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어탕 한 솥으로 동네잔치 하던 날

<고향의 맛 원형을 찾아서 35> 1981년 추어탕 먹는 풍경

등록 2003.08.23 12:36수정 2003.08.24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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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어탕에 밥 몇 숟가락. 그리고 소주 한잔. 아니면 복분자술. 그 시절로 가고 싶네요.
추어탕에 밥 몇 숟가락. 그리고 소주 한잔. 아니면 복분자술. 그 시절로 가고 싶네요.김규환
손님맞이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마당을 싸리 빗자루로 깔끔하게 쓸고 멍석을 꺼내 깔고 빗자루 질을 한다. 한 개는 부족하여 큰댁에서 빌려왔다. 상도 세 개는 놔야 스무 명 정도 먹을 수 있느니 온가족이 손님 맞을 준비에 바쁘다.


숟가락 젓가락에 그릇 숫자는 대체 몇 개인가. 오전에 끓이기 시작하여 서너 시쯤 먹기 시작하였으니 진종일 우리 집은 바빴다. 탕이 끓는 동안 밥을 해놓아야 한다.

마을 방송 한번 하면 끝이지만 동네 사람들 다 부르기에는 한 솥으로 부족하다. 전화가 이장 댁에 하나 있던 시절이라 형과 함께 몇 집씩 나눠 어른들을 모시러 간다. 결혼과 초상 등 대사 치를 때 빼곤 김장하는 날, 추어탕 나눠 먹을 때 동리(洞里) 사람들 서른 명 모여 앉아 음식을 나누는 풍속은 날 잡지 않은 잔치다. 아름다운 풍경화다.

"풋나무도 많이 해놨구먼~."
"인제 논도 여덟 마지기인게 망웃(퇴비)이 많이 필요하다마시."
"하여튼 김샌(김생원)은 살판이 났어. 이러다가 우리 꼴짝(골짜기) 논 다 사겠구만."
"예끼! 이 사람. 허튼 소리말고 어서 앉게."

남자들이 열 댓 명까지 늘었다.

"이장님! 그건 그렇고 나락(벼)이 잘 익을랑가 모르겄소."
"멸구하고 문고병이 확 돌았당께."
"비만 퍼부어대니 지들이라고 성하겠는가?"
"글씨 말이여. 하늘도 너무 하는구먼."

그 해는 흉년으로 가는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냉해 징조가 곳곳에서 보였다. 벼 수매해서 먹고사는 일밖에 없는 시골 사람들은 걱정이 태산이다.


그날 깔았던 멍석인데 이젠 멍석 구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제 시골에선 그냥 덕석이라고 했습니다. 멍석을 아직도 보관하고 있는 집안은 뼈대가 있는 집안 쯤 될까요?
그날 깔았던 멍석인데 이젠 멍석 구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제 시골에선 그냥 덕석이라고 했습니다. 멍석을 아직도 보관하고 있는 집안은 뼈대가 있는 집안 쯤 될까요?김규환
"정샌, 어여 와. 이리 않으시게."
"맛난 냄새나네? 매운탕이라도 끓인 건가?"
"추어탕 한 그릇 잡수라고 불렀소."
"내 먹을 것 있을랑가 몰라?"
"나눠 먹으면 되제라우~."
"글씨 말여. 물괴기(물고기) 한 대접이면 고기 서 근(세 근) 하고 안 바꾸지."

사람들이 마당에 깔아둔 덕석(멍석)에 모여 앉았다. 오랜만에 멍석에 앉는 느낌 까슬까슬하여 엉덩이를 즐겁게 한다. 상이 일자로 가지런히 놓여 있다. 아녀자들은 마루에 걸터앉았다.


가족끼리 오붓하게 먹는 맛도 좋지만 이런 날 동네 사람들 불러모으면 미꾸라지 몇 마리 잡아 인심 한 번 크게 얻는 격이다. 그런다고 했을까 마는 어머니 계실 때는 집에서 이런 일을 자주 치렀다. 일 년 몇 번의 노력으로 음식 솜씨며 마음 씀씀이까지 칭찬과 좋은 소문이 자자하게 되니 못할 일도 아니지만 엄두가 나지 않는 측면도 있다.

오늘은 우리 집에서, 며칠 있으면 병문이네 집에 식구들이 몰려가서 먹으니 음식 나누는 사람들의 정이 갈수록 깊어간다. 잔치가 별건가? '이웃 사촌이 멀리 있는 친척보다 낫다'는 건 이때를 두고 하는 말일 게다.

