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원 독립기념관장님께

독립투사 자손이 친일신문에 어찌 얼굴을 내미십니까?

등록 2003.03.02 06:43수정 2003.03.03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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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원 독립기념관장님께 한 말씀 드립니다.

3월 1일자 조선일보에 홍보전단(일명 '독자와의 대화')에 실린 인터뷰기사를 잘 읽었습니다. 3대가 독립운동가 집안이시라구요? 증조부(이남규)와 조부(이충구)께서 의병으로 일본군과 싸우다 순국하셨고, 선친(이승복)께서는 상해 임시정부의 연통제 비밀조직을 맡았고 신간회에도 주도적으로 참가하셨다는 말씀을 듣고 저는 옷깃을 여미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만큼 자랑스러운 조상을 두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요. 생각컨대 님이 독립기념관장직을 맡게 되신 데에는 조상님들의 이런 공덕도 필시 크게 작용했으리라 사료됩니다. 그런데....

a 3월 1일자 조선일보 홍보전단(독자와의 대화)에 실린 관련 기사

3월 1일자 조선일보 홍보전단(독자와의 대화)에 실린 관련 기사


한 가지 도무지 이해가 안가는 일이 있어서 감히 여쭤보고자 합니다. 이처럼 고귀하신 항일독립투사의 자손께서 어찌 조선일보같은 친일신문지 따위에 얼굴을 내밀고 이름을 의탁하십니까? 조선일보가 어떤 일을 했는지 정녕 모르시지는 않겠지요. 혹 잠깐 잊으셨을까봐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말씀드리는 것입니다만, 조선일보는 신문제호 위에 일장기를 그려넣은 총독부대변지입니다. 일본 천황의 얼굴로 1면을 도배하고, 거의 매일같이 만수무강을 기원한 반민족지입니다.

조선일보의 친일행적은 조선일보 스스로도 시인하고 있는 바입니다. 조선일보가 일본에게 강제로 폐간당했다 - 폐간의 대가로 거금을 받은 게 강제폐간일까요? - 며 끄떡하면 항일의 증거로 내세우는 폐간사가 바로 그를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동아 신질서 건설의 성업을 성취하는데 만의 일이라도 협력하고저 숙야분려(夙夜奮勵)한 것은 사회 일반이 주지하는 사실.... 조선일보는 신문통제의 국책과 총독부 당국의 통제방침에 순응하여 금일로 폐간한다"(1940.8.11)는 말을 달리 어떻게 해석할 수 있겠습니까?

'숙야분려'란, 쉽게 말해서, 밤잠도 거른 채 코피 터지게 열심히 뛰었다는 말입니다. 무엇을 위해서? 예. 일제가 부르짖은 "동아 신질서 건설의 성업을 성취하는데 만의 일이라도 협력하고저" 그랬다는 겁니다. 놀라운 열심 아닙니까? 조선일보는 자신이 일본 제국주의의 융성과 발전을 위해서 얼마나 헌신적으로 봉사했는지는 "사회 일반이 주지"하는 바라고까지 말하고 있습니다. 속된 말로, 일제에 대한 조선일보의 한결같은 충성심을 모르면 간첩이라는 거지요. 이보다 더 확실한 친일의 증거가 어디 있겠습니까?

사실이 이러한데도 조선일보는 일제에 맞서 싸웠다고 거짓을 늘어놓고 있습니다. "조선의 1면은 고난받는 민족의 얼굴"이었고 "조선의 80년은 민족사랑 외길"이었다며 역사를 농단하고 있습니다. 설마하니 관장님께서도 이런 거짓말에 속으신 것은 아니겠지요? 인터뷰 말미에서 관장님께서 지적하신 것처럼 "역사는 기록되는 것"입니다. 조선일보의 추악한 친일행적은 조선일보가 보관하고 있는 데이타베이스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부디 진실을 바로 보십시오. 관장님께서 조선일보에 얼굴을 내미시는 것을 만약 조상님들이 아신다면 어떠하시겠습니까? 필경 무덤을 박차고 나오시지 않겠습니까?

