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웅 성균관대 교수 (전 <대한매일> 주필)오마이뉴스 남소연
- 대담 및 정리 : 정운현 강이종행 기자
- 사진 : 남소연 기자
역사학자 강만길 상지대 총장은 20세기 우리 역사를 '한(恨)의 역사'로 규정한 바 있다. 지난 세기 전반은 일제 강점하 군국주의자들로부터 혹독한 무력통치를 받고 지냈으며, 후반은 외세에 의한 국토분단과 그로 인한 이산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우리는 새 세기를 맞고서도 아직도 과거사 문제로 고통을 겪고 있다. 일제하 피해자들은 여전히 역사의 상처속에서 살고 있으며, 우리 현대사를 왜곡해온 친일문제 역시 제대로 정리된 것이 없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피학살자들의 문제는 세인의 관심조차 끌지 못하고 있다.
뜻있는 몇몇 국회의원들의 주도로 과거사 청산 관련 특별법이 발의는 됐으나 상임위조차 배정받지 못한 채 국회에서 수년째 방치돼 있는 것이 우리 국회의 현실이다. 이런 가운데 반평생을 민족문제, 역사청산 문제 등에 매달려 연구와 함께 사회참여 활동을 해온 사람이 있다. 김삼웅 성균관대 교수(전 <대한매일> 주필)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최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내후년(2005년)이면 광복 회갑(60) 주년인데 아직까지 이런 문제가 처리 안됐다는 것은 정부가 백성들에게 큰 죄를 저질렀다고 봐야 한다"며 "이제라도 그들의 아픔을 정부가 나서서 어루만져 줘야한다"고 말했다.
그는 친일청산 등 과거사 청산 문제를 비롯해 한국사회의 이념 갈등, 보수언론의 구조적 문제, 작금의 민주당의 분당사태 등에 대해 거침없이 자신의 생각을 토해냈다. 30년 가까이 정당인, 저술인, 언론인으로 활동해온 그를 추석 연휴 전날(9일) <오마이뉴스> 사무실로 초청, 얘기를 나눠 보았다. 다음은 김 교수와의 일문일답을 간추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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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봄 대한매일 주필에서 물러난 후 그간 어떻게 지냈나. 근황을 소개해 달라.
"신문사를 그만 둔 뒤 대학에 강의를 나가고 있다. 그 외 몇몇 단체에서 심의, 자문역할을 맡고 있는데 일주일에 한번씩만 회의에 참여해도 시간이 금방 간다. 여러 가지 일들을 함께 하면서 보람도 느끼지만 어떤 때는 우리 사회에 인재들이 적지 않은데 왜 내가 이런 일을 도맡아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 참여하고 있는 기관이나 단체들의 면면을 간단히 소개해달라.
"민주화운동 보상심의위원회, 제주4.3사건 진상규명위원회,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위원회, 민주공원 건립추진위원회, 임시정부 기념관건립위원회, 친일반민족행위처벌 특별법제정촉구위원회, 친일파인명사전 편찬위원회 등에서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밖에 백범 김구선생 기념관 운영위원회, 독립기념관, 광복회 등에서도 이사, 자문위원 등을 맡고 있다."
- 참여하는 기관, 단체가 무려 10개가 넘어보인다. 이름만 걸어두는 명예직인가, 아니면 직접 회의에 나가서 의사 결정에도 참여하고 있는가?
"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 등 정부 산하 위원회는 정기적인 회의가 있고, 거기서의 결정은 곧 행정집행으로 이어진다. 그외 대부분의 단체도 직접 참여해서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결정하거나 또는 잘못된 결정을 바로잡기도 한다. 흔히 사회저명인사들이 이름만 걸어두는, 있는 있으나마나 한 것들과 다르다."
| | | '지사형 논객' 김삼웅은 누구? | | | | 1943년 전남 완도출생의 김삼웅 전 대한매일 주필은 정당인·저술가·언론인·역사연구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 인물이다.
<사상계> 신인논문상 입상을 계기로 언론활동을 시작한 그는 군사정권 당시 제도권 언론이 제구실 못하던 시절 야당 기관지 책임자로 활동하다가 구속·고문·수배를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당시를 회고하면서 "그래도 당시 나만큼 언론자유를 누린 사람은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지난 98년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4년여 대한매일 주필로 재직하면서 민족문제, 언론, 국내정치 등을 주제로 정론을 펴온 그는 독자들로부터 '지사형 언론인'이라는 평을 듣기도 했다.
평소 저술가로도 왕성한 활동을 해온 그는 <친일정치 100년사> <한국 곡필사> <필화사> <한국민주사상의 탐구> <금서> 등 30여 권의 저서를 남겼다. 또 대한매일 재직시절 <백범 김구 전집> <박은식 전집> 등을 주도적으로 편찬하기도 했다.
1만여 권의 장서를 소장하고 있는 그는 요즘 단재 신채호 선생의 평전을 준비중이며, 현재는 성균관대 언론정보대학원 겸임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 정운현 기자 | | | | |
- 활동하고 있는 기관·단체들의 성향을 크게 보면 독재정권의 인권유린과 반역사성에 대한 재평가 및 명예회복, 그리고 또 하나는 민족정기와 관련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일과 개인적으로 어떤 인연이 있나?
"20여년 동안 재야 민주화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가 민족정기나 정의보다는 대세주의, 당대의 권력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 원인은 친일파 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한데서 왔고, 지금도 여전히 수구 기득권 세력에 포위돼서 민족정기나 사회정의가 설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
다수의 양심적인 인사들 중에서도 이 부분을 소홀히 하거나 또는 그런 사람들 대부분이 과거 권력층이다 보니까 이런 세력들을 적대시 하는 것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그래서 나 같은 사람이라도 그런 일을 하지 않으면 후유증이 더 오래 갈 것 같아 시작했다."
- 최근에는 민주당 김희선 의원이 주도하는 '친일 반민족행위처벌 특별법' 제정 촉구위원회에 동참한 것도 그런 작업의 연장선인가?
"그렇다. 1949년 6월 6일 이승만 권력의 '반민특위 습격사건'으로 반민특위가 좌절된 이후 국회 차원에서 왜곡된 우리 현대사를 바로잡으려는 시도 자체가 없었다. 더러 몇몇 의원들이 그런 얘기를 사석에서는 했지만 한번도 실행이 안됐다.
김희선·김원웅 의원을 중심으로 친일파 청산 특별법안이 마련되는 과정에 나도 참여했으며, 그런 인연으로 법제정을 위한 촉구위원회의 홍보위원장을 맡게 됐다. 관련 성명서나 문건 작성 등을 내가 직접 맡고 있다."
- 현 정치권은 친일문제에서 어느 정도 자유롭다고 보나?
"현 정치권 내에 친일인사는 없다. 몇몇 현역의원들의 선대가 친일문제로 비판받을만하나 직접적인 당사자는 아니다. 그러나 해방 반세기가 지난 지금 16대 국회에서 이런 법률 하나도 제정하지 못하고 있는 점은 분명 아쉬운 대목이다.
특별법 제정을 위해 154명의 의원들에게 서명을 받아서 상임위에 상정했다는데, 소문에는 행자위·법사위에서 서로 안 맡으려고 하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핑퐁식으로 민족문제를 외면하는 것 자체가 기득권에 친일세력들하고 어떤 식으로든 연계된 사연이 있는 것 아닌가 오해를 받을 수 있다. 만약 특별법 통과를 거부 내지 훼방하는 의원이 있으면 샅샅이 조사해 국민과 역사 앞에 고발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