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망에 담아온 산사이야기(20)-금강산 화암사

금강산 일만 이천 봉 중 첫 번째 신선봉에 자리한 화암사

등록 2003.10.04 10:41수정 2003.10.07 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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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커다란 바위에 세로로 써진 <金剛山禾巖寺>란 이정표에서 금강산 일만 이천 봉의 첫 번째인 신성봉은 여기부터 시작되며 이곳에서 화암사가 시작된다.

커다란 바위에 세로로 써진 <金剛山禾巖寺>란 이정표에서 금강산 일만 이천 봉의 첫 번째인 신성봉은 여기부터 시작되며 이곳에서 화암사가 시작된다. ⓒ 임윤수


금강산 찾아가자 일만이천 봉 볼수록 아름답고 신기하구나.
철 따라 고운 옷 갈아입는 산.
이름도 아름다워 금강이라네 금강이라네.

금강산이 정말로 일만 이천 봉이 되는지 어떤지는 모르나 가히 절경이라 할 금강산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시비할 사람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금강산은 노래 가사에서나 불러보고 구전처럼 들려주는 옛 노인들의 산행기를 들으면서 그 빼어난 절경을 나름대로 상상해 보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a 화암사로 들어서는 산문은 한적하다.

화암사로 들어서는 산문은 한적하다. ⓒ 임윤수


그러다 정권이 바뀌고 시대가 바뀌면서 어느 노인의 독백처럼 '죽어서나 가볼 거'라고 생각하였던, 요원한 희망으로 남아있었던 그 금강산엘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게 되었다. 이제 금강산은 더 이상 꿈에만 그려야 하는 저쪽의 명산이 아니라 마음만 먹고 기회만 기다리면 갈 수 있는 국토 산하의 한 곳이 되었다.

금강산은 피붙이와 일가친척들이 이산가족이란 이름으로 헤어지고 그리워했던 세월의 무게만큼 진하게 배인 재회의 기쁨과 다시금 반복되는 생이별로 회한의 아픔을 감내해야 하는 통한과 오열의 무대가 되고 있다. 타국으로, 제 3국으로 빙빙 돌거나 배를 타고 이국처럼 찾아가다 이젠 육로를 통하여 이웃집 찾아가듯 방문할 수 있는, 지척의 금강산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금강산을 분단으로 잃어버린 국토의 상징이며 휴전선 북녘에 있는 절경의 무릉도원쯤으로 생각할지 모르나 금강산은 이미 남쪽에도 있었고 남한에서 시작되었다.

a 왕관을 닮은 수바위엔 구멍이 있고 그 구멍에 대고 지팡이를 휘두르면 쌀이 나왔다고 한다. 그런 연유로 절 이름이 벼 화(禾)자에 바위 암(巖)자를 써 화암사(禾巖寺)가 되었다고 한다.

왕관을 닮은 수바위엔 구멍이 있고 그 구멍에 대고 지팡이를 휘두르면 쌀이 나왔다고 한다. 그런 연유로 절 이름이 벼 화(禾)자에 바위 암(巖)자를 써 화암사(禾巖寺)가 되었다고 한다. ⓒ 임윤수


산 중의 산, 절경 중의 절경이며 일만이천 봉이 위용을 자랑한다는 금강산은 강원도 고성군에 발원한 신선봉에서 시작되니 이 신선봉이 금강산의 일만이천 봉우리 중 첫 번째 봉우리가 된다고 할 수 있겠다.


44번과 46번 국도를 따라가다 속초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미시령을 넘어야 한다. 미시령을 넘다 보면 양측으로 장관처럼 펼쳐지는 산이 있으니 우측의 산이 설악산이며 좌측의 산들이 금강산이 시작되는 신선봉 자락이다. 그러기에 금강산은 결코 휴전선 이북에만 있는 금기의 땅이었던 그 명산이 아니라 이미 우리가 보았고 디뎠던 그 산에서 시작된다.

미시령을 넘어 가는 길 좌측에 세로로 <金剛山禾巖寺>라 써진 커다란 바위의 이정표에서 화암사는 시작된다. 엄격하게 산명을 따르는 산사의 특성상 이곳부터가 분명 금강산임을 알 수 있다.


