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화가 이중섭의 삶의 단편을 보다

등록 2003.08.14 08:12수정 2003.08.14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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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화가 이중섭이 머물렀던 서귀포시의 이중섭거리에 있는 이중섭전시관에서는 여름방학을 맞이하여 '이중섭과 아이들'이라는 주제로 특별전시회(8월 1일-31일)를 열고 있다.

그곳에 다녀 온 지 이틀이 지났건만 그림에 대한 감동도 감동이지만 아직까지도 이중섭이 잠시 거처하던 1.4평의 단칸방에 대한 환영이 지워지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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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1916년에 출생하여 1956년에 사망했으니 우리의 파란만장한 역사 속에서 때로는 좌절하며 자신의 꿈을 다 피우지 못한 한 예술가의 혼을 보는 듯해서 마음이 아팠다. 그가 기거하던 집은 어떤 모양일까?
예술가들의 집은 뭔가 특별할 것이라고 생각하던 나의 고정관념이 여지없이 깨어지는 순간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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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아니, 특별했다. 마당 한 켠을 차지하고 있는 쇠로 만든 물고기의 모형이 심상치 않았다. 무슨 물고기를 형상화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서서히 부식되어 가는 물고기의 모습에서 우리가 아무리 삶을 붙잡으려 해도 잡을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넓은 초가집을 다 썻던 것은 아닌 것 같고 작은 쪽방에 세들어 살았던 것으로 추정 된다. 궁금했다. 그가 기거하던 방의 모습이 참으로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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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방으로 통하는 길에 한 평 남짓한 부엌이 나오고 찬장도 없이 달랑 가마솥 두 개가 놓여 있었다. 누가 연출을 해 놓은 것인지, 아니면 긴 세월을 넘어 오늘날까지 화가가 쓰던 솥이 남아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작은 가마솥에서 느껴지는 처절한 가난함이 폐부를 뚫고 들어온다.

'아, 저기에다 남정네 혼자서 해 먹을 수 있었던 것이 무엇이었을까?'

해초와 게를 주식으로 먹으면서, 사랑하는 자식과 아내를 떠나보내고 홀로 남아서 그가 붙잡으려고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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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1.4평 짜리 방은 잠버릇이 고약한 어른이라면 좁아서 잘 수도 없을 것 같은 작은 공간이었다. 그 작은 공간에서 그는 예술혼을 태우며 살았고, 한 인간으로서 고민했을 것이다. 그 고민은 정신분열증까지 가져와 거식증을 가져왔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까지 했을 것이다.

무엇을 먹고, 마신다는 것조차 그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이었는지 모르겠다. 아주 잠시 천재화가 이중섭이 거처하던 방을 보고 돌아왔을 뿐인데 나의 마음은 이곳 저곳 마구 파헤쳐져 있다.

짐승같은 삶을 살면서도 그가 붙잡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제 밥벌이도 못하는 놈이 무슨 예술은 예술이라며 주위의 사람들이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볼 때에는 무슨 생각들을 했을까?


사랑하는 자식과 아내가 도저히 같이 살지 못 하겠다고 떠났을 때 그림 그릴 종이도 없어 담배를 감쌌던 은박지에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그림을 그렸던 그의 마음은 어땠을까?

다가오지가 않는다.
그는 무엇을 보고 살았을까?


이현주 목사의 글 중에 이런 대목이 있다.

세상에 '절망'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절망하고 있는 자에게 있는 것이고, '희망'이라는 게 있다면 역시 희망하고 있는 자에게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절망이나 희망은 어떤 상황에 있는 게 아니라, 그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에게 있다는 얘기다.
-<그러므로, 저는 당신입니다> 중에서-


화가 이중섭

1916년 평안남도 평원에서 부농의 아들로 태어난 이중섭은 그림에 뛰어난 소질을 보여, 오산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유학을 떠난다. 그는 도쿄 문화학원 재학 중 <자유미협전>에 출품하여 '태양상'을 받아 천재성을 인정받았다.

그 후 일본 여성 야마모토 마사코와 결혼하여 귀국한다. 8·15광복 후 원산에 머문 그는 공산체제 아래에서도 어용적(御用的)인 그림을 그리지 않고 버티다가 6·25 전쟁 때 월남하여 부산, 제주, 통영 등지를 전전하면서 숱한 고난과 슬픔을 겪었다.

이 무렵 그는 부두노동자 생활을 하였고, 생활고에 지친 아내와 두 아들은 일본으로 건너갔다. 1956년에는 예술에 대한 회의와 인간적인 좌절로 거식(拒食), 거언증(拒言症) 등 정신분열증을 나타내다가 죽었다. / <두산세계대백과 엔사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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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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