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상화를 그리며 느끼는 행복

30여년간 한길 걸어온 송계 초상화 박종국 화백

등록 2003.08.14 09:37수정 2003.08.14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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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윤영
"지금껏 3000여점의 초상화와 3000여 명에게 개인지도를 해왔습니다. 연필, 파스텔, 실크의 선과 터치 하나하나에 세월을 실었어요."


대전 선화동에 위치한 송계 초상화실에는 30여 년간 한길만을 걸어 온 송계 박종국(54) 화백의 집념이 곳곳에 묻어난다. 화실의 한쪽 벽면에는 헝클어진 머리, 생기 있는 피부, 다양한 표정을 담은 초상화들이 빼곡하다.

"초상화는 생동감이 있습니다. 수천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의 얼굴 모습은 제 각각 다릅니다. 하나하나 작업을 해나가면서 그 대상의 특징을 통찰력 있게 찾아내 그러한 특징들을 좀더 세밀하고 생동감 있게 담아내려고 합니다."

'초상화'에 대한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바꿔주기 위해 좀더 생동감 있는 초상화를 추구하는 박 화백은 그림제작과 초상화의 대중화를 위한 개인지도를 병행하고 있다.

30여 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그려온 초상화. 사실 그가 초상화와 인연을 맺은 사연은 아이러니하다.

"저도 처음에는 초상화는 단순한 모사라고 생각해 탐탁치 않아했어요. 하지만 우연한 기회에 후암 이상원 선생님의 그림을 만나보고는 '초상화가 이런 것이구나'하며 생각을 달리하게 됐습니다."


서양화를 전공한 그는 2년을 마치고 69년 공군 하사관으로 입대를 했다. 하루 빨리 제대를 한 후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마음으로 가득 찬 그에게 이상원 화백의 초상화는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해주기에 충분했다.

"다른 초상화들은 밋밋했는데 그의 그림은 깊이가 달랐습니다. 평범한 초상화가 아니라 섬세하게 묘사된 살아있는 초상화였죠. 다짜고짜 그를 찾아가 가르쳐 달라고 했어요."


권윤영
그 당시 직업군인의 한달 봉급이 8만원. 이중 2만 5천원을 수강료로 지불했다. 3개월만 배우려고 시작한 초상화였지만 해도 해도 끝이 없었고 재미도 있었다. 75년말부터 배우기 시작한 초상화를 80년 제대하는 그날까지 계속해서 배운 후 제대한 다음날 바로 송계 초상화실을 열었다. 그리곤 24년의 시간이 흘렀다.

"초상화를 하루도 빠짐없이 그리면서 점점 눈이 뜨여갔습니다. 처음에는 실크 천에 그리는 실크화가 전부였는데 사람들이 싫증을 내는 경향이 있어서 연필, 파스텔 등으로 재료를 바꿔가며 연구를 했어요. 요즘은 파스텔로 작업을 많이 하고 있죠."

박 화백은 한 종교단체에서 의뢰한 문짝만한 화폭 6점을 1년 여에 걸쳐 완성한 것을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 꼽는다. 종교단체가 그가 그린 그림을 보관하기 위해 장소도 마련하는 등 소중하게 생각해주기 때문이다.

"아버님의 얼굴을 그려달라고 찾아온 사람이 있었어요. 아버님 사진은 없고, 자신의 아들이 아버님을 닮았다기에 그 손자를 놓고 할아버지 그림을 완성하기도 했어요. 이는 초상화만이 할 수 있는 매력 아닐까요."

대부분 옛날 흑백사진이나 이제는 잘 분간하기도 힘든 사진을 찾아와 소중한 사람의 얼굴과 추억들을 재생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그의 작업장에는 특이한 것이 있다. 바로 금고. 금고에는 돈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림 제작을 부탁한 사람들의 사진이 있다.

"지금 와서 초상화를 배우던 시기를 생각하면 참으로 힘든 시기였지만, 그 당시에는 그런 것도 못 느끼고 열심히 했습니다. 하고 싶었으니까요. 앞으로도 평생 초상화만을 그리고 싶네요."

작업하는 일이 늘 재밌기에 항상 화실에 가고 싶다는 박 화백. 6평 남짓한 그의 작업 공간은 하나같이 그의 정성과 손때가 묻어있기에 더없이 소중한 장소이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그곳에서 박 화백은 타인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행복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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