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윤영
잠시의 머뭇거림도 용납하지 않고 빠르고 편한 것만 추구하는 디지털 시대에서 아날로그의 여유를 즐기면서 삶의 텃밭을 가꿔나가는 사람이 있다.
보문산자락에 터를 잡고 옛 정취를 물씬 풍기는 ‘춘추민속관’의 정태희(50) 사장이 바로 그 사람이다.
뜰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연신 ‘꼬끼오’를 외쳐대는 닭들, 앞마당에 놓인 수 많은 장독들, 도심 속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기와집과 초가집 등 보문산 중턱에 위치한 춘추민속관의 분위기에서부터 정 사장의 독특한 삶의 방법이 엿보인다.
잔잔한 미소로 기자를 맞은 정태희 사장은 이곳의 풍경과 한 폭의 그림처럼 잘 어울리는 그야말로 이 시대 민초의 모습 그대로였다.
“저는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사는 사람입니다. 대중, 서민, 농민들은 격식 차리고 살 만큼 시간도 없을 뿐만 아니라 모양새나 격식이 필요 없죠. 늘 어떤 자리에서든 팔 걷어붙이고 일할 수 있는 복장을 좋아해요.”
춘추민속관의 역사는 무려 20년이 넘었다. 야외에는 초가집과 석제품을 갖추고 있고, 농경유물 등 민속유물 무려 6000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특히 초가집은 대전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
몇년전까지 1, 2층의 전시관을 무료로 운영하기도 했지만 도로확장 공사로 현재는 철거된 상태라 유물들은 대부분 창고에 보관되어 있다. 하지만 향토 전통음식점 곳곳에 이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우리의 민속유물을 볼 수 있다.
“저는 돈이 되는 물건은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역사적으로 선조가 쓰고, 손때가 묻은 물건이나 민초들의 희로애락이 담겨 있는 물건을 수집해요.”
그가 우리나라 민속유물에 관심을 가진 것은 지난 76년부터. 대청댐 수몰로 자신이 살던 마을이 수장되는 것을 지켜보며 짧은 순간에 역사 깊은 곳이 수장된다는 것이 아쉽게 비쳐졌다.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들이 옛날 물건을 소중히 여기는 모습을 많이 봐왔기 때문에 그 또한 우리 것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됐다.
그는 수몰되는 곳이나 재개발 등지를 찾아 사소한 것부터 버려진 물건을 주워온다. 요즘도 철거촌 등을 찾아 잊혀져가는 민속품을 찾아 헤매지만 시간이 갈수록 점점 찾기 힘들단다.
“요즘은 뭐든지 쉽게 부숴 버리고 묻어 버리는 것 같습니다. 보존할 것을 보존하지 않고 획일적으로 모든 것을 바꿔 나가고 있어요. 재개발로 길이 넓어지는 것만큼 이웃과의 정도 그만큼 넓어지고 있죠. 우리 민족 찾기를 해 본래의 모습을 되찾는다면 세상사 이처럼 각박하거나 사람들이 자신만 알고 이득만 취하진 않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