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理性)은 미쳤다

미셸 푸코의 <광기의 역사>

등록 2003.08.05 07:26수정 2003.09.04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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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철용

미셸 푸코의 <광기의 역사>가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은 그 제목과는 달리 광기의 역사가 아니다. 물론 푸코는 이 책에서 중세에서부터 17~18세기 고전주의 시대를 거쳐 정신분석학이 등장한 19세기에 이르기까지 광기에 대한 인식 및 구분, 광기를 둘러싼 추방 또는 감금의 관행, 광기의 치료법 등이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를 광범위한 문헌에 입각하여 실증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작업을 통하여 그가 겨냥했던 대상은 광기가 아니라 이성(理性)이었으며, 그가 드러내고자 한 역사는 광기의 역사가 아니라 광기를 감금한 권력과 이성의 결탁의 역사 또는 광기를 규정한 언어와 이성의 공모의 역사였다.


따라서 <광기의 역사>의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우리가 머리에 떠올리는 초상화는 광인(狂人)의 모습이 아니라 그 광인을 감금하고 치료한 난폭하고 교활한 간수와 의사의 모습이다.

스스로의 정상성(正常性)을 확인하는 가장 확실하고 손쉬운 방법으로써 간수와 의사들은 광인들의 감금과 치료를 발명해내었고, 광인들을 감금하고 치료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들의 지배력을 더욱 공고히 다지고 확대시켜나갈 수 있었다.

이른바 '이성의 시대'라고 하는 17~18세기 고전주의 시대에 이루어진 이러한 광인들의 감금과 치료는 당시 새로운 파워 엘리트로 등장한 부르주아들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도구적 합리주의와 세속적 도덕주의로 무장한 이들 부르주아들은 인간의 유한한 대지에서 신의 무한한 영지를 바라볼 수 있는 초월적 존재의 이미지로 지상을 떠돌던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 광인들의 항해를 중단시켰다.

17세기, 전 유럽을 강타한 경제적 위기에 대한 해결책을 찾고 있던 이들에게 거리를 떠돌던 무리들은 손쉽게 확보할 수 있는 값싼 노동력으로서 매력적인 대상이 아닐 수 없었다. 부르주아들은 마침 비어 있던 나환자 수용소에 이들 부랑인들을 감금하였고 이들과 함께 광인들 역시 감금된 것이다.

감금당함으로써 이성과 권력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된 광기는 중세를 관통하여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기까지 지니고 있었던 그 자신의 고유한 후광을 이제 잃게 되었다. 광기는 그 얼굴을 야수에게서 빌려온 동물성으로 그 지위가 격하되었으며 그에 따라 광기를 취급하는 방식 또한 동물원의 야수들을 조련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난폭한 방식이 사용되었다.


또한 광기는 비이성의 현존으로서 오류이며 동시에 죄로 규정됨으로써 광기는 치료의 대상이라기보다는 격리와 교화의 대상으로 인식되었다. 고전주의 시대의 감금당한 광인들은 인간이 아니라 한 마리의 동물로, 인간의 표지인 이성을 지니지 못한 비인간(非人間)으로 취급된 것이다.

그 감금의 문을 지키던 간수들은 고전주의 시대가 끝나가던 18세기 후반 심리학이 등장하면서 의사들의 흰 가운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하지만 그들은 광기를 정신병으로 규정함으로써 광인들을 육체적 감금으로부터는 풀어주었지만 광인들의 영혼에 도덕적 감금이라는 새로운 족쇄를 채웠다. 이성과 광기 간의 대화는 이제 돌이킬 수 없이 단절되었고, 그러한 침묵 속에 근거한 정신분석학의 언어는 광기에 대한 이성의 독백에 불과할 뿐이었다.


미셸 푸코는 누구인가

구조주의 시대가 낳은 가장 뛰어난 사상가로 평가받고 있는 미셸 푸코(Michel Foucault)는 1926년 프랑스 쁘와띠에에서 출생, 파리고등사범학교에서 철학과 심리학을 공부했다.

졸업후 스웨덴의 웁살라 대학 전임강사, 폴란드의 바르샤바 대학 프랑스 연구소장, 독일 함부르크의 프랑스 문화원장, 클레르몽 페랑 대학의 철학 교수를 거쳐, 1970년부터 1984년 사망할 때까지 꼴레주 드 프랑스에서 교수로 재직하였다.

그는 이성에 대한 확신 위에 구축되어온 서양 근대사상을 기저에서부터 뒤흔들어버리고 전혀 새로운 시각으로 인간의 역사를 재구성함으로써 1950년대 후반 프랑스의 지적 분위기를 주도한 구조주의 물결의 중심이 되었다. 질 들뢰즈는 푸코를 두고 '19세기를 벗어났다는 점에서 가장 완전하고 유일한 20세기의 철학자'라고 평했다.

그의 저서는 철학, 역사학을 비롯해서 문학비평, 언어학, 정신병리학, 임상의학, 경제학사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영역을 포괄하고 있는데, 프랑스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널리 읽히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그의 거의 모든 저서가 번역 출간되었다.

주요 저서로는 <광기의 역사>(1961)를 비롯, <임상의학의 탄생>(1963), <말과 사물>(1966), <지식의 고고학>(1969), <감시와 처벌 : 감옥의 탄생>(1975), <성의 역사1 : 앎의 의지>(1976), <성의 역사2 : 쾌락의 활용>(1984), <성의 역사3 : 자기에의 배려>(1984) 등이 있다.
이처럼 푸코는 <광기의 역사>에서 서구의 이성중심의 사고 체계에 숨겨져 있는 지식과 권력의 효과를 다루면서 서구적 이성의 기원에 대해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따라서 자신의 입지를 확보하고 세력을 확장하기 위하여 자신의 대척점에 비이성(非理性)의 대표적 화신으로서 광기를 세워 놓고 그 광기를 감금하고 치료한 이성(理性)의 역사는 우리들로 하여금 미친 것은 과연 누구인가를 진지하게 질문하게 만든다.

미친 것은 감금당한 광인들인가? 아니면 광인들을 감금하고 치료한 간수와 의사들인가? 푸코는 간수와 의사들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미침의 방식이 광인과 다를 뿐이지 간수와 의사들은 틀림없이 미쳤다!

이성(理性)은 미쳤다는 이 놀라운 반전과 역설이 <광기의 역사>가 우리에게 드러내 보이는 숨은 진실이다. 35살의 나이에 350년의 역사를 지닌 데카르트의 이성주의에 대항하여 그 어두운 이면을 들춰내는 데 성공하고 있는 푸코의 <광기의 역사>는 누군가 말한 것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낮이 어떤 밤에 둘러싸여 있는지를 깨닫게 해주는 책이다.

광기의 역사

미셸 푸코 지음, 이규현 옮김,
나남출판,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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