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천지서 일출 보며 미사 지내다 ②

등록 2003.08.18 06:22수정 2003.08.18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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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은 또 한번 우리를 흔쾌한 모습으로 맞아 주었다. 내일 새벽에 천지 앞에서 미사를 지내자는 방윤석 신부님의 제의에 모두들 적극 찬동을 해준 덕분이었다.


a 백두산 천지 앞에서 일출 직전에 통일 기원 미사를 지내다.

백두산 천지 앞에서 일출 직전에 통일 기원 미사를 지내다. ⓒ 지요하

13일 새벽 3시에 우리는 다시 지프를 타고 백두산을 올랐다. 맑은 하늘에 둥근 달과 초롱초롱한 별들이 가득 차 있는 백두산의 신선하면서도 엄숙한 새벽 기운에 압도당하고, 억만년의 침묵을 안고 있는 천지의 더욱 신비한 모습에 흠뻑 취하다가 우리는 곧 미사 준비를 했다.

적당한 자리에 제대(祭臺)로 사용하기 똑 좋은 네모진 판판한 돌이 있었다. 사제가 북한 쪽을 바라보는 자세로 서서 우리는 동쪽 하늘의 먼동을 느끼며 미사를 지냈다. 손이 시릴 정도로 백두산 정상의 여름 새벽은 추웠지만 우리는 하나같이 미사에 열중했다.

미사의 지향은 당연히 '우리 민족의 평화 통일 기원'이었다. 미사 중의 '보편지향기도' 시간에는 여러 사람이 '화살기도'를 했다. 백두산을 올라 천지를 보는 기쁨과 좋은 날씨를 만난 행운 속에서도 민족의 분단 현실을 더욱 깊이 체감하지 않을 수 없는 아픔을 고백했고, 평화 통일에 대한 갈망이 우리의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가를 새로이 깨닫도록 해주실 것과 참된 국민으로 더욱 열심히 살아갈 수 있는 은총을 베풀어주실 것을 간절히 청원하기도 했다.

미사를 지내는 동안 먼 동녘 하늘의 먼동은 더욱 짙게 피어올랐다. 그리고 미사가 끝날 즈음에는 지평선인지 수평선인지 모를 곳에서 아침해가 봉긋이 머리를 내밀기 시작했다. 백두산에서 내려다보는 이른 아침의 광활한 수림(樹林)은 그야말로 파도가 굽이치는 바다였다. 광대한 임해(林海)의 저 먼 끝으로부터 솟아오르는 태양은 아름다움과 황홀 자체였다.

a 백두산 천지 앞에서 일출을 보며 황홀한 표정을 짓고 있는 딸 규애(고1)와 아들 한결(중1) 남매

백두산 천지 앞에서 일출을 보며 황홀한 표정을 짓고 있는 딸 규애(고1)와 아들 한결(중1) 남매 ⓒ 지요하

동해에서도 보기 쉽지 않다는 완벽한 일출 광경이었다. 백두산에서 일출을 본다는 사실이, 천지 앞에서 미사를 막 지내고 나서 일출 장면을 접한다는 사실이 우리 모두를 한없이 감격케 했다. 우리는 감미로운 흥분 속에서 환호를 했고, 다 함께 통일 노래를 부르고 만세를 부르기도 했다.


천지의 거울 같은 물 속에 고스란히 잠겨 있는 주변 봉우리들의 아름다운 모습에 취하다가 이윽고 한 발 껑충 떠 오른 해를 보며 자리를 뜰 때는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백두산의 천지 앞에서 동녘 하늘의 일출을 보며 미사를 지냈다는 사실이 평생 동안 소중한 기억으로 남으리라는 생각을 하며 겨우 발길을 돌릴 수 있었다.

아침식사 후에 우리는 다시 버스를 타고 여러 시간을 달려 어제 경유했던 용정시로 돌아왔다. 박경리 소설 <토지>에 많이 등장하는 용정이었다. 용정천주교회와 윤동주 시인 문익환 목사의 모교 대성중학의 후신인 용정중학교에 들러 여러 가지를 살펴보고 윤동주 시비 앞에서 묵념도 했다.