과꽃과 봉숭아, 백일홍이 핀 장독대가 그립습니다. 호랑나비도 한마리 먹으러 왔을까요?
과꽃과 봉숭아, 백일홍이 핀 장독대가 그립습니다. 호랑나비도 한마리 먹으러 왔을까요?김규환
아직 김장 무와 배추 솎아 먹으려면 며칠은 더 기다려야 하니 콩밭 사이에 심어 부드럽게 자란 무로 담근 열무김치 한 접시와 큰 양푼에 상마다 밥 한 그릇씩 고봉으로 수북이 담아져 있다. 입맛에 따라 간을 하라고 소금 접시도 하나씩 놓여있다.

걸쭉하게 끓고 있는 솥 단지에서 김이 모락모락 난다. 먼저 오는 대로 갖다드리면 된다. 추어탕을 퍼담는 어머니는 땀범벅이다. 쟁반에 올려지는 대로 양은 그릇을 올려놓으면 애 어른 할 것 없이 식기 전에 한 숟갈씩 떠 먹어본다.

"어~."
"어~ 좋다"하면 맛에 대한 품평은 끝난 것이다.
"아짐~."
"뭔 일이다요?"
"오늘은 미꾸라지를 안 갈아부렀소?"
"애들 아부지가 갈지 말라고 합디다."
"잘 허셨소."

인사치레로 하는 말이 아니다. 간보고 어쩌고 할 것도 없었다. 살짝 씹히는 미꾸라지가 혀끝에서 사르르 녹는다. 얼마나 오래 끓였는가 뼈마저 잘 씹힌다.

고소한 들깨 맛, 매콤한 고추 맛, 알싸한 초피 맛, 시원한 국물 맛, 온갖 남새의 상큼한 맛이 어우러져 서로 돕고 깔끔한 뒷맛에 쌀밥 내음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덜 갈린 고추씨도 씹히지만 여기서는 곡물이 된다. 물러 터지지 않은 시레기와 호박줄기는 살캉살캉.

널찍한 그릇을 한 손으로 받히고 쉴새 없이 숟가락질을 해대니 누가 집에 간다고 한들 아무도 모르겠다. 호로록거리는 소리 곳곳에서 들리니 이 얼마나 넉넉한가. 허기진 배를 한 번씩 채우고는 얘기를 나누며 먹기를 계속한다.

"지복산히(꽤, 대단히) 많이 잡았는 갑소? 어디서 잡았댜?"
"저기 평까끔(평산) 골짜기에서 아그들이 잡았다요."
"지비(당신) 애들이 다 잡아불먼 우리 잡을 것이나 있을랑가 몰러~."
"나가믄 천진디 뭔 걱정이댜?"

솥에는 스무 그릇 남짓 떠도 아직 절반 이상이 남아 있다.

벼 꽃 구경 한번 하면서 올 농사의 풍흉을 점쳐보세요. 이렇게 비가 왔던 그해에도 유사이래 기록적인 흉년이었습니다.
벼 꽃 구경 한번 하면서 올 농사의 풍흉을 점쳐보세요. 이렇게 비가 왔던 그해에도 유사이래 기록적인 흉년이었습니다.김규환
"많이들 자싯쇼."
"성님, 여그 술 떨어져불었소."
"거식아, 광방에 가서 술 좀 갖고 오니라."
"아부지 여깄구만이라우."

술을 갖다 드리는 동안 입안엔 확독에 간 고추가 넓은 송곳니 안쪽을 가득 덮었는지 제법 성가시게 한다. 손톱으로 아무도 안보이게 쏙 빼서는 '튀-' 멀리 날려 버렸다.

"자자, 한 잔씩 비우더라고~."
"낮술 마시면 지 에미 애비도 몰라 본다는디."
"아따 이 사람아. 한 숨 자고 들에 나가면 되는 것이네. 뭐 바쁜 일 있다고 그런가? 이러다가 저물겠네."
"에라 모르겠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묵어붑시다. 성님도 한잔 헛쇼."

추어탕은 밥을 한꺼번에 많이 말면 맛이 없다. 냉면 크기만한 큰그릇이어도 정확히 네 숟가락을 넘기면 탕이 맛이 떨어진다. 밥이 또 한 번 푹 퍼지면 국물 맛이 달아나고 밥맛만 난다.

탕도 절반 정도만 퍼서 두세 번 나눠 먹어야 일품이다. 첫 번째 먹는 것보다 두 번째 먹을 때 제 맛이다. 세 번째 먹으면 국물이 줄면서 간도 맞아 진국 추어탕 맛을 볼 수 있다. 걸쭉한 맛을 보려면 이렇게 두세 번은 나눠 먹어야 하는 것이다.

