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묘지 내 친일파 묘 파내야"

[인터뷰] '제2 반민특위' 구성 특별법 제안한 김희선 의원

등록 2003.08.13 12:52수정 2003.08.15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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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문/정리 : 정운현 이성규 기자
- 사 진 : 이종호 기자
- 동영상 : 김이연심 PD


a 김희선 민주당 의원

김희선 민주당 의원 ⓒ 오마이뉴스 이종호

일제강점에서 해방된 지 올해로 58주년을 맞아 국회의원들이 '민족정기'를 확립을 위해 발벗고 나섰다. 마치 제헌국회 당시 반민족행위자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를 연상시키는 형국이다.

해방직후 친일파 처단을 위해 제헌국회가 구성한 반민특위가 친일파들의 방해공작으로 중도에 하차하면서 친일파 청산문제는 두고두고 우리 현대사에서 숙제로 남아왔다.

민주당 김희선 의원(서울 동대문갑)이 이끄는 '민족정기를 세우는 의원모임'은 지난해 친일파 708명의 명단 발표를 통해 국회 차원에서 친일파 청산문제를 공론화 시킨데 이어 올해 이를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켜 아예 '제2의 반민특위' 구성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위해 뛰고 있다.

이미 국회의원 절반 가량의 서명을 받아놓은 상태다. 적지 않은 숫자다. 14일 국회에서 입법을 정식 발의할 예정인데 이들은 가을 정기국회에서 이 특별법을 통과시킨다는 계획이다. 우리사회에서 논란의 대상이자 민족정기를 훼손시켜온 친일파에 대한 '역사청산 작업'을 추진해나간다는 방침이다.

물론 이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거쳐 입법에 이르기까지는 험로가 예상되지만 이미 지난해 친일파 명단 708명을 발표한 경험에 비춰 볼 때 그리 비관적이지만은 않다.

독립유공자의 후손으로 국회의원 가운데 드물게 민족문제에 남다른 관심을 보여왔고, 또 이번 특별법 입법을 사실상 주도하고 있는 김희선 민주당 의원을 12일 오후 여의도 의원회관으로 찾아가 만나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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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김 의원과의 일문일답을 간추린 것이다.

- 14일 '일제강점하 친일 반민족 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을 발의할 예정인 것으로 안다. 이 법안을 준비하게 된 동기는.
"해방후 우리사회는 가치관이 혼돈된 사회라고 할 수 있다. 그 결정적인 이유는 우리사회가 정의냐, 불의냐가 아니라 힘이 있느냐 없느냐라는 기준이 판치고 있기 때문인데 이는 일제하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한 때문이다. 이제는 정의가 바로 서고 옳은 것이 힘을 가질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게 됐다"

- 작년 3·1절에는 친일파 명단 발표를 주도한 바 있다. 이번 특별법 발의는 그 연장선 상의 작업인가.
"그렇다.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모임'은 명단 발표 이후에도 일본역사 교과서 왜곡사건 규탄, 화폐에 독립유공자 얼굴넣기 작업, 친일파 선정인물 CD-ROM 제작, 배포 등 지속적인 작업을 해왔다. 이미 이번 특별법 제정을 위한 공청회를 마쳤고, 이어 토론회를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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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이종호

- 특별법 준비를 위해 몇 사람이, 얼마동안 준비해 왔나.
"민족정기 의원모임이 중심이 돼 1년 넘게 준비해 왔다"

- 이 작업을 위해 특별히 자주 만나 대화를 나눠온 국회의원은 어떤 분들인가.
"10명 정도 된다. 운영위원이 7명 정도 있는데 그 중에 이 법안의 기초를 마련한 송영길 의원, 이호웅 의원 등이 있다. 다같이 토론도 했다."

- 작년에 친일파 708명의 명단을 발표한 이후 별다른 후유증은 없었나.
"생각보다는 후유증이 없었다. 명단 발표했을 때 692명만 해야 하는데 16명을 넣느냐 마느냐를 놓고 심사위원간에 이견이 있었다. 16명은 공과 과가 같이 있으니 포함시키지 말자는 의견도 없지 않았다. 언론사 한 두 곳에서 민감한 반응을 보였지만, '언제 친일을 했느냐, 친일 안했다' 등의 적극적인 반발은 없었다. 놀라운 사실은 김활란씨나 서정주씨는 최근 분들이지 않나. 그 쪽에서도 일체의 반응도 없었다. 반발에 대비해 우리쪽에서는 역사학자나 교수, 시민단체, 마지막 심사할 때는 법적 대응을 위해 법률단을 확보하기까지 했다."

