 감사와 직접 마주하기란 쉽지 않다. 원본을 들춰보는 것은 고사하고 영인본이라도 보겠다고 도서관을 찾아도 죄다 한문이니 충분한 한문 실력을 쌓지 않는다면 검은 것은 글이요, 흰 것은 종이로다 할 뿐이다.

번역본을 읽겠다고 마음을 먹었다고 해도 그 엄청난 분량(서울대 규장각에 따르면 '완질의 분량이 1707권 1188 책으로 약 6400만자'에 달한다고 한다. 한자 6400만자!)에 기가 죽기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가 접하게 되는 조선왕조실록의 내용은 드라마나 야사로 유명한 특정 사건이나 왕조의 암투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와 비교해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은 개략적으로나마 한글로 조선왕조실록 전체를 다루었다는데 의의가 크다.

500쪽 분량은 500년 역사를 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양이다. 그것도 인위적인 주제의식을 지니지도 않고 큰 사건의 원인을 파헤치는 부수적인 단계로서의 발췌가 아니면서도 번역이 아닌 작가의 문체로 시간 순서에 따라 역사를 써 내려갔으니 어지간한 통찰력이 아니고서는 내용의 선별조차 불가능한 조건이다.


무엇보다 딱딱한 한문 번역체가 아니라고 해도 역사를 흥미진진한 사건 중심이 아닌 나름의 역사 서술 요건에 맞추어 인물과 일반 사실에 왕조 가계도까지 포함시켰으니 자칫 읽는 재미를 잃기가 쉽다.

이런 위험 속에서 작가는 1대 태조를 다룬 그대로 즉위까지의 과정, 당시의 주요 사건과 인물, 실록 편찬 과정, 이 시대의 세계 약사라는 틀을 끝까지 유지하면서도 간결한 문체의 힘을 놓지 않아 읽는 재미를 유지한다. 덕분에 2차 역사 저술이 지닐 수 있는 사건과 인물의 편중과 그에 따르는 ‘극화’의 위험을 잘 피해간다.


고종과 순종 실록의 신빙성?

책에 따르면 두 왕의 실록 편찬은 1927년 4월에 시작해 1935년 3월에 완료'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다. 당연히 두 실록이 사초를 기본으로 한 정본이라고 보기 어렵다. 윤색과 인위적인 가감이 이루어졌으리라는 것은 불문가지다.

그럼에도 작가는 두 왕의 실록 내용을 이 책에 포함시켰다. 다른 경로를 통해 얻는 역사적 사실을 충분히 참고해 불완전하나마 실록의 끝을 보여주고 싶은 작가의 마음이 엿보인다. / 강현호
무엇보다 이 책의 뛰어난 점은 1대 태조부터 27대 순종까지의 조선왕조실록을 통째로 다루었다는 점이다.

역사는 영화나 소설에서 갈등을 집어넣어 꾸미듯 반전과 모략이 넘치는 활극의 세계만은 아니다. 오히려 태초의 인류부터 2003년의 우리까지 먹고 입고 자는 일이 맨날 지루하면서도 고달픈 일상 중에 속이 터지도록 느리게 기어가는 달팽이처럼 꾸준히 지속되는 가운데 조금씩 변화한다는 점에서 역사에 대해서는 부분이 아닌 전체를 훑어보는 게 순서다.

조선 500년을 통해 반복되는 변란과 암투, 환란과 야합의 큰 흐름을 이 책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으로 잡을 수 있다.

또한 이 책을 읽는 동안 다시 생각하게 하는 역사의 작은 진실은 후대에 잘 알려졌느냐 그렇지 않느냐와는 상관없이 당대의 인물들은 생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점이다.

태조, 세종, 문종, 세조, 연산군, 광해군, 숙종 등의 왕 뿐 아니라 인종, 명종, 현종, 경종,헌종 등의 왕 역시 선대가 남긴 후광과 문제를 다 끌어안고 살기는 마찬가지였다는 사실. 조선왕조의 유구함은 그들의 평범함 속에서 비로서 빛을 낼 수 있다.

과거는 현재의 거울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거울의 큰 맥을 꿰지 못하는 한 지금의 우리를 제대로 비출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무더위가 사람을 잡는 요즘 잘 돌아가는 선풍기 앞에서 진득하게 500년 역사를 곱씹고 반복과 느릿한 변화의 묘미를 캐 보는 건 어떨까? 조금의 인내심을 발휘할 수 있다면 500년 역사가 통째로 우리 앞에 펼쳐질 참이다.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 전면개정판

박영규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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