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시를 준비하는 우리들의 얼굴(2)

서강훈의 <즐거운 고딩일기>

등록 2003.09.12 20:16수정 2003.09.13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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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근황, 2학기 수시모집

서강훈
바야흐로 요즘은 2학기 수시모집 철이다. 대학으로 가는 길로서 첫 번째를 1학기 수시모집으로 친다면, 이제 두 번째 대학가기 연례행사가 진행 중인 셈.

그런데 낮 시간을 조금 할애해서 준비해도 거뜬했던 1학기 수시모집 때와는 달리, 우리는 밤 10시 30분을 조금 넘긴 시각까지 학교에 남아, 2학기 수시모집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한 배경에는 단순히 1학기 수시, 2학기 수시라는 어감상의 차이뿐만이 아닌 여러 가지 상황 변화에 따른 사연이 있다.

우선 수시모집 지원자와, 그들이 지망하는 대학수가 크게 늘었기 때문.

사실, 1학기 수시모집에 비해 2학기 수시모집에서는 전체적으로 대학들이 모집하는 학생 인원수가 더욱 많아진다. 그러다 보니까 더욱 더 많은 학생들이 수시모집에 지원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학교의 경우에는 1학기 수시모집에서의 결과가 그리 좋지 않았기 때문에 더더욱 2학기 수시에 희망을 거는 이들이 많다.

수업시간, 수시 철을 맞아 선생님들께서도 2학기 수시에 많이 응시해 볼 것을 권하셨다.


“수시라는 것을 시작하고부터, 정작 수능 성적으로 대학에 가는 정시모집에서는 모집하는 인원이 많이 줄었습니다. 그러니까 수능까지 다 보고, 정시모집으로 대학에 가려고 하면 경쟁자가 더 몰리게 되죠. 자기 성적이 조금 괜찮다고 생각된다면 수시를 많이 써보세요. 물론 수시를 많이 쓰면 자신이 원하는 결과대로 안 나올 수도 있고, 그렇게 된다면 대학들 배만 채워주게 된다는 측면도 있긴 하지만, 어쩌겠어요. 어차피 대학에 가야하고 조금의 가능성이라도 보인다면 시도를 해 볼 가치가 있는 거지. 하여간 수시로 대학들 많이 가야 합니다.”

우리 반의 경우, 수시모집에 응시하는 친구들은 대략 10여 명이다. 그리고 우리 반 학생들이 쓰는 대학원서의 총 개수는 대략 30개 이상이다. 친구들에 따라서 다르지만 적게는 한 개에서부터 많게는 일곱 개까지도 쓴다.


“야 너는 대학원서 몇 개 쓰냐?”
“나? 4개 정도 쓰려고.”

“나는 6개 정도 쓰려고 하는데.”
"그렇게나 많이 써? 너 네 집 부자구만.”

“부자는 무슨, 그냥 찔러 볼 수 있는 데까지는 찔러보는 거지(웃음).”

인원수로 본다면 대단치 않은 숫자일지도 모르지만 학생 별로 준비해야 하는 것이 많다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여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수시모집 지원자의 증가에 따라 대학이 각 지원자들에게 요구하는 2학기 수시모집 원서 접수와 각종 서류가 폭주하게 된 것. 그러다 보니 우리 반 담임선생님이 계시는 전산실은 하루 종일 바쁘다. 대학 별 서류 접수 날짜에 따라서 준비 멤버는 순번을 서듯 달라지기 때문이다.

서강훈
친구 몇 명과 전산실에 앉아, 지망 대학의 원서접수를 하고나서 대학에서 요구하는 ‘자기소개서’를 썼다. ‘자기소개서’란 것이 생소했던지 쓰고 지우고 하기를 몇 번을 반복해서야 겨우 끝마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벌써 밖은 깜깜해져 있었다. 잠시 후 학교 수위아저씨가 전산실로 오시더니 하시는 말씀.

“학교 문 닫을 시간 지났는데요.”


담임선생님의 비애

전산실, 책상에서 추천서를 작성하시던 담임선생님께서 대학별로 준비할 것이 너무 많다며 탄식하셨다.

“어이구, 무어 이렇게 준비할 게 많냐. 대학 별 원서에, 담임 추천서에, 학교 직인 찍힌 생활기록부에… 너희들 각자 좀 준비하면 안 되냐? 힘들어 죽겠다.”

“원래 이런 거는 담임선생님이 당연히 해주셔야 하는 겁니다.”

“원래 그러는 게 어디 있냐? 자기들이 알아서 척척하면 좀 좋아? 사실 생각을 해 봐라 너 네들이 몇 명인데. 나, 병원예약 해 놓고 오늘로 며칠 째 연기하고 있다."

“어디가 편찮으신데요?”

“이가 좀 그렇다. 치과.”

서강훈
정말이다. 며칠째 담임선생님의 퇴근 시간은 한밤중. 게다가 요즘 들어서 담임선생님께서는 당신 두 자식 얼굴도 제대로 못 봤다며 한탄하셨다. 사실 협의 하에 우리 반 학생 개개인이 할 수 있는 원서접수는 각자 집에서 인터넷으로 한다고는 해도 담임추천서, 교장추천서, 생활기록부 등은 선생님께서 준비하셔야 했다. 우리 반 2학기 수시모집에 응시하는 아이들의 것을 전부 다…….

며칠 새 기분 탓인지(?) 선생님 머리카락이 희끗희끗 해진 것도 같고, 여하튼 혈색이 안 좋아 지신 것만은 확실하다(한 친구는 이를 감지했는지 나름대로 큰맘 먹고 강장제 여러 개 들이를 사왔는데 이미 전산실에 많이 있었다). 그렇듯 담임선생님의 고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아, 내가 진짜 고3담임 또 하나 봐라.”

“(전산실에 계시던 다른 선생님)이번 연도에 내가 고3담임 맡을 뻔 하다가 못했는데 천만다행이구만.”

“내년엔 꼭 고3담임 맡아라(웃음).”

“야 그건 그렇고, 써 준 것 중에 한 개라도 붙어라. 전멸이면 이건 진짜 뭐가 되냐?”

“걱정 마세요. 그렇게 고생을 하셨는데 하나 정도는 붙겠죠. 그렇지?”

사실, 담임선생님이 고생하신 것에 비해서 우리 학교 학생들의 2학기 수시모집 합격에 대한 합격률은 그다지 큰 것이 아니리라.

1학기 수시모집 때 보여준 각 대학들의 우리 학교 학생들에 대한 냉담한 반응. 그렇다, 사실 우리 학교는 이른바 대학들이 선호한다는 ‘명문고’가 아니다. 게다가 우리 반은 ‘문과반’인 것.

서강훈
가끔씩 2학기 수시모집에 응시한 것에 대해서 회의가 들기도 한다. ‘과연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하고. 그렇지만 그때마다 희망을 버릴 수 없게 하는 것은 최종발표일 전까지 그 누구도 결과를 예상할 수 없다는 것과, 담임선생님의 높으신 고생(?)에 꼭 보답해야 한다는 절대적인 이유에서다.

내년, 잠시 시골로 내려가서 쉬신다고 하실 정도로 우리의 수시준비로 진정 엄청난 고생을 하고 계시는 담임선생님. 이런 상황을 제자 한 놈이라도 붙어라, 하는 악(?)섞인 희망으로 이겨내시는 모습에 존경과 더불어 경이 섞인 감사를 아니 올릴 수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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