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공화국' 국민으로 살면서

버릴 때, 사용할 때 한번만 더 생각해 보는 여유 있었으면...

등록 2003.08.09 08:39수정 2003.08.10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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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즘은 공공장소 어디를 가나 자판기를 쉽게 볼 수 있다. 나는 어딜 가든 자판기 앞에는 거의 얼씬도 하지 않는다. 아는 사람이 반가운 인사와 함께 차 한잔 대접할 뜻을 표해도 거의 사양을 한다. 세상에 나 같은 사람만 살다가는 자판기 장사들은 망해 먹기 딱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때로는 슬며시 미안해지는 마음도 생긴다.

자판기와 굳이 거리를 두는 것은 내가 당뇨환자이기 때문만이 아니다. 당뇨병을 모르고 살던 시절에도 자판기는 내게 별로 친숙한 사물이 아니었다. 자판기를 이용하다보면 어쩔 수 없이 일회용 컵을 사용해야 하는데, 단 한 번 쓰고 버리는 그 행위가 내게 늘 묘한 부담감을 주는 탓이다.

일회용 컵이 한 번 쓰고 버리도록 만들어진 물건임을 모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늘 그 일회용이라는 이름에서조차 심한 반감을 느끼곤 한다. 한 번 쓰고 버리는 행위에 쉽게 동참해 버리는 것도 싫고, 내가 한 번 쓰고 버린 물건이 시시각각 버려지는 그 무수히 많은 물건들 속에 그대로 포함된다는 것에서도 이상한 부담감을 갖는다.

다행히 요즘은 생수통을 놓고 있는 곳이 많다. 생수통의 물을 마시는 일은 부담감이 덜하다. 같은 일회용 물건이긴 하지만 컵이 아닌 종이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한 번 쓰고 버리는 행위야 같지만, 그 버리는 물건의 질량이 다르다 보니 버리는 부담감도 적은 것 같다.

어제는 며칠만에 우체국에 갔다. 일을 마치고 물을 마시려고 보니 우편물 접수 창구 바로 옆에 설치되어 있는 유리병 안의 물 색깔이 달랐다. 인삼 물이라고 했다. 호기심과 욕구가 동했다. 그런데 종이 딱지는 없고 일회용 컵이 옆에 놓여져 있었다. 잠시 망설이고 있자니 여직원이 "마셔 보세요. 아주 좋다고들 하세요."라고 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일회용 컵 하나를 집어들고 인삼 물을 빼서 마시며 여직원에게 말했다.

"달지도 않고 맛이 좋긴 한데, 내가 우체국에 올 때마다 이 맛있는 인삼 물을 마시려면 도리 없이 이 일회용 컵을 사용해야겠지?"
"그래야겠죠. 근데 왜요?"
"이 일회용 컵을 사용할 때마다 꼭 죄를 짓는 기분이란 말야."


우체국 여직원은 말없이 웃었다. 내 말 뜻을 이해하는 것 같은 눈치여서 슬쩍 고마운 마음도 들었다.

그런데 인삼 물을 마시고 나서 그 일회용 컵을 버리려고 큰 쓰레기통의 뚜껑을 열고 보니 그 안에 일회용 컵이 반도 넘게 차 있었다. 죄 짓는 마음이 더욱 크지 않을 수 없었다.

몇 년 전에 <일회용 면도기에 대한 집착>이라는 단편소설을 발표한 적이 있다. 일종의 환경소설인데, 그 소설에 등장하는 에피소드처럼 나는 지금도 대중목욕탕에 갈 적마다 일회용 면도기를 사지 않는다. 사지 않아도 목욕탕 안에서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이 한 번 쓰고 버린 면도기를 주워 씻어서 사용한다는 얘기인데, 그걸 나 역시 한 번만 사용하고 버리는 것도 아니다. 집에 가지고 와서 서너 번은 더 사용을 한다.

한 번은 일년 동안 사용하고도 남을 만큼의 일회용 면도기들을 주워 가지고 와서 집의 욕실에 보관을 해놓았다가 아내에게 들켜 약간의 트러블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그 후로는 아내도 모른척 해 준다.