"성수(형수) 여그 한 국자 더 줏쇼. 거섶(푸성귀) 좀 몽땅 주싯쇼."
"많이 갖다 드릴께라우. 아제(아저씨)는 이라우?"
"나도 쬐까만 더 줏쇼."

솥뚜껑 소리 요란하게 열린다. 두 번째는 주문자에 한해서 갖다 드린다. 생선 외엔 고기를 드시지 않던 어머니는 추어탕으로 가끔 보신을 하시곤 하는데 오늘은 한 그릇이나 드시려는지. 아직 간 보는 것 빼곤 한 술을 못 뜨셨다.

"아제, 또 있응께 더 드싯쇼잉."
"성수도 좀 드시랑께요."
"묵을라요."
"정산댁도 많이 들어~."
"참말로 맛나구만. 남개댁은 추어탕 하나는 잘 끓인당께."

"어~ 한잔 혀?" "낮술은 잘 안 받는디..." "아따, 정말 시방 뭐하자는 것이여?" "좋은 국물 있응께 한 잔 해야겠구만..."
"어~ 한잔 혀?" "낮술은 잘 안 받는디..." "아따, 정말 시방 뭐하자는 것이여?" "좋은 국물 있응께 한 잔 해야겠구만..."김규환
뉘엿뉘엿 백아산 너머 무등산 쪽에 걸린 해가 잰걸음으로 넘어가고 있다. 처서(處暑)를 넘긴 후로는 아침저녁으로 가을이 완연하다. 제법 차가운 바람이 불지만 추어탕 세 그릇을 먹어 놓으니 추위를 모르겠다.

어른들은 날이 저물어 달빛이 마당을 어렴풋이 비춰 사람 얼굴 잘 분간하기 어려울 때까지 술잔을 기울였다. 다른 날 같으면 비틀비틀할 아저씨들이 많았을 터인데 오늘은 그런 분을 찾기 어렵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국물이 좋으면 술도 쉬 취하지 않은가 보다.

"성수(형수) 잘 묵고 가요."
"계수(제수)씨 욕보셨소."
"뭐시라우. 대접이 소홀했는갑소. 더 놀다 가시지 않고 시방 갈라고라?"
"아따 뭔 말씀이라요. 형수님도 참. 보신은 야물딱지게 했구만이라우. 인자(이제) 가봐야 쓰겄구만. 쇠죽 쒀 줬는가 모른께."
"살펴 가싯쇼잉."

나는 세 그릇을 몽땅 밥 말아먹고 방으로 들어가 귀뚜라미 쉬지 않고 우는 가을밤 연주를 들었다. 이불 위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니 행복이 밀려왔다. 더 이상 바랄 게 없는 기분 좋은 밤으로 서서히 미끄러져 갔다. 이렇게 배불리 먹는 날이 지속되기만을 간절히 바라면서.

다들 돌아가고 어머니만 늦은 저녁밥을 들고 계신다. 누나는 설거지하느라 아직 정지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다. 항상 일을 치르고 나면 여자들 몫으로 산더미 같이 쌓이니 밤 10시가 넘어서야 잠자리에 든다.

얼른 나락을 베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형이랑 한 번 더 잡아 우리 식구끼리 오붓하게 먹어볼 텐데.

이듬해(1982년)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 한동안 그 맛을 잊지 못하며 살다 형과 내가 커가면서 손수 해 먹을 때까지는 그 맛난 것을 입에 대보지 못하고 살아야 했으니 어머니의 그늘은 자꾸만 커 보였다.

우린 이런 멋진 곳에서 살았습니다. 소나무가 세그루였는데 바람에 넘어지고 이젠 두 그루만 남아 있군요. 농사짓다가 새꺼리는 언제나 저 나무 그늘 아래서 먹었습니다.
우린 이런 멋진 곳에서 살았습니다. 소나무가 세그루였는데 바람에 넘어지고 이젠 두 그루만 남아 있군요. 농사짓다가 새꺼리는 언제나 저 나무 그늘 아래서 먹었습니다.김규환

그래도 먹을 만큼은 주겠지요? 어서 벼가 익어라. 햅쌀 밥에 말아 먹으면 더 맛있다.
그래도 먹을 만큼은 주겠지요? 어서 벼가 익어라. 햅쌀 밥에 말아 먹으면 더 맛있다.김규환
첨부파일 귀뚜라미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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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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