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부, '베트남' 답습할건가

[쟁점기획-누구를 위한 파병인가③] 40년전 교훈 기억해야

등록 2003.09.17 15:41수정 2003.09.18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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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은 베트남전에 꼭 가야만 했는가?"

미국이 지난 64년 베트남 전쟁에 이어 이라크 침공에도 한국 전투병을 파병해 줄 것을 요청해 논란이 일고 있다. 베트남전에 파병된 한국군.
미국이 지난 64년 베트남 전쟁에 이어 이라크 침공에도 한국 전투병을 파병해 줄 것을 요청해 논란이 일고 있다. 베트남전에 파병된 한국군.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는 <한홍구의 역사이야기-대한민국사2>(한겨레신문사)에 실린 '누가 우리를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는가'라는 글에서 이렇게 물었다.

1964년부터 1973년까지 8년5개월 동안 미국의 요구로 한국군은 연인원 32만명을 베트남에 투입해 '사망 5000명, 부상 1만5000명'이라는 쓰라린 상처를 입었다. 뿐만 아니라, 지난 2001년까지 무려 7만여명이 미군이 뿌린 고엽제 피해로 고통을 받고 있다.(대한민국고엽제후유의증전우회 집계. 2세 포함)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시작된지 6개월이 지난 2003년 9월 15일, 한국 정부는 다시 미국으로부터 1개 사단 규모로 알려진 '전투병 파병'을 요구받았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는 파병 찬반 논란이 들끓고 있다. 한편에서는 "파병 결사반대"를 외치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파병은 국익"이라고 주장한다.

베트남 전쟁에 참가한지 40년이 되는 2003년, 참여정부와 한국 국민들은 다시 한번 질문을 받고 있는 중이다.

"한국군은 이라크전에 꼭 가야만 하는가?"

닮은꼴, 베트남 전쟁과 이라크 침공 : 점차 커지는 미국의 요구


'명분 없는 전쟁'이라 불리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동참하기 전에, 한국 정부와 국민들이 반드시 되돌아 봐야 할 것은 베트남 전쟁이다. 미국의 선제 공격과 전쟁 장기화, 동맹국에 대한 파병 요청, 한국군의 파병 논란, 비전투병에 이은 전투병의 파병 등으로 이어지는 순서가 꼭 닮은꼴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1961년 '공산주의 도미노현상'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베트남에 뛰어든 미국은 1964년 '통킹만 사건'으로 본격적인 공격 전쟁에 나설 때까지만 해도 '단기간'에 전쟁이 끝날 것이라고 믿었다. 물론 승리도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베트남 전쟁은 1973년 파리조약 체결까지 12년간 계속됐으며, 결과적으로 미국은 패배했다. 베트남 전쟁 12년간 미국은 연인원 260여만명을 투입했고 1100억 달러가 넘는 전쟁 비용을 쏟아부어야 했지만, 얻은 것은 별로 없었다.

한국 정부는 이같은 미국의 '잊고 싶은 전쟁'에 자유 우방의 이름으로 들러리를 섰다. 1964년 9월 이동외과병원과 태권도 교관 등 140명을 처음 베트남에 파견한 뒤로, 한국은 대규모의 비전투병(비둘기부대), 전투병(청룡부대·맹호부대·혜산진부대·백마부대)을 다섯 차례에 걸쳐 파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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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 한국 정부가 베트남에 파병한 부대는 의료와 공병지원 등의 임무를 맡은 비전투부대였다. 그러나 전쟁이 장기화의 늪에 빠지면서 미국의 요구는 점차 높아졌고, 한국 정부는 계속해서 전투병을 보냈다. 한국군은 베트남에서 최고 5만명의 병력을 유지했는데, 이는 미국 다음으로 많은 숫자였다.

2003년 3월 20일 이라크 침공을 시작한 미국은 전쟁 초기, 베트남 전쟁 때와 마찬가지로, '단기간'에 전쟁을 끝낼 것이라고 호언했다. 2개월여 후인 5월 1일 미국은 "주요 전투가 모두 끝났다"며 대외적인 '종전 선언'을 했지만, 실질적인 전쟁은 아직 진행형이다.

이라크 게릴라들은 점령군인 미군을 계속해서 공격하고 있으며, 미군은 평균 하루 1명씩 사망해 그 숫자는 벌써 걸프전쟁의 2배를 넘고 있다. 또 미국 정부는 한달 평균 39억 달러에 이르는 막대한 전쟁 비용을 지출하면서 내년 '대테러전쟁' 비용으로 870억 달러를 추가 승인해 줄 것을 의회에 요청했다. 하지만 미국 내에서는 벌써 이라크 침공이 '제2의 베트남 전쟁'이 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라크 침공 6개월만에, 미국 정부는 한국군이 또다시 '들러리 서 주기'를 요구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지난 4월 이미 670여명에 이르는 의료지원부대와 건설공병부대를 보냈지만, 미국은 베트남 전쟁과 마찬가지로 대규모의 전투부대 파병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비전투병 파병에서 전투병 파병으로, 미국의 요구는 점차 커지고 있다. 전쟁 장기화와 비용의 증가, 세계의 반전 목소리가 커질수록 위기를 느끼고 있는 미국은 동맹국에 추가적인 부담을 계속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베트남 전쟁의 다섯 차례에 걸친 파병 역시 미국의 추가적 부담 요구 때문이었다.

막대한 비용 지출하면서 침략전쟁 동참?

지난 4월 30일 이라크로 출발하기 전 기념촬영 하고있는 비전투 병력.
지난 4월 30일 이라크로 출발하기 전 기념촬영 하고있는 비전투 병력.국방일보
한편으로 이번 파병 요청이 베트남 전쟁과 다른 점은 한국 정부가 막대한 전쟁 비용을 스스로 지출하면서 침략전쟁에 동참해야 한다는 점이다.

지난 베트남 전쟁으로 한국이 벌어들인 외화는 모두 10억 달러에 이른다. 한국군 사망자 5000명과 단순 비교했을 경우, 한국군 1명의 목숨이 20만 달러였던 셈이다.

그러나 한국군이 이번 침략 전쟁에 전투병을 파병하게 된다면, 주둔비 등 전쟁 수행 비용을 모두 한국 정부가 부담해야 한다. 만약 한국 정부가 전투병 1개 사단(1만명)을 파병할 경우 연간 약 3조9000억원에 이르는 막대한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물론 미국은 동맹국들에게 막대한 석유 자원이 잠들어있는 이라크 재건 사업의 지분을 나눠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언제 끝날지 모르는 침략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미국이 과연 이 약속을 지킬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미국이 '베트남 전쟁의 실패'를 되풀이하는 최악의 경우가 생긴다면, 한국군은 막대한 비용을 지출하고도 '침략자'의 오명을 쓴 채 빈손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이미 미국과 한국은 베트남 전쟁에서 '전리품'은커녕 목숨마저 제대로 부지하지 못한 채 쫓겨 난 경험이 있다.

한국군은 꼭 이라크전에 가야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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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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