- 당사자나 유족들로부터 왜 반발이 없었다고 보나.
"이유는 두 가지 정도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우리가 심사를 잘 한 점이다. 즉 객관적이고 과학적이고 자료가 확실했기 때문에 이의를 못 단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후손들이 문제제기를 한다면 (그들 조상에게)누를 끼치는 그런 일들이 발생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사회에는 친일파 문제에 대해 여전히 감정이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를 다시 끄집어내니까 통쾌해 하는 분들도 있었는데 아마 그런 이유들이 작용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국민들의 압력도 겁이 나지 않았겠나 싶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보수언론들은 이같은 노력의 결과에 대해 비판적 보도를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마 자신들의 죄가 있으니 그 결과를 폄하해 자신들의 명예를 세우려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제시대 당시 그 정도 친일을 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느냐며 일반화시키려 한 것도 그런 거라고 본다."

- 공과가 교차된 인사들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이런 인물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어떻게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는가.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내 생각에는 공(功)은 공대로 알리고 과(過)는 과대로 알리는 것이 후세사람에 대한 도리라고 본다. 예를 들어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살인을 했다, 그런데 그 다음에 좋은 일을 했다고 해서 그 살인의 기록이 묻히는 것은 아니다. 친일 반민족행위 문제는 한민족의 운명이 달렸던 문제이다. 일제의 말살정책에 의해 36년을 살아왔는데 (친일을) 했으면 얼마나 했겠나라고 반문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 친일이라는 죄에 대해 알고자 하는 것은 정죄(淨罪)하는 데에도 의미가 있지만 다시는 후세가 그런 죄를 짓지 않도록 역사의 교훈을 마련하는데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마찬가지로 그런 과정을 가져야지,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고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 교육계든, 예술계든 이름을 남긴 사람 중에서 일제 때 친일전력이 있는 사람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그리 공정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많은데.
"공에 대한 평가가 상대적으로 지나쳤다고 본다. 공은 현실적으로 겉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평가도 쉽다. 반대로 과에 대해서는 대개 감춰져 있기 때문에 적절한 평가가 어려운 측면이 많다."

- 친일파로 지목될 만한 당사자들이 사망한 현 상황에서 특별법과 같은 법률을 통해서 진상을 규명하는 것이 역사적 평가라는 의미는 가질 수 있겠지만 사회적 실효성을 가지기는 힘들지 않나.
"사회적 실효성라는 문제만을 놓고 얘기하면, 이 일 자체에 무력감을 줄 수 있다. 최근 독일을 가서 놀란 사실은 나치에 부역한 사람들을 찾아내서 법률로 다스리는 데 아직도 예산을 편성하고 있더라. 과거를 잃어버린 민족은 미래가 없다는 역사적 인식을 가져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이 문제는 우리사회를 반듯하게 만들기 위한 작업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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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이종호

- 특별법 발의를 보면서 사람들은 '제2의 반민특위'가 다시 닻을 올린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제헌국회 때 반민특위에는 특별검찰부, 조사위원회 등 3개로 구성돼 있었다. 제헌국회 당시의 반민특위와 진상규명위원회의 차이는 뭔가.
"반민특위는 48년 9월에 재적의원 141명 중 103명, 즉 압도적으로 통과됐다. 하지만 이듬해 초 반민특위 출범 8개월만에 활동을 그만둬야하는 상황이 됐다. 그 당시는 규명도 하고, 재판도 하고, 결과에 대해 응징도 했다. 그러나 이번 특별법은 친일파들의 행적 규명만 하자는 것이다. 사법적 처벌을 못해 속상하고 안타깝지만 규명이라도 하고 역사자료로 남겨두기라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안타깝게도 친일 반민족 행위자에 대한 문건이 단 한 장도 없다. 국가가 백성들에게 해야 할 역할을 너무 못했다는 분명한 증거이다."

- 진상규명위원회 활동 기간을 5년을 규정했는데 상당히 긴 기간이다. 조직규모나 상근인력 등에 대해 설명해 달라.
"대통령 직속 특별위원회이다. 거기서 자료수집, 평가, 규명하는 것으로 돼 있다. 활동기간이 5년이다. 사실 이번에 의원들의 서명을 받는 과정에서 서명을 하지 않은 일부 의원들이 '규명이 정확하겠는가'라고 얘기도 하더라. 물론 (서명을 하지 않기 위한) 핑계에 지나지 않겠지만. 5년 정도 활동하면 상당히 객관적인 자료수집도 가능할 것으로 본다."