이정표를 따라 접어들면 한적한 산길로 들어선다. 차량을 이용하여 길을 따라 5분쯤 들어서다 보면 저만치 산 위에 우뚝한 바위가 보이니 그 바위가 화엄사라 불리던 절이름을 화암사로 바뀌게 한 전설을 가지고 있는 수암(秀岩)이다.

a 수바위에서 내려다본 화암사의 전경은 흐르는 물결처럼 자연스럽다.

수바위에서 내려다본 화암사의 전경은 흐르는 물결처럼 자연스럽다. ⓒ 임윤수


화암사는 우리나라에 참회 불교를 정착시킨 법상종의 개조 진표율사에 의해 1천 2백여년 전인 769년에 창건된 사찰이다. 금강산을 중심으로 불국토를 장엄하고자 하였던 진표율사는 남쪽에 위치한 화암사를 비롯하여 동쪽으로 발연사 그리고 서쪽에 장안사를 창건하였다고 한다.

진표율사가 수많은 대중에게 '화엄경'을 설하였기에 절 이름은 화엄사(華嚴寺)라 하였으며, 제자 1백명 중 31명이 어느 날 하늘로 올라가고 나머지 69명도 무상대도(無上大道)를 얻었다는 기록을 남겼으니 금강산이야말로 깨우침과 선의 길지임을 알 수 있다.

그러다 1912년, 조선을 식민지화한 일본이 종교와 신앙조차 권속화시키기 위한 수단의 하나로 전국의 절들을 31 본산 체제로 억압하면서 화엄사(華嚴寺)와 화암사(禾巖寺)라 혼용되던 절 이름이 화암사(禾巖寺)로 공식화되어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다.

다시 말해 건봉사의 말사가 되면서 창건 당시부터 이중으로 사용되어온 화엄사란 명칭은 사장되고 화암사란 명칭이 공식으로 쓰이게 된 것이다.

a 대웅전 뜨락에서 내려다본 화암사 입구가 마음을 차분하게 해준다.

대웅전 뜨락에서 내려다본 화암사 입구가 마음을 차분하게 해준다. ⓒ 임윤수


절 이름이 화암사로 바뀌게 된 데는 진입로에서 바라보았던, 산 위에 우뚝한 큼지막한 수바위에 얽힌 전설로 설명된다. 화암사 입구에서 만나게 되는 우뚝 솟은 바위는 왕관 모양을 이루고 있으며 그 모양이 워낙 빼어나 빼어날 수(秀)자를 써서 수암(秀巖)이라 부른다 한다.

고찰 근처엔 참선하기에 딱 좋을 듯한 커다란 바위나 그런 장소가 있다. 주변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거나 산의 정기가 맺힐 듯한 그런 자리에 커다란 바위가 있으면 그 자리는 영락없이 좌선자리다. 수바위엘 올라가 보면 진표율사를 비롯한 화암사의 역대 고승들이 이 수바위 위에서 좌선수도 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고 요즘도 스님들과 불자들이 한 번쯤 기도처로 찾을 법한 장소임을 느끼게 된다.

지금이야 자동차로 몇 분이면 민가에 도착할 수 있지만 발걸음으로 탁발을 하여야 하는 그 시대에 화암사는 민가와 멀리 떨어진 깊은 산 속의 절이었다. 해 짧은 산에서 바랑을 둘러매고 마을까지 내려가 시주를 하는 것이 구도의 길일런지는 몰라도 몹시도 힘든 고행의 나날이었을 것이다.

a 전통찻집 란야원이 수바위를 배경으로 다소곳하게 자리를 잡았다.

전통찻집 란야원이 수바위를 배경으로 다소곳하게 자리를 잡았다. ⓒ 임윤수


그러던 어느 날 화암사에서 수행에 전념하고 있던 두 스님의 꿈에 백발 노인이 동시에 나타났다. 꿈에 나타난 백발의 노인은 수바위에 있는 조그만 구멍을 알려주면서 '끼니 때마다 그 구멍에 지팡이를 대고 세 번을 흔들라'고 일러주었다.

