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정물 붓고 쇠죽에 풋콩 삶아주시던 아버지

[어릴적 허기를 달래주던 먹을거리 13] 아버지가 쇠죽에 삶아준 콩

등록 2003.09.30 18:15수정 2003.09.30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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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에 심은 콩을 삶아서 해강이 솔강이 주니 사진 찍을 틈도 안주고 다 먹네요. 부전자전이 대를 이어서 이어지려나.
밭에 심은 콩을 삶아서 해강이 솔강이 주니 사진 찍을 틈도 안주고 다 먹네요. 부전자전이 대를 이어서 이어지려나.김규환

'콩 박사' 아버지의 남다른 콩 사랑


아버지는 '콩 박사'였다. 그걸 빼닮았는지 형은 콩 재배 기술자다. 사연인 즉 아버지는 콩 연구를 하신 게 아니라 콩을 쌀 다음으로 즐겨 드셨으니 콩 박사 아닌가.

그러니 우리 밥그릇엔 늘 손톱만큼 탱탱 불은 노란 콩이 쌀이나 보리와 섞여 있었다. 가마솥에 콩을 섞어서 밥을 하면 쪼글쪼글하면서도 적당히 익어 씹히는 맛이 무척 좋게 길들여진 걸까. 하여튼 나도 콩밥을 꽤 좋아한다.

그렇다고 아버지는 처음부터 콩을 좋아하신 건 아니다. 20대 초반까지는 콩 소리만 들려도 비린내가 난다고 넌더리를 치며 물리실 정도였단다.

거슬러 올라가 보면 해방 3년 전 15살 때 할아버지 대신 일제 징용에 가신 아버지는 아오지 탄광에서 2년여 노역을 하다가 쌀 2, 강냉이 4, 콩 4 비율의 밥을 주니 정말 ‘콩밥’이더란다.

속이 아려서 변도 못 볼 지경에 이르게 되었단다. 이런 '메주콩 밥'이 얼마나 먹기 힘든가는 메주 쑬 때 세 숟가락만 제대로 떠먹어보면 그 고역을 알 수 있다.


더 이상 참지를 못하고 급기야 같이 가신 아랫마을 선배 둘과 짜고 야밤에 도주를 하게 되었다. 흙탕물이던 두만강을 헤엄쳐서 건너신 아버지.

어릴 적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어찌나 재미있었던지 밤 깊은 줄을 몰랐다. 결국 만주에서 호박죽에 보리밥 실컷 얻어 드시고 3일 만에 일경(日警)에게 붙잡혀 돌아오셨다. 하지만 해방되고 석 달이 지나고 광복 사실을 아셨으니 콩밥 신세 면키 얼마나 힘겨웠는지 알만하다. 아오지 막장은 그 만큼 멀고 소식이 전해지지 않았던 때문이다.


2002년 콩 수확하던 형님네 마당. 80kg 들이 120가마를 수확했던 기억이 가물가물. 콩 필요한 분 말씀 하세요.
2002년 콩 수확하던 형님네 마당. 80kg 들이 120가마를 수확했던 기억이 가물가물. 콩 필요한 분 말씀 하세요.김규환

진절머리 나는 콩밥이 어머니와 혼인(婚姻) 후 분가를 하고 나서 부터는 그 맛이 그립더란다. 이후 계절을 가리지 않고 콩밥을 드셨다.

세월이 흘러 30대 후반에 사업이 번창하여 3년여 만에 논이 귀한 골짜기에서 30마지기 6000평을 사게 된다. 얼마 못가 죽을 고비를 넘긴 큰 사고를 당하고 나서부터 아버지는 심하게 앓곤 했다. 고모 댁이나 외가 댁에 가서 양귀비 씨를 가져다가 아편 주사를 맞아야만 제 정신이 들곤 했다.

암암리에 수소문을 하여 그마저 구하지 못하면 어머니는 콩을 미리 담가 불려뒀다가 쌀과 함께 확독에 갈아 훌렁훌렁하게 죽을 쒀서 드린다. 사나흘 간 식음을 전폐하시다가도 콩죽 두 양푼을 드시고 나면 곧 정상으로 되돌아오셨다. 그만큼 콩을 주식으로 드셨던 분이다.

삶기 전 잎이 마른 콩잎
삶기 전 잎이 마른 콩잎김규환

가을 논두렁콩이 익어 가면…

고마니(고마리) 대가 꽃망울을 터트리고 바랭이가 풀씨를 매달면 소와 말이 살찐다. 소가 좋아하던 소깨잘(소사탕)이라는 풀이 맛있을 즈음이기도 하다. 한 해 마지막 논두렁을 베다가 아직 파란 콩 줄기를 다치면 꼴지게 위에 올려 집으로 가져오신다.

이런 풀은 줄기가 부드러워 작두로 썰기도 편하다. 통에 든 구정물을 몇 '바케스'(양동이) 붓고 자른 풀을 넣는다. 풀 위엔 쌀뜨물에 그릇 씻은 물에서 나온 밥 알, 고춧가루, 된장덩어리, 채소 꽁지, 시레기가 너덜너덜 걸려 있다.

그 뿐이 아니다. 그게 어제 것 그제 것 까지 같이 뒤섞였으니 쉬어빠졌는지도 모른다. 재래식 부엌에서 나온 잔존물로 소가 먹어서 죽을 것 빼곤 죄다 들어 있다.

논두렁에서 가져오신 콩 줄기를 오므려 올리고 솥뚜껑을 닫아 장작불을 메우신다. 나는 매일 아버지 옆에서 불을 이어 받았다. 김이 풀풀 나는 걸 확인하고 마루에 걸터앉아 한숨 돌리며 쉬려는데 밥물 넘는 소리가 들리고 햅쌀밥 익는 향기가 코끝에 밀려온다.

“푹푹푹 푸쉬푸쉬” 김을 내며 여물이 익어간다. 다양한 내용물의 구정물과 섞였으니 시레기국과 별로 다르지 않은 내음에 풀씨 익는 냄새가 섞여 마치 알곡을 삶아 찌고 있는 듯하다. 그 옆 외양간 안에 있던 배가 꺼진 소는 되새김질만 연신 해댄다.

나무 판을 짜서 만든 솥뚜껑을 여는 소리가 나더니 곰부라대(丁모양. 고무래의 사투리)로 콩을 건져 물만 살살 털어버리고 마루 위에 툭 던지고 가신다.

“묵으라고라우?”

“까 묵어봐.”

파랗던 콩깍지가 잘 익었는지 누렇게 변해 있다. 굳기 전에 손뜨거운 줄 모르고 얼마나 까 먹었는지 모른다. 쇠죽에 끓이면 어찌나 맛있던지 더럽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참 부드럽네요. 올해는 콩서리 해서는 안될 분위기 입니다.
참 부드럽네요. 올해는 콩서리 해서는 안될 분위기 입니다.김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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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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