일회용 면도기 뿐만이 아니다. 때밀이 수건도 남이 한 번 쓰고 버린 것을 주워서 사용하고 다음을 위해 집에 가져오기도 한다. 한번은 아내가 "내가 목욕 수건을 미처 챙겨 드리지 못했는데, 어떻게 사셨나보네요?"라고 해서, "내가 샀거나 남이 샀거나 산 건 산 거지 뭐. 오늘 산 것이라 아주 새 것이야"라고 농을 한 적도 있다.

일회용 물건을 부담 없이 쉽게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나 한 번 쓰고 버리는 행위에서 죄스러움을 느끼는 것 따위가 현실 생활에서는 불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 역시 내가 평생동안 애써 지니고 살아야 할 '양심'의 범주에 능히 속할 것이라는 생각을 떨쳐 버리지 못한다.

(2)

이 인터넷 세상에서도 나는 종이 신문을 여러 개나 구독한다. 중앙일간지 2개에다가 지방일간지 1개, 그리고 주간지가 네 개나 된다. 중앙일간지 하나는 보고 싶지 않은 신문인데도 순전히 초등학교 동창인 지국장 친구의 안면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보는 것이고, 주간지들은 모두 우편으로 온다. 아무튼 비좁은 내 집의 구석에서 신문더미는 쉽게 쌓이는 편이다.

우편물도 꽤 많이 받는 편이다. 우리 집에 거의 매일같이 오다시피 하는 집배원이 하루는 "제가 갖다 드리는 우편물이 일년에 트럭으로 하나는 될 텐데 그걸 다 어떻게 처리하십니까?"하고 물은 적도 있다.

신문들과 함께 우편물들을 처리하는 데는 사실 약간의 고심과 노고가 따른다. 신문 속에는 거의 매일 상당량의 광고 전단지가 끼어 들어온다. 전단지들은 대부분 코팅이 되어서 재생지로 만들 수 없는 것들이다. 재생지로 만들 수 없는 것들은 일단 분류를 해내고, 코팅이 되지 않은 것들은 신문지 더미 속에 넣는다.

우편물의 봉투들도 분류가 필요하다. 재생지로 만들 수 없는 것들은 규정 쓰레기봉투 안에 넣고, 재생 가능한 것들은 작은 띠지 같은 것이라도 잘 챙겨서 신문지 더미 안에 넣는데, 그러기 위해 책 봉투 같은 것은 철침이나 테이프를 일일이 떼어내는 수고를 해야 한다.

폐지를 수집하여 재생지를 생산하는 곳에서 작업을 할 때 폐지 더미 안에 섞여 있는 코팅 종이와 비닐과 테이프 따위를 가려내는 비용이 많이 들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형국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소각 처리만을 생각하고 웬만한 종이들은 그냥 모두 쓰레기봉투 안에 넣고, 코팅 종이든 뭐든 가릴 것 없이 모조리 신문지 더미랑 같이 쌓아두었다가 한꺼번에 묶어내는 일이 손쉽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거기에서도 양심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하고서도 내 마음이 편해진다면야 문제는 달라지겠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마음의 불편을 겪게 된다면 그거야말로 내 삶을 더욱 어렵게 하는 일일 것이다.

(3)

몇 년 전에 이웃 동네 기초의회 의원을 꿈꾸는 한 친구의 승용차에 동승을 한 적이 있다. 그 친구가 운전을 하면서 담배를 피우는데, 새 담배 갑에서 뜯은 것들을 아무 생각 없이 차창 밖으로 버렸다. 또 담배꽁초도 차창 밖으로 버리는데 완전히 습관이 되어 있는 것 같았다.

참다못해 한마디했다.
"시의원이 되면 내가 좋은 선물 하나 해야겠는 걸."

그 친구가 냉큼 호기심을 보여서 나는 과감하게 말했다.
"차안에 놓고 다니기 좋은 쓰레기통 하나가 꼭 필요할 것 같아. 이 세상이 온통 쓰레기장인 줄 알고 사는 쓰레기 같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 꽉 찼는데, 앞으로 시의원이 되면 그 문제에 각별한 생각도 좀 가져야 할 것 같고…."

다행히도 그 친구는 내게 미안해하고 부끄러워했다. 그가 끝내 시의원은 되지 못했지만, 차장 밖으로 담배꽁초를 함부로 버리는 버릇은 스스로 고쳤을 것으로 생각한다.

