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에서 더욱 아름다운 빛처럼 살아가길

<포토에세이> 나는 그들에게 어떤 빛을 비추고 사는가?

등록 2003.09.27 12:01수정 2003.09.27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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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가을이 주는 빛은 노란 황금물결이기도 하고 형형색색의 단풍잎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 이번 가을의 시작은 태풍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애써 땀흘린 농부들의 소중한 작물의 빛을 빼앗아 가버렸습니다.


황금빛으로 출렁거려야 할 들판이 제 빛을 잃고, 그만큼 농부들의 한숨소리도 깊어만 가는 것 같습니다. 빛을 잃어버린 가을 들판에서 하나라도 더 거두기 위한 농부들의 바쁜 손길과 땀방울, 육체노동 뒤에 오는 뻐근함이 기쁨으로만 다가오지 않는 것은 기대한 만큼의 수확을 거두지 못할 것이라는 아쉬움 때문입니다.

돌담으로 뺑 둘러친 제주의 밭에서 쪼그리고 일하는 아낙들의 모습을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쪼그려 앉아서 일을 하면 밭에 누가 있는지 없는지 조차 모를 정도의 돌담, 경계의 의미도 있지만 땅만 파면 나오는 돌들을 쌓아놓다 보니 제주만의 풍경이 되었습니다. 바람도 막아주니 일석이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단한 우리네 삶의 곁에는 언제나 자연이 있습니다. 억새가 하나 둘 피어나기 시작하고, 단풍이 들기 시작합니다. 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바람의 기운으로 가을이 왔음을 온 몸으로 느낍니다. 그리고 눈으로 단풍들이 나뭇잎들을 물들여 가는 모습을 보면서 가을이 완연함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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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언제 끝날지 모르는 밭일, 내일 또 동이 트면 나와야 할 밭입니다.
태풍으로 쑥대밭이 되었던 밭은 또 다른 희망을 일구려는 이들에게 이전보다 더 강도높은 노동을 요구합니다.


삶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겠지요.

청명한 가을 하늘, 짧아진 해가 서둘러 붉은 빛을 띄고 또 다른 곳의 아침을 위하여 우리에게 작별 인사를 합니다.


하나 둘 고기잡이를 나간 배들의 불빛이 먼 바다에서 빛나고, 농어촌 마을에도 하나 둘 어둠을 밝히는 불빛들이 태어나기 시작합니다.

같은 풍경, 같은 모습이라도 우리가 어느 곳에 발을 딛고 있는가에 따라서 다르게 보이나 봅니다. 태풍이 불어온 이후 해가 돋는 바다도, 해지는 바다도 그다지 예쁘게 보이질 않았습니다.

바다가 한번 뒤집어져야 바다가 깨끗하게 청소가 되고, 그래야 바다가 산다는 것은 알지만 꼭 그렇게 요란하게 흔들렸어야만 했는지, 그리고 그렇게 흔들려 버리면 늘 마음 아파하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은 힘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아직도 일출이나 일몰의 모습을 보면서 '아름답다!'하기까지는 조금 더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빛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때는 어둠의 때입니다. 아직 큰 빛이 남아 있어 작은 빛들이 그다지 큰 위력을 발휘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큰 빛이 사라지면 그 작은 빛의 소중함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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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똑같은 사물도 어둠 속에서는 다르게 다가옵니다. 우리들이 어둠 속에서 느끼는 일종의 두려움 같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다는 것, 불투명하고, 확실하지 않은 것은 두려운 일입니다. 그 때 그 두려움을 없애 주는 것이 바로 빛입니다.

깊은 산길을 헤메다 빛을 만났을 때, 어두운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좌초되었다 등대의 불빛을 보았을 때 그들은 희망을 봅니다. 지금까지 자신을 엄습했던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빛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희망과 가능성을 향해서 나아가는 것이죠.

우리의 삶의 길도 이러할 때가 있습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터널을 통과하는 것과도 같은 때가 있죠. 모든 것이 불투명하기 때문에 두렵고, 떨리고, 힘이 듭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한 줄기 빛을 소망하게 됩니다.

한줄기 빛이 되는 것, 빛과 같은 삶을 사는 것, 그것은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주어진 특권이 아닙니다. 누구나 그 '빛'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단지 그것을 잘 사용하는 사람과 사용할 줄 모르는 사람이 있을 뿐이지요.

제 주변에는 '빛'과 같은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일일이 다 소개를 해 드릴 수는 없고 오늘 만났던 분들만 몇 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당근 밭에서 일당 2만5천원짜리 일을 동트기 전부터 해질녘까지 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할망들, 따가운 가을 햇살에 아랑곳 않고 태풍에 망가진 밭을 갈고 새 작물을 심기 위해 모자도 쓰지 않고 구슬땀을 흘리는 청년 김씨, 우리만 힘든 것이 아니니 힘내자고 하시는 박씨, 농사다운 농사 지어보겠다고 농군 생활한 지 일년도 안되어 그 하얗던 얼굴을 다 잃어버린 한씨, 망가진 농기구 열심히 고쳐주어야 농사짓는데 차질 없을 거라며 새벽까지 농기구와 씨름하는 카센터 최씨, 심다 남은 쪽파와 마늘을 좀 심어보지 않겠냐며 나눠주시는 할망….

매일매일 만나는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빛이 있습니다. 나는 그들에게서 '희망'이라는 것도 보고, 살아야 하는 이유도 다시금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나에게 자문합니다.

'나는 그들에게 어떤 빛을 비추고 있는가?'

그리고 나에게 소망합니다.

어둠 속에서 더욱 더 빛나는 빛처럼 살아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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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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