관장님께 거듭 말씀드립니다. 조선일보는 민족을 배반하고 일제에 들러붙은 친일신문지입니다. 이는 아무리 시간이 경과한다 하더라도 결코 번복될 수 없는 엄연한 사실입니다. 이제 며칠 후면 조선일보 창간 83주년(3월 5일)이 됩니다. 그때가 되면 조선일보는 아마 또다시 온갖 미사여구로 지면을 떡칠하며 일본에 맞선 자랑스러운 항일지였다고 요란법석을 떨겠지요. 일제 하에서 정간만 무려 4번씩이나 당한 신문지였다고 하면서.... 맞습니다. 조선일보가 4차례의 정간을 당한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조선일보의 항일성을 입증해 보여주는 것일까요?

역사는, 관장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전체 과정으로 판단을 해야지 몇가지만 침소봉대해서 붙잡고 늘어지는 것은 온당치 않"습니다. 조선일보가 정간을 당한 것은 이상재, 신석우, 안재홍, 조만식으로 이어지는 민족주의자들이 조선일보를 잠깐 맡아서 경영하던 꿈같은 시기(1924~1933)에 일어난 것에 불과합니다. 1933년 방응모가 조선일보를 인수하면서부터는 사정이 달라지지요. 한번 찾아 보십시오. 그 이후 조선일보가 단 한 차례라도 정간 비스무리한 것을 당한 적이 있는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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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은 조선일보가 방응모 이전에 4차례의 정간을 당했다는 것이 아니라 방응모 이후에는 그런 경우 자체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방응모가 누굽니까? 방씨 일문의 족벌신문으로 전락한 현금의 조선일보의 사실상의 창업주입니다. '창업주'라니까 이상하게 생각하실 것 같아 말씀드립니다만, 조선일보는 1933년에 재창간된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광산으로 떼돈을 번 방응모가 조선일보를 인수할 때, 조선총독부가 기존의 인가를 취소하고 새로 인가를 내줬으니까요. 이는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사실 가운데 하나입니다.


말하자면 1920년 대정친목회 앞으로 허가나서 그 전까지 존재했던 조선일보는 법적으로 없어진 거나 마찬가지지요. 그러므로 엄밀히 말하면, 1933년 이후의 조선일보야말로 조선일보의 진짜 모태며, 방응모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방씨 조선일보' 창업주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 조선일보가 자랑하는 4차례의 정간조차도 의미가 없어지게 됩니다. 이름이 같다는 것 외에 방응모의 조선일보와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되니까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시기부터 조선일보의 친일행각이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친일잡지 '조광'(朝光, '월간조선'의 전신)이 창간된 것도 이 무렵이지요.

이문원 관장님. 제 말이 혹 믿기지 않으시거든, 조선일보 기자들을 붙들고 직접 물어 보셔도 좋습니다. '조광'이란 잡지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느냐고. 조선일보 데이타베이스에 다른 건 다 남아 있는데, '조광'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는 건 무슨 연유냐고. 그리고 이것도 물어봐 주십시오. 사주 방응모가 '조광'에 '한일합방'을 "조선의 행복과 동양의 평화 위해 체결한 조약"이라고 쓴 게 사실이냐고.(1940.10월호) 이것이 과연 나라를 빼앗긴 조선사람으로서 입에 담을 수 있는 말이냐고.


사실이 이러할진대, 항일독립군을 조상으로 두신 관장님께서 조선일보 같은 친일지에 얼굴을 내미신 것은, 심하게 말씀드려서, 조상을 욕되게 하는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조선일보는 관장님의 증조부와 조부를 죽인 일본 제국주의를 위해 숙야분려한 민족배반지입니다. 에이즈균을 피하듯 멀리 하고 경계하는 게 마땅한 행동 아니겠습니까? 더욱 독립기념관을 책임지신 장으로서, 후세의 귀감을 삼기 위하여서라도 그리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조선일보 같은 신문지가 청산되지 않고 일등신문으로 행세한다는 건 민족의 수치입니다. 후손들이 이를 보고 무엇을 배우겠습니까? 나라를 배반하고도 잘 먹고 잘 살 수 있구나 이렇게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관장님께서는 인터뷰에서 "독립기념관은 겨례와 나라를 가르치는 정신교육의 장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천번 만번 옳으신 말씀입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라도 조선일보는 민족의 제단 앞에 엄히 단죄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떻습니까? "역사의식과 민족정신을 고취"해야 할 독립기념관 안에 일제의 주구노릇을 했던 조선일보의 윤전기가 항일의 상징인냥 버젓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어찌 통탄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a 독립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는 조선일보 윤전기