며칠 전 아들 녀석을 내 옆자리에 태우고 딸이 있는 천안을 갈 때였다. 과자를 먹고 나서 빈 봉지를 아들녀석에게 주면서 버리라고 했다. 그러자 아들녀석이 깜짝 놀랐다.

"아니, 이걸 창 밖으로 버리란 말예요?"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냐? 네 바로 앞에 쓰레기통이 있잖아."
"아, 그렇군요. 난 또…. 우리 아빠가 그렇게 몰지각한 사람인 줄 알고 제가 깜짝 놀랐지 뭐예요."

그렇게 엉너리를 치는 중학교 1년 생 아들녀석을 보면서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었다. 스스로 대견스러워지는 느낌이었다.

청소년 시절의 기억 하나가 지금도 날 부끄럽게 한다. 우리 태안성당에 초대 신부님으로 외국인 신부님이 오셨다. 하루는 아침미사 후에 사제관에서 잠시 신부님과 얘기를 나누었는데 신부님이 이런 말을 하셨다.

"한국에 처음 와서 매우 이상하게 느낀 것 하나가 쓰레기통에 적혀 있는 글자였어요. '쓰레기는 쓰레기통에'라는 말이었지요. 그 말뜻을 알고 처음엔 정말 이해를 못했어요. 왜 그 당연한 말이 거기에 적혀 있는지…. 나중에 그 이유를 알고 마음이 참 아팠지요."

마음이 아팠다는 외국인 신부님의 그 말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 뇌리에 명료하다. 그리고 신부님의 그 아픈 마음은 그대로 내게 전이되고 말았다. 전이되었을 뿐만 아니라 내 가슴속에서 오늘도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 되고 있다.

(4)

태안반도의 한복판에서 살기로 나는 가까이에 수많은 해수욕장을 두고 있다. 사면팔방 어떤 길로 가든지 간에 해수욕장이 예도 있고 제도 있다. 어찌 보면 복된 곳에서 사는 형국이다.

하지만 나는 여름철 내내 주변의 해수욕장에 거의 가지 않는다. 해수욕장에 가면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여기저기 함부로 널려 있는 쓰레기 더미이다. 너나 나나 쓰레기 더미 속에 묻혀서 사는 것을 피부로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는 쓰레기가 많이 생기게 마련임을 모르지 않지만, 단순히 쓰레기만을 보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서 무질서를 보고, 양심과 수치심의 실종을 체감하지 않을 수 없다. 쓰레기는 그냥 쓰레기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쓰레기'의 실체나 잔영처럼 거기에 존재하는 것이다.

올 여름에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서지에서, 또 오가는 도로에서 쓰레기와 함께 자신의 양심을 투기하는 행위를 할지, 그것을 생각하면 절로 한숨이 나온다.

요즘 태안 백화산을 찾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 인근 해수욕장을 찾으면서 태안 백화산의 '마애삼존불'을 보기 위해 오는 사람들이다. 반드시 그래서인 것은 아니겠지만 백화산의 여기저기에 버려진 쓰레기들이 좀더 많아진 것 같다.

어제는 태을암 근처의 너럭바위 위에 하얗게 버려진 담배꽁초들을 주우면서, '여기에 이렇게 함부로 담배꽁초를 버리는 사람들은 도대체 얼굴이 어떻게 생긴 사람들일까'하는 괜한 궁금증으로 한숨을 쉬어야 했다.

사람들이 몰래 쓰레기를 버리는 곳에 세워진 글자판에 관한 기사를 <오마이뉴스>에서 읽었다.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당신이 존경스럽습니다'라는 그 글자판의 말은 일단 해학을 선사한다. 해학은 늘 비애를 동반하는 법이다. 그 해학은 나에게도 깊은 자괴심을 갖게 한다.

정말 우리 사회는 존경스러운 사람이 참 많은 것 같다. 너무도 위대하게 보여서 정녕 나로서는 존경하고 부러워해야 할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해마다 여름철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것 같다.

내 청소년 시절 외국인 신부님으로부터 쓰레기통에 관한 말을 들은 후로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건만 쓰레기통은 여전히 그런 모양 그런 상태로 우리 주변에 존재한다.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쓰레기통에 쓰여진 그 말은 이제 쓰레기뿐만 아니라 쓰레기를 몰래 함부로 버리는 사람들에게도 해당되는 것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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