- 친일파 행적연구나 자료수집을 민간차원에서는 민족문제연구소에서 그동안 해 왔다. 이쪽과의 어떤 형태로 협력할 것인가.
"대통령직속위원회로 두는 이유는 민간단체와 역사학자 등과 함께 위원회를 만들기 위해서이다. 반민특위와의 차이점이 있다면 당시 반민특위의 구성 주체는 국회의원이었다. 이번에는 대통령 직속으로 활동을 하게 된다. 이 위원회가 민간단체의 10여 년간의 업적을 높이 평가해서 함께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 오늘 현재 몇 명의 국회의원들이 서명을 했나.
"129명이다."

- 이후에도 반응이 좋을 것으로 예상하나.
"200명 정도 서명을 받으려고 한다. 그러나 친일문제에 대해 워낙 민감하다 보니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 서명에 반대하거나 거부하는 국회의원들은 그 이유가 뭐라고 보나.
"지나간 것을 지금 들춰서 무슨 의미가 있겠나, 과거사를 들춰내서 남는 게 뭐냐는 등의 이유를 대더라. 또 친일행적 규명하는데 기준이 과연 맞겠느냐는 식인데 이건 핑계라고 본다."

- 서명한 의원들을 소속당으로 분류하면 한나라당이 제1당임에도 20명선에 불과하다. 이들이 적극적으로 서명을 하지 않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깊이 생각해본 것은 아니지만 지난해 이회창씨가 대통령 후보로 나왔을 때 (이후보 부친의 친일행적에 대한)문제제기가 있었지 않나. 그때 여야가 민족문제를 정치쟁점화하지 말자고 한 적이 있다. 알다시피 이회창씨 부친이 일제시대 검찰서기를 지낸 사실을 두고 굉장히 민감해 했다. 아마 그런 부분이 작용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 14일 발의를 하면, 이틀 동안 몇 분 정도 더 서명을 받을 수 있겠나.
"동료 의원과 역할을 나눴다. 40명 정도가 더 서명을 하지 않겠나 본다. 180명 정도는 넘어야 한다고 본다."

a 김희선 의원(왼쪽)과 인터뷰 중인 정운현 <오마이뉴스> 편집국장

김희선 의원(왼쪽)과 인터뷰 중인 정운현 <오마이뉴스> 편집국장 ⓒ 오마이뉴스 이종호


- 정치인의 모든 행동은 정치적이라고 할 수 있다. 김 의원의 이런 활동 역시 정치적 목적이 있다는 시선도 없지 않은데.
"정치적이라는 의미는 해석을 여러가지로 할 수 있다고 본다. 인간이 살아가는 것 자체가 정치적이지 않나. 정치인을 보고 정치적이라고 하는 것은 통상 이해관계에 따른 조건이 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송구스럽지만 나는 30대 때부터 50대까지 오면서 여성운동과 민중운동, 통일운동에 몸을 바쳤다. 지금도 유권자를 대할 때 안타까운 것은 그들이 민족문제에 대한 명확한 문제의식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문제의식이 부족하니 해석을 개별적으로 할 수밖에 없는 상황 아닌가. 국민들이 역사를 제대로 볼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간 우리정치는 우매한 국민이 되도록 만들어왔다."

- 국사편찬위원회의 한 모임에서 민간차원의 친일파 관련 편찬작업에 경비를 지원한 것을 두고, 편찬위원 중 일부가 적절하지 않다고 문제제기한 바 있다. 어떻게 평가하나.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지난해 친일파 명단 발표 당시 708명으로 할거냐 692명으로 할거냐를 두고 심사위원 중에도 그런 시각을 가졌던 분들이 있었다. 해방후 친일파 청산이 제대로 안된 탓에 우리 사회는 친일·반민족 행위자들의 의식과 사고 등으로 상당히 덮혀 있다. 역사가들 가운데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 사관이 문제라고 본다. 그 분들은 왜 민간 차원의 작업을 정부가 지원하느냐 하지만 국가가 못하는 것을 민간단체가 하고 있다면 당연히 지원을 해야 마땅한 것 아닌가. 오히려 상을 줘야 한다."