독립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는 조선일보 윤전기


관장님께선 "최근 일부 안티조선 단체가 독립기념관에 전시 중인 일제시대 조선일보 윤전기를 철거하라는 요구를 하고 심지어 법원에 전시금지 가처분신청과 국회청원까지 낸 일이 있는데 이에 대한 독립기념관측의 입장은 무엇이냐?"는 조선일보 기자의 물음에 "시민단체가 기념관이 전시하는 유물이나 유품에 대해 잘못된 부분은 시정을 요구할 수는 있으나 전시물을 철거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봅니다"고 답하셨습니다. 또 "일제시대 물건은 모두 철거해야 하는 것입니까? 조선총독부 건물을 헐어서 기념관에 재현해 놓고 있는데, 그것들을 철거하라는 주장은 왜 안하는지 모르겠습니다"고 말씀하시기도 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씀에 일리가 없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여 긴히 제안드리건대, 조선일보 윤전기를 철거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 그것을 이전처럼 전시하되 그 앞에 '일제 찬미에 앞장섰던 조선일보의 윤전기'라는 설명문을 써 붙이는 것은 어떻습니까? 200여명에 달하는 인명을 앗아간 대구지하철 참사현장마저 후세의 경계를 삼기 위해 보전하자는 말이 나오는 마당에, 친일신문 조선일보의 윤전기를 전시 못할 이유도 없지요. 설명만 바르게 돼 있다면 말입니다. 관장님께서도 앞서 "기념관이 전시하는 유물이나 유품에 대해 잘못된 부분은 시정을 요구할 수는 있다"고 말씀하셨으니, 크게 잘못됨은 없을 것입니다.

이문원 관장님.

a 지난 3월 1일 '조아세'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문제의 조선일보 윤전기를 철거하기 위해 대형 기중기를 동원, 눈길을 끌었다.

지난 3월 1일 '조아세'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문제의 조선일보 윤전기를 철거하기 위해 대형 기중기를 동원, 눈길을 끌었다. ⓒ 2003 심규상

이만 글을 맺을까 합니다. 혹 제 말이 너무 과했다면 너그럽게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민족을 배반한 조선일보 따위가 8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처단되기는 커녕 대한민국의 '정통' 내지는 '주류'로 자처하는 것을 정말이지 저는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것을 머리에 떠올리기만 해도 당장 제 심장에 불이 붙고, 온 몸에 피가 거꾸로 역류하는 듯 합니다.

이문원 관장님. 재삼 재사 고언컨대, 나어린 후학의 말이라고 멸시하지 마시고, 자랑스런 항일투사를 조상으로 두신 분답게 친일반민족신문 조선일보를 응징하여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에 힘을 보태 주십시오.

독립기념관은 대한민국의 얼굴입니다. 조상의 얼이 살아숨쉬는 민족의 도량입니다. 민족의 고난을 외면하고 강자의 품에 안겨 호의호식을 일삼은 조선일보 윤전기는 독립기념관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흉물 중의 흉물입니다. 당장 철거해야 마땅할 터이나 그 과정에 무리가 있어 힘들다면, 조선일보의 친일죄상을 바르게 기록한 설명문을 그 앞에 붙여 후손들에게 진실을 바로 알리는 것도 역사를 바로 세우는 한 방편이 될 것입니다. 그것이 항일조상을 두신 관장님께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 사료되어 이처럼 간곡히 말씀드리는 것이니 부디 혜량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내내 건강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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