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기념관에서 쫓겨나는 <조선> 윤전기

분해해서 창고로 이전... '하와이 국민회' 윤전기로 교체 전시

등록 2003.08.06 16:53수정 2003.08.12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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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독립기념관 제6전시실에 전시중인 조선일보 윤전기.

독립기념관 제6전시실에 전시중인 조선일보 윤전기. ⓒ 독립기념관 홈페이지

독립기념관에 전시돼 있는 동안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조선일보 윤전기가 금년 8.15 광복절 이전에 철거돼 전시실에서 모습을 감추게 될 전망이다.

독립기념관(www.independence.or.kr)의 한 고위관계자는 6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지난 17년간 제6전시관 항일사회문화전시관에 전시돼온 <조선> 윤전기를 분해, 이전하는 작업이 내일부터 10일까지 실시된다"고 밝혔다.

<조선> 윤전기의 무게는 40톤 이상 나가기 때문에 독립기념관은 일단 윤전기를 조각조각 분해한 뒤 재조립해서 창고로 옮기게 된다. 독립기념관은 최근 업체 선정을 끝냈고, 이문원 독립기념관장의 교체전시 비용에 대한 결재도 마친 상황이다.

독립기념관은 <조선> 윤전기 대신 '하와이 대한인국민회' 윤전기로 교체 전시할 계획이다. 하와이 윤전기는 1910년부터 미주독립신문을 인쇄하는 등 항일독립운동에 사용되어왔기 때문에 <조선> 윤전기와 같은 정통성 시비를 피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 독립기념관의 희망사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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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1일] 조아세 등 독립기념관 내 <조선> 윤전기 철거 시도

반면, 1936년 일본 도쿄기계제작소에서 만든 <조선> 윤전기는 39년부터 40년까지 신년호 1면에 실린 일황 부부 사진과 총독기념사를 비롯해 내선일체론, 학도병 동원 등을 선전하는 데 이용됐었다. 이 때문에 '조선일보 없는 아름다운 세상'(조아세, www.joase.org) 등 시민단체들은 "독립을 기념하는 성지에 있어서는 안될 기념물'이라며 줄곧 철거를 요구해왔다.

이에 독립기념관 이사회(이사장 윤경빈 전 광복회장)는 지난 3월17일 서울 여의도관광호텔에서 열린 정기이사회에서 <조선> 윤전기 철거를 결정했다. 15명의 이사들 중 참석한 11명이 만장일치로 내린 결정이어서 '윤전기 철거'에 법적인 하자는 없었다.

앞서 <조선>은 이사회 결정 다음날 '6번 뜯긴 비운의 조선일보 윤전기' 등 5건의 비판기사와 사설로 이사회 결정을 맹비난했지만, 정작 윤전기가 친일언론 활동에 이용됐다는 대목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조선>에서는 "전시하지 않을 바에는 차라리 돌려달라"고 요청했지만, 독립기념관은 "한번 기증 받은 전시물을 돌려주면 유사한 요구들이 빗발칠 수 있어 반환할 수 없다"고 난색을 표했다고.


a <조선>은 3월18일자 신문에서 1개면을 털어 윤전기 철거운동을 펼친 안티조선 단체들을 비난하고, 윤전기의 '기구한 사연'을 소개했다.

<조선>은 3월18일자 신문에서 1개면을 털어 윤전기 철거운동을 펼친 안티조선 단체들을 비난하고, 윤전기의 '기구한 사연'을 소개했다.

그동안 사태전개 과정에서 한 가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이문원 기념관장의 애매모호한 태도였다. 평소 '<조선> 윤전기 철거'에 부정적이었던 이 관장은 이사회 결정이 내려진 후에도 <조선>과 한나라당의 반발 때문인지 철거를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관장은 지난달 5일에는 서울 시내의 한 레스토랑에서 전시자문위원회를 소집해 주위를 어리둥절하게 했다. 통상적으로 기념관내 전시물 선정에 관한 결정은 전시자문위에서 논의됐기 때문에 이 관장이 전시자문위를 지렛대 삼아 이사회 결정을 번복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까지 낳았다.


당시 박걸순 독립기념관 학예실장은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부인했는데,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나서야 이사회 결정이 관철된 셈이다. 조아세는 "8.15까지 <조선> 윤전기를 철거하지 않으면 이 관장에 대해 '직무정지 가처분신청'을 내겠다"고 으름장을 놓기까지 했다. <오마이뉴스>는 이같은 정황에 대한 해명을 듣고자 이 관장과 접촉을 시도했으나 전화통화를 하지 못했다.

윤전기 철거가 계속 미뤄진 배경에는 철거날짜가 알려질 경우 조아세 등 안티조선 단체들이 기념관으로 몰려와 '윤전기 철거 축하의식'을 펼칠 것에 대한 우려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임현구 조아세 대표는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그런 일은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임 대표는 "만시지탄(晩時之歎)이지만, 이제야 역사가 올바로 세워졌다. 1차 숙원사업이 일단락됐으니 앞으로는 <조선>을 '민족지'로 왜곡서술하고 있는 교과서를 바로잡는 운동에 매진하겠다"고 논평했다.

임 대표는 "친일시비, 군사정권과의 결탁으로 얼룩진 <조선>과 소속기자들이 감히 정권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말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기염을 토하기도.

독립기념관 이사회에서 <조선> 윤전기의 철거를 주창했던 김삼웅 성균관대 겸임교수(전 대한매일 주필)도 "늦게나마 이사회의 요구가 관철돼 다행이다. 조아세 등 시민단체들의 힘에 의해서 결국 친일신문을 찍었던 <조선> 윤전기가 독립운동을 기념하는 '역사의 현장'에서 사라지게 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조선> 경영기획실의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독립기념관 이사회에서 철거를 결정했을 때 <조선>은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그때와 달라진 것이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조아세의 교과서 개정운동에 대해서는 "아직 내부에서 공식 논의된 바가 없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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