- 올해가 해방 58주년이고, 국회는 17대 국회를 앞두고 있다.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국가 차원에서 이 문제를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이유가 뭐라고 보나.
"해방 이후 우리 사회는 친일파 세력이 한국 정치를 잡았다. 그리고 그 기득권 세력이 계속 이어졌다. 그 다음은 독재정권 등 군벌이 국가권력을 잡았고, 문민정부·국민의정부·참여정부로 오지 않았나. 이 나마도 129명이 서명을 했다는 것은 상징적이라고 본다."

- 친일 관련 반민족행위 자료를 수집하고 검증·평가해서 편찬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후세에 알리기 위해서는 친일파들의 범죄행위를 교과서에 기록하는 문제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보는데.
"예전에 대정부 질문에서 이상주 당시 교육부총리에게 이 문제를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지금 친일파들이 애국자처럼 실려있는 교과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을 했더니 고치겠다고 하더라. 이 법률이 통과되면 정말로 꼭 해야 할 일이다. 실천적 작업으로 이 사안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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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이종호

- 며칠전 대전 국립묘지에서 시민들의 시위가 있었다. 친일파 김창룡 묘를 이장하라는 시위였다. 대전 뿐 아니라 동작동 국립묘지에도 친일 전력자들의 묘가 있다. 제대로 된 나라라면 이들의 묘는 파내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나.
"그런 얘기를 들으면 작은 할아버지(광복군 3지대장을 지낸 김학규 장군/필자)가 내게 하신 얘기가 생각난다. 작은 할아버지께서는 내게 '나는 절대 이승만이 묻힌 자리에 안 묻히겠다'고 했다. 하지만 돌아가신 후 사회장을 지내다보니 작은 할아버지의 유언을 허락하고 말고할 문제가 아니었다. 워낙 가난해서 결국 할아버지 유언을 지켜드리지 못하고 국립묘지에 모셨다. 가난이 뭔지…. 할아버지는 그렇게 말씀 하셨는데….(이 대목에서 김 의원은 할아버지의 유언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회한에 눈시울을 적셨다) 이제라도 옮겼으면 한다는 생각이 절실하다. 어른들께서는 묘를 어떻게 옮길 수 있느냐고 하는데. 친일 전력이 있는 분들의 묘는 국립묘지에서 지금이라도 파내야 한다. 하지만 이같은 작업을 할 때 전국민적 감정이 어떤가를 살펴야 한다. 이런 것들에 대한 반대 여론이 엄청날 것이라고 보지만 당위적으로 옳다고 본다."

- 광복회의 위상이 사회적으로 그리 높지 않다. 광복회의 위상을 높이는 것은 민족정기를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보는데.
"광복회에 관여하면서 느낀 점인데 결국 광복회도 기득권 세력이 돼 있더라. 또 용기가 없는 분들도 있더라. 광복회 회장이 새로 바뀌었는데 우리 할아버지 부하출신이다. 새 회장님께서는 잘 하시겠다고 하시더라."

- 독립유공으로 건국훈장을 받은 분 중에도 몇몇 친일전력자가 포함돼 있다. 몇년전에 몇 명은 훈장이 치탈됐지만 아직도 대상자가 남아 있다고 본다. 이런 작업 역시 상징적으로 선행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겠나.
"사실은 국립묘지에 친일파가 묻혀있는 것을 파내는 것 보다 훈장을 치탈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한다. '민족정기 의원모임'이 힘을 가지게 되면 이런 일을 하게 될 것이다. 이 법안이 정기국회에서 통과되면 그 과정에서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본다."

- <동아일보> 설립자인 인촌 김성수는 건국훈장 대통령장(2등급)을 받았다. 이는 유관순 열사가 받은 독립장(3등급)보다도 높은 등급이다. 과연 인촌 김성수가 유관순 열사보다 훨씬 독립운동에 공이 크다고 한다면 쉽게 납득이 되지 않을 것이다. 인촌의 친일행적이 분명한 만큼 건국훈장도 치탈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 점에 대해서는 마땅하다고 본다. 사실 그런 문제도 국민적 공감대, 아래로부터 역량이 올라오는 힘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본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 민족정기 의원모임은 우리나라의 민족정기의 수준을 수우미양가로 판정한다면 어느 정도라고 보나.
"미와 양 사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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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이종호

- 중하로 보는데 왜 그렇게 낮게 보나.
"그건 연령별로 본 결과다. 솔직히 50대 후반은 그렇지 않다. 하지만 이후 젊은이들은 반대 상황이다. 교육기관에서 우리 역사에 대해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것같다. 국사 과목만 하더라도 판검사 사법고시에 이 과목이 없다고 한다. 이는 보통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자기 민족의 역사와 발자취에 대해 그렇게 소홀하게 취급해서야 되겠는가.