해란강을 버리고 곧 두만강을 끼고 한참을 달려 우리가 도착한 곳은 한반도의 맨 꼭대기 접경 지역인 도문시였다. 북한의 남양시와 중국의 도문시를 가르는 두만강 위로는 다리 하나가 놓여 있었다. 한 중간에 국경 표시가 있다는 그 다리를 거닐어보는 데는 우리 돈으로 5천 원의 입장료가 필요했다.

무슨 감회라도 느껴보기 위해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비용을 아끼지 않고 그 다리를 거닐었지만 나는 그것을 피했다. 왠지 그것을 삼가고 싶었다. 그 다리 위에서 분단의 슬픔을 체감하고 확인하는 일에 돈까지 들인다는 것이, 그 돈이 모조리 중국 쪽의 수입이 된다는 것이 적이 부당하게 느껴지는 탓이었다.

그리고 우리 분단 현실의 실체적 상징물인 그 다리를 거니는 일에 혹여 관광의 재미와 호기심이 더 많이 작동을 한다면 그것 역시 참으로 온당치 못한 일이라는 생각 탓이었다.

아무튼 나는 그 다리와 다리 주변에 흐드러져 있는 관광적 분위기에 휩쓸리고 싶지 않았다. 거기에서는 사진도 일체 찍지 않았다. 내가 사진을 찍지 않은 유일한 곳이었다. 나는 5천 원짜리 막걸리 한 통을 사서 방윤석 신부님을 비롯한 일행 몇 분과 마셨는데, 술기운 때문에 더욱, 확실하게 종잡을 수 없는 슬픔에 하염없이 젖어드는 기분이었다.

a 막 해가 떠오른 아침의 천지 풍경

막 해가 떠오른 아침의 천지 풍경 ⓒ 지요하

이번 백두산 여행에서 느끼고 생각한 것들이 많은데, 그 중의 하나는 백두산 관광의 경우 오로지 관광만이 목적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되리라는 것이었다. 아울러 지나친 쇼핑은 백두산 관광과 결코 잘 어울리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나야 경비가 넉넉지 못해 쇼핑에는 아예 처음부터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쇼핑에 열 올리는 수많은 관광객들의 모습은 아무래도 좋은 모습이 아닌 것만 같았다.

개인적으로 아쉽고도 섭섭한 일 한 가지는 내 판단 착오로 천지 물에 손을 담글 수도 있었던 기회를 놓친 사실이다. 장백폭포를 보러 올라갔을 때 또 한 곳 입장료를 받는 곳에서 걸음을 멈춘 것이 생각할수록 후회 막심하다. 우리 돈으로 일인당 5천 원인 입장료가 부담스러운 건 아니었다. 가이드가 제시해 준 시간에 얽매인 탓이었다. 그 가파른 계단 길을 그대로 계속 올랐더라면 두 달 전에 개통됐다는 좁은 터널을 통해 천지로 나아가서 천지 물에 손을 담글 수도 있었는데….

내 고지식하고 순진한 성격대로 가이드 말에만 충실하여 누구보다도 시간을 잘 지키고, 백두산 온천이라는 이름에 홀딱해서 무려 일인 1만 원의 목욕비로 우리 가족이 우리나라 60년대식 목욕탕에서 불편하게 목욕을 하는 동안 과감하게 장백폭포 옆 터널을 통과하여 천지 물을 직접 접하고 뒤늦게 내려 온 일행들이 있었다. 그들의 말을 듣고 나는 그 날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 후회 막심한 괴로움을 인천공항에서 태안으로 오는 버스 안에서 생각의 정리로 조금은 해소할 수 있었다. 중국 땅으로 우회해서 백두산을 오른 이번 여행에서는 내 육안으로 천지의 모습을 두 번 본 것과 일출을 본 것으로 만족을 하고, 내 손으로 천지 물을 직접 만지는 일은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겨레의 땅을 밟고 백두산을 오르게 되는 때로 미루자고, 그러는 것이 온당하고도 멋진 일이라고 겨우 마음을 정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제부터 더욱 열심히 민족의 평화 통일을 갈망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할 것 같다. 당장 통일은 되지 않더라도 남북 교류가 확실하게 진척되어 겨레의 땅을 밟고 백두산을 오르게 되는 때를 소망해야겠다. 그래야만 이번에 천지 물을 직접 만질 수도 있었던 기회를 아깝게 놓친 내 우둔함에 대한 한탄이 온전히 해소될 수 있을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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