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꽃과 봉숭아, 백일홍이 핀 장독대가 그립습니다. 호랑나비도 한마리 먹으러 왔을까요?김규환
아직 김장 무와 배추 솎아 먹으려면 며칠은 더 기다려야 하니 콩밭 사이에 심어 부드럽게 자란 무로 담근 열무김치 한 접시와 큰 양푼에 상마다 밥 한 그릇씩 고봉으로 수북이 담아져 있다. 입맛에 따라 간을 하라고 소금 접시도 하나씩 놓여있다.
걸쭉하게 끓고 있는 솥 단지에서 김이 모락모락 난다. 먼저 오는 대로 갖다드리면 된다. 추어탕을 퍼담는 어머니는 땀범벅이다. 쟁반에 올려지는 대로 양은 그릇을 올려놓으면 애 어른 할 것 없이 식기 전에 한 숟갈씩 떠 먹어본다.
"어~."
"어~ 좋다"하면 맛에 대한 품평은 끝난 것이다.
"아짐~."
"뭔 일이다요?"
"오늘은 미꾸라지를 안 갈아부렀소?"
"애들 아부지가 갈지 말라고 합디다."
"잘 허셨소."
인사치레로 하는 말이 아니다. 간보고 어쩌고 할 것도 없었다. 살짝 씹히는 미꾸라지가 혀끝에서 사르르 녹는다. 얼마나 오래 끓였는가 뼈마저 잘 씹힌다.
고소한 들깨 맛, 매콤한 고추 맛, 알싸한 초피 맛, 시원한 국물 맛, 온갖 남새의 상큼한 맛이 어우러져 서로 돕고 깔끔한 뒷맛에 쌀밥 내음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덜 갈린 고추씨도 씹히지만 여기서는 곡물이 된다. 물러 터지지 않은 시레기와 호박줄기는 살캉살캉.
널찍한 그릇을 한 손으로 받히고 쉴새 없이 숟가락질을 해대니 누가 집에 간다고 한들 아무도 모르겠다. 호로록거리는 소리 곳곳에서 들리니 이 얼마나 넉넉한가. 허기진 배를 한 번씩 채우고는 얘기를 나누며 먹기를 계속한다.
"지복산히(꽤, 대단히) 많이 잡았는 갑소? 어디서 잡았댜?"
"저기 평까끔(평산) 골짜기에서 아그들이 잡았다요."
"지비(당신) 애들이 다 잡아불먼 우리 잡을 것이나 있을랑가 몰러~."
"나가믄 천진디 뭔 걱정이댜?"
솥에는 스무 그릇 남짓 떠도 아직 절반 이상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