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나무만 무성하고...김규환
어른들께는 담배, 막걸리와 소주 대병을 팔았다. 점방에서는 당시 업계 1위를 달리던 삼학소주(三鶴燒酒)를 팔았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삼학소주는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대통령 선거와 연루돼 세무조사 때문에 일시에 무너졌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종이 딱지만 바뀌어 다른 소주를 사러 갔어도 그걸 공식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낮과 밤에는 어른들이 진을 치고 살았다. 소위 남편이라는 아버지들은 "또 점방 가느냐"는 아주머니들과 어머니의 걱정 반 역정 어린 소리를 뒤로 하고 주머니에 일 전(錢) 없이도 "물꼬 보러 간다"는 소리를 남기고 점방으로 직행을 한다. 그러기를 수십 날을 지속했다. 집 팔고 논 팔아 집안 살림 거덜내고 나 몰라라 했다.
김치 쪼가리에 막걸리 한 사발 마신다. 뚜껑 막아 나중에 다시 찾아 마저 먹고 간다. 대낮부터 이어진 윷판이 날이 어두워지고 날씨가 차가워지면 골방으로 들어가 화투짝과 씨름을 한다. 1년 중 조용한 날은 명절 이틀에 조상 제사 때 뿐이었다.
한참을 문 밖에서 서성이다 가까스로 다가가서는,
"아부지~."
"응, 누구냐?"
"아부지 규환이라우. 얼른 집으로 가십시다."
"니 어머니한테 밥 묵었다고 해라."
"그게 아니고라~."
"얼른 가잔께요~."
"아짐, 과자 하나 주싯쇼."
"아나. 이거 먹고 먼저 가있거라. 곧장 따라 갈 것이구만."
"엄니가 안된다고 했어라우~. 같이 안 올 거면 오지 말라고 했는디요."
"긍께 가고 있어. 아부지 금방 따라 간다. 어여~."
아버지를 이길 수는 없었다. 요지부동 나설 채비를 하지 않으시는 아버지를 비롯한 무수한 아저씨들. 아버지에 대한 적개심은 이때 나에게 최고조에 이르렀다. 꾹 참고 집으로 가서 어머니께 지천들을 생각을 하면 집으로 갈 생각이 나지 않았다. 오랜 동안 점방 앞에서 머뭇거리다 집으로 향한다. 귀뚜라미 소리, 개구리 소리마저 아름답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