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권 의원 방송사노조 관련 상세한 자료 요청 물의

언론노조 등 강력 반발 "노조를 공격하기 위한 악의"

등록 2003.09.02 17:01수정 2003.09.17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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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지난 6월 27일 국회 문광위에서 질의하는 심재권 민주당 의원.

지난 6월 27일 국회 문광위에서 질의하는 심재권 민주당 의원. ⓒ 오마이뉴스 이종호

합법적인 의정활동인가, 반노동자적 공격인가. 국회 문화관광위 소속 심재권 민주당 의원(서울 강동을)이 지난 1일 방송위원회와 KBS, MBC, EBS 등에 노동조합에 대한 상세한 내역을 포함한 감사 자료를 요청해 물의를 빚고 있다.

심의원이 요청한 자료에는 지난 3년간 해당사 노조와 관련 △상근자수의 변화 추이 및 상근자 명단(상급단체 파견자 포함) △노조비 총액 및 노조 자산 운영내역 △노조 가입율 △노사협약(인사, 급여규정 등) △부서장급 이상 간부의 각 직급별 평균 승진기간과 노조 집행부 출신 간부의 평균 승진기간 비교 등이 들어 있다.

또한 부서장급 이상 간부의 신상명세, 즉 출신지역·출신학교·공채·특채여부·정치권 활동·노조활동을 포함한 경력·현노조 가입여부 등을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부서장급이란 인사권을 가진 직책을 의미한다고 덧붙였다.

이어 심의원은 '양대 공영방송인 KBS와 EBS의 부사장이 모두 언노련 간부 출신인 것'에 대한 두 방송사의 입장을 물었다. KBS에 대해서는 "기술출신 부사장이 적절치 못하다는 의견도 있는데 현 부사장의 임명 이유를 밝혀달라"고 요구했다. EBS에 보낸 2차 자료요청에는 '교육방송 간부MT 때 강사를 언노련 정책자문위원으로 결정한 이유와 해당 강사의 나이·학력·경력 등 신상명세'도 포함돼 있다.

문광위 소속 의원이 국감 자료를 요청하면서 해당 언론사 노조와 상급단체 관련 자료를 이처럼 상세하게 요구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경우이다.

KBS 정책기획센터의 관계자는 "노조 관련 질문을 받은 적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아직 검토 중이라 최종 답변을 하기는 힘들지만, 노조 관련 질문 중에 회사측이 설명하기 어려운 항목도 있다"고 말했다.

"노조를 공격하기 위한 악의" 언론노조·방송3사 노조 등 반발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신학림)과 방송3사 노조, 방송위원회 노조 등은 이와 관련 "노조에 대한 악의가 전제된 상식 이하의 자료요청"이라면서 "의정활동을 빙자한 노조 길들이기"라고 크게 반발했다. 전국언론노조는 2일 '심재원 의원은 의정활동 빙자한 노조공격 중단하라'는 제하 성명을 통해 "노동문제를 다루는 환경노동위원회도 아닌 문화관광위원회에 소속된 심위원이 법적 근거도 없는 이같은 자료를 요청한 것은 월권"이며 "노조를 공격하기 위한 악의로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고 비판했다.

노동조합은 자유의사에 따른 가입과 조합비로 운영되는, 헌법이 보장하는 자주적 운영체라는 게 언론노조의 입장이다. 언론노조는 노동조합의 조합비 총액과 노조의 예산운영 내역 등은 회사를 포함한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게 돼 있는 기본 권리임을 강조했다.


노조들는 더욱이 '양대 공영방송 부사장이 과거 언노련 강부 출신인 것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강한 거부감을 나타냈다. 김상훈 언론노조 사무처장은 "심의원 말대로라면 간부로 승진하기 전에 80∼90% 이상이 노조에 가입하고 있는 공영방송 조합원들은 앞으로 간부나 임원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인가"라고 되물었다.

전국언론노조 방송위원회 지부(위원장 김도환) 역시 같은 날 '심재원 의원은 반노동자적 의정활동을 중단하라'는 제목의 성명을 내고 심의원의 노동조합에 대한 편견을 지적했다. 방송위원회 지부는 "일반 간부의 평균 승진기간과 노조 집행부 출신의 평균 승진기간을 비교한 것과 간부 신상명세에 노조경력과 노조가입 여부 등을 포함시킨 의도는 노조탄압 획책"이라고 주장했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위원장 김영삼)도 같은 날 ''기술출신 부사장이 적절치 않다'는 게 심재권 의원의 소신인가?'라는 부제의 성명을 발표하고 "방송기술 종사자 전체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했다는 비난을 면치못할 것"이라고 항의했다. KBS본부는 "미국식 디지털전송방식 지지자로 알려진 심의원이 문광위 소속 국회의원이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그동안 이에 대해 입장을 달리해온 각 방송사 노조를 길들이기 위한 목적으로 꺼내든 카드는 아닌지 의심된다"면서 심의원의 해명을 요구했다.

전국언론노조 EBS지부(위원장 이상철)와 MBC본부(위원장 최승호)도 각각 관련 성명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국언론노조 MBC본부 관계자는 "노조를 회사 조직으로 보는 것은 무지한 시각"이라며 "경제성장의 걸림돌로 '노조'를 공격하는 최근 정국을 반영한 듯한 이같은 질문의 저의가 무엇인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심 의원 측 "어떤 의도도 없다... 정치적 해석 오히려 당황"

반면 심재권 의원실은 이같은 자료제출은 정당한 의정활동의 일환이라면서 방송사 노조측의 주장을 이해하기 힘들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유창오 보좌관은 "피감기관의 경영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노조 관련자료가 필요해 요청했을 뿐"이라며 "왜 정치적 해석을 하는지 오히려 당황스럽다"고 밝혔다.

그는 노조측 반발에 대해 "'정당한 요구냐 아니냐' 논란보다 국감대상에 피감 기관의 노조(활동)가 포함되느냐 아니냐 여부가 쟁점"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또 노조의 자산과 운영내역 등 회사측이 답변할 수 없는 자료요청을 한 이유에 대해 "급하게 문서를 만들다 보니 들어간 듯하다"면서 "어떤 의도도 없다"고 말했다.

심 의원도 치밀한 국정감사 자료 준비를 위한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번 파문과 관련 △자료요청서 작성은 보좌진이 자율적으로 하며 어떤 목적을 갖고 하지 않는다 △국정감사에서 올바른 질문을 하려면 광범위한 상황 파악이 필요해 관련한 사항을 물었다 △최근 노사관계가 사회적인 이슈로 대두되고 있는 때라 다양한 질문을 했을 뿐 편향된 시각이나 악의가 없었다 △자료요청은 준비단계이고 국감에서 최종적으로 질문할 내용은 의원과 보좌진이 함께 취사 선택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이번 자료요청서는 해당 보좌관이 자율적으로 결정해서 이뤄졌으며 사전에 의논하거나 구체적인 내역을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통상 이같은 자료요청서 작성은 실무 차원에서 폭넓고 자유롭게 진행된다는 게 심 위원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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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언론운동협의회(현 민언련) 사무차장, 미디어오늘 차장, 오마이뉴스 사회부장 역임. 참여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실 행정관을 거쳐 현재 노무현재단 홍보출판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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