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이거 심으면 감자가 많이 나오는 거?"

등록 2003.08.30 07:24수정 2003.08.30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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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작은 텃밭이라도 부지런히 돌려가며 때에 맞는 작물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파종할 시기를 놓치면 거둘 수도 없지만 때론 잘 자라도 억세서 먹지 못하거나 대가 올라와서 먹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상추가 그랬습니다. 뜨거운 여름 햇살을 맘껏 누리며 자라다보니 억세졌습니다. 저는 그런 대로 먹을 만 한데도 아이들은 질기다고 싫다고 합니다.

이것저것 텃밭을 나누어 심었더니 감자를 심을 공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치커리, 갓, 열무를 정리하고 감자를 놓기로 했습니다.

어느 정도 먹을 것을 남기고, 이웃들에게 나눠 줄 것을 챙기고, 나머지는 거름대용으로 갈아서 땅에 묻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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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어지간히 삽으로 골을 내고 두럭을 만들자 아내가 호미를 들고 밭으로 나왔습니다. 전날 교인 집에 감자를 놓을 일이 있어서 함께 가서 도와주고는 감자 씨앗을 얻어왔습니다.

저야 어려서 농사일을 도운 일도 있고, 대학 4년 동안 농활도 다녀보았고, 목회를 잠시 쉬면서 일년여 농사도 지어본 경험이 있어서 그런 대로 흙을 만지는 일이 어렵지만은 않습니다만 아내는 농사와 전혀 관계없는 삶을 살았었는데 시골에 온 이후로 농사일에 팔 걷고 나서는 것을 보면 너무 고맙습니다.


어제 일한 것도 몸이 뻐근할텐데 아이들도 흙을 만져 보아야 한다며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아내가 가져온 시원한 냉수의 맛이 온 몸을 시원하게 합니다.

아무 맛도 없는 것 같은 물의 맛이 가장 좋을 때, 그 때는 땀을 흘렸을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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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아이들에게 감자를 심기 전에 기념사진 한 장 찍자고 하니 막내는 감자 하나 들고 포즈를 취합니다.


"아빠, 그런데 이거 심으면 감자가 많이 나오는 거?"

"그래, 하나를 심지만 이제 여기서 싹이 나고, 꽃이 피면 감자가 많이 생겨."

"참, 신기하네."

"용휘 장난감도 심어볼까?"

"에이, 장난감은 흙에 들어가면 안될 것 같은데?"

막내는 조금만 더 장난감 심어도 나온다고 하면 장난감 하나 가져올 눈치입니다.

"용휘야, 살아있는 것이 있고 죽은 것이 있어. 살아 있는 것만 열매를 맺을 수 있는거야."

아빠가 무슨 말을 하나 멀뚱멀뚱하더니만 부지런히 감자를 놓기 시작합니다.

맨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어서어서 감자 놓자고 하더니만 뜨거운 볕에 땀이 나는지 "와, 감자놓는 거 힘드네"하며 꾀를 피우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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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조금 지친 듯한 모습이지만 시작한 일이니 막내의 영역을 잘 표시해 주고 마무리를 짓게 했습니다.

"자, 여기서부터 여기까지가 용휘가 심은 곳이다."

"아빠, 그러면 감자 캐서 여기서 나온 건 다 내꺼다."

"그래, 다 니꺼해라. 그러면 아빠하고 엄마가 심은 건 엄마 아빠만 먹을까?"

조금 생각해 보더니 손해라는 생각이 드는지 "아니, 나눠먹자"합니다.

"그래, 용휘야. 심는 것은 우리가 심지만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니까 감자의 주인은 하나님이야, 그러니까 서로 사이좋게 나누어 먹는 거야."

"알았어, 아빠 그런데 장난감은 고장나면 왜 안 고쳐지는 거야? 모기한테 물려서 상처난 것도 다 낳는데, 장난감은 저절로 안 고쳐져?"

"아이구 우리 용휘 철학자 되겠네. 그게 생명이 있는 것과 없는 것, 죽은 것과 살은 것의 차이란다. 어렵지?"

"에이 어렵다. 아무튼 감자는 생명이 있단말씨."

조그만 놈이 뭔 생각에 그런 질문을 했는지 조금은 감이 잡힙니다. 고장난 장난감 새로 사달라는 이야기를 하려다가 자기도 모르게 삼천포로 빠진 것이죠. 그래도 얼마나 예쁜 이야기들인지 모르겠다. 감자놓기 끝나고 장난감 하나 사줘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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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감자놓기를 하면서 참으로 많은 땀을 흘렸습니다.
그래도 작은 텃밭에 심는 감자다 보니 두 시간 여 만에 감자놓기가 끝났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라 이젠 씻는 것도 일입니다.
흙떼가 생각보다 잘 빠지질 않습니다. 비눗칠을 해서 씻고 또 씻어도 남는 것이 흙떼니 아무리 빨리 씻어도 15분은 족히 걸리죠. 감자놓느라 기운을 뺀터라 더 힘들게 느껴집니다.

그렇게 샤워하고, 밭에서 입고 일했던 옷과 신발 등을 물에 담가 놓으면 일단 작업이 끝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올해는 씨앗을 한 컨테이너 심었는데 얼마나 거둘 수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미 감자를 심으면서 풍성한 것들을 수확했으니 올해 감자농사는 밑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흙을 만지고, 온 가족이 합심해서 땀을 흘리고, 감자를 놓으며 사랑스런 대화들을 나누고, 얼마나 거둘까 기대하는 마음을 갖을 수 있는 시간을 가진 것만으로도 큰 수확을 거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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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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