혹자는 이를 두고 배타적 국수주의를 주장하는 것 아니냐고 하겠지만 내가 보기엔 참으로 안타까운 노릇이다. 수준을 그렇게 낮게 평가한 이유는 교육의 문제로 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교육에서 시작된다. 일제는 신민정책이 아니라 합리적 말살정책을 해 왔고 창시개명까지 하면서 온 것이 청산이 되지 않았다. 그러니 박정희에 대한 평가도 엇갈리는 것이다. 역사를 짚은 이유도 그런 의미에서다."

- 최근 일본의 우경화가 도를 넘었다고 본다. 개헌하지 않은 상태에서 전쟁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자위권도 발동할 수 있도록 했다. 일본의 우경화에 대해서 젊은이들은 물론 기성세대들도 우려를 표방하면서도 일본에 대해 문화개방, 선린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한일 과거사 문제는 어떻게 접근하고 또 매듭짓는 것이 현명하다고 보나.
"지난 7월 일본을 갔다 왔다. 유사법제나 테러방지법이나 히로히토 생일 등등의 군국주의가 부활되는 것에 대해 일본은 일단 반성해야 한다고 본다. 사과를 한다는 기조가 있어야 함께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닌가 생각한다. 당시 참의원 의장을 비롯해 일본 국회의원 16명을 만나서 '일본은 경제강국이다. 하지만 지금 전세계가 원하는 지도력에는 도덕성이 필수라고 본다. 독일의 경우 어떻게 했는지 잘 알고 있지 않나. 과거의 잘못을 인정해야 함께 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래야 아시아에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 의원들은 동의하더라. 지금도 일본내에는 양심적 의원들이 있기 때문에 그 분들이 중심적으로 풀어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리고 아시아 평화 의원모임을 구성하자고 제안을 했다. 한국·중국·인도네시아·필리핀 등의 의원들과 함께 해 만들어내면서 일본에 과거사에 대한 진지한 반성을 촉구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민족정기 의원모임'은 어떤 단체?

김희선 의원이 회장을 맡고 있는 '민족정기를 세우는 의원모임'은 발족한지 햇수로 3년째로 국회내에서 민족문제에 관심있는 의원들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다.

국회내의 연구모임은 13명이 돼야 정식 연구단체로 등록할 수 있는데 처음엔 13명 모으기가 힘이 들었다고 김 의원은 회고했다. 그러나 지금 이 모임에는 여야 합쳐 회원이 32명에 달한다. 회원 가운데는 한나라당, 자민련 소속 의원도 포함돼 있다.

모임 발족동기를 두고 김 의원은 "민족정기를 세우기 위해 이를 대중화할 목적"에서였다고 말한다. 이 모임은 지난해 3.1절을 맞아 친일파 708명의 명단 발표를 해 우리 사회에 충격을 던진 바 있다.

또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사건과 관련, 규탄성명 발표는 물론 일본 현지조사를 통해 연구보고서도 내기도 했다. 이같은 활동으로 의원모임은 최근 국회가 1년에 한번씩 우수 연구단체에 주는 상을 받은 바 있다. / 이성규 기자
- 노무현 대통령이 방일하던 날(6월 6일) 일본 의회에서 유사법제가 통과됐다. 노 대통령은 방일 기간중 과거사 문제를 초기에는 언급하지 않다가 중의원 연설 때 잠시 언급한 바 있다. 노 대통령은 한일간의 과거사 문제를 선언적으로 표현해 해결하기보다는 다른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것 같아 보인다. 적절한 방식이라고 보나?
"어려운 질문이다. 대통령의 발언은 정치적 발언 이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봤다."

- 평소 민족문제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활동해오고 있는데 동료의원들의 반응은 어떤가?
"일부 의원들이 나에게 이런 일을 하는 것을 별나서 하는 것 같다라는 시각으로 보기도 했다. 그 분들은 유권자에 표가 되는 것을 하라, 그런다고 유권자들이 표를 찍어주느냐고 하더라."

- 정치인은 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데 '표가 안되는 일'이라는 주장에 대해 동의하는가?
"동의하지 않는다. 표가 안된다니, 이렇게 <오마이뉴스>에서 인터뷰를 하러 찾아오지 않았는가. 그런 말을 들으니 좀 서글프고 맺히더라. 그래서 어떻게 내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냐고 따지기도 했다. 민족문제를 생각하지 않는 국회의원이 어찌 지역구민들을 대표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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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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