동시에 기이한 꿈을 꾸게된 두 스님은 수바위에 올라 꿈 속의 노인이 일러준 곳을 찾아 구멍에 지팡이를 대고 세 번을 흔드니 두 스님이 끼니를 해결할 만큼의 쌀이 쏟아져 나왔다. 두 스님은 꿈에 현몽한 노인이 식량 걱정 없이 수행에 전념하라고 베풀어주신 부처님의 가피로 생각하고 더더욱 열심히 기도에 정진하였다.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고 바위 구멍에 대고 지팡이를 흔들면 쌀이 나온다는 소문은 조금씩 알려지게 되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화암사에 잠시 기거하게 된 한 객승도 이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원래 욕심이 많던 이 객승은 욕심을 내어 쌀이 나오는 바위 구멍에 지팡이를 대고 수없이 흔드니 어인 일인지 시뻘건 피가 솟구쳤고 그때부터 쌀은 나오지 않았다.

a 란야원 창틀엔 걸친 수바위가 마치 한 폭의 풍경화처럼 잘 어울린다. 따끈한 찻잔을 들고 수바위를 바라보며 듣는 계곡의 물흐르는 소리는 행복의 소리이며 생동의 소리였다.

란야원 창틀엔 걸친 수바위가 마치 한 폭의 풍경화처럼 잘 어울린다. 따끈한 찻잔을 들고 수바위를 바라보며 듣는 계곡의 물흐르는 소리는 행복의 소리이며 생동의 소리였다. ⓒ 임윤수


먹을 것을 구하느라 기도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스님들을 위하여 바위에서 쌀이 나오도록 가피를 주었으나 헛되이 욕심을 부리니 깨달음을 주고자 쌀보시를 멈추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절 이름 화암사(禾巖寺)가 벼 화(禾)자에 바위 암(巖)자를 쓰고 있음으로 알 수 있듯이 이러한 전설이 한낱 꾸밈말은 아닌 듯 하다.

지금은 그 의미가 많이 희미해졌지만 옛날에 대를 이를 자손을 두지 못한다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힘든 형벌이며 고통이었다. 그런데 이 수바위는 손이 귀한 집안이 지성을 다하여 애절하게 기도하면 아들을 점지해 주는 신통력을 보이는 곳으로 알려져 있어 신혼부부나 득손을 기원하는 사람들의 중요한 참배처가 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일주문으로 들어서 한참을 안쪽으로 들어서야 수바위에 오를 수 있는 입구가 보인다. 고성군청에서 시공을 하였다는 계단을 따라 조금 오르다 보면 수바위 앞에 서게 된다. 이쯤에서 내려다보니 화암사가 한눈에 들어온다. 계곡을 따라 위에서 아래로 길게 자리한 가람 배치가 자연의 흐름처럼 자연스럽다는 느낌을 준다. 비가 나리지 않는다면 멀리 속초와 동해가 한눈에 펼쳐질 듯하다.

a 계곡에 흐르는 맑은 물이 물보라를 일으키며 자신을 낮추기 위해 아래로 아래로 흐르고 있다.

계곡에 흐르는 맑은 물이 물보라를 일으키며 자신을 낮추기 위해 아래로 아래로 흐르고 있다. ⓒ 임윤수


사람의 발을 배신하지 않아 우중에도 여간해서 미끄러지는 일은 없을 듯한 석질인 바위는 둥글둥글하고 유순한 형태이지만 역시 가파른 경사는 사람의 몸을 낮추게 한다.

먼저 바위엘 올랐을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밧줄이 아무래도 위험해 보이고 위태롭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밧줄에 의지하여 바위엘 올랐는지 닳고닳아 가늘어진 밧줄은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하다.

깊고 넓은 계곡을 건너면 화암사 경내로 들어서게 되며 대웅전에 들러 참배를 하기 위해서는 왼쪽의 계단을 올라야 한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명부전과 범종각이 ㄷ자모양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대웅전 좌측으로 조금 더 들어가면 그곳에 삼성각이 있다.

계곡에서 쏟아지는 물이 물보라를 일으키며 솟구치는 게 마치 장마철 댐을 연상케 한다. 계곡은 깊고 맑은 물이 넘치고 넘친다.

a 새로 만들어진 교각을 대신 한 듯한 돌다리가 화암사의 옛 모습 일부를 보여주는 듯 하다.

새로 만들어진 교각을 대신 한 듯한 돌다리가 화암사의 옛 모습 일부를 보여주는 듯 하다. ⓒ 임윤수


전각에 들러 참배를 마치고 계단을 내려오면 계곡에 기둥을 딛고 서있는 고건축 양식의 건물이 있다. 이곳이 바로 화암사엘 들리면 다시 들리고 싶은 전통 찻집 '란야원'이다.

다다미(일본식 돗자리)가 깔린 안으로 들어서면 원목의 찻상이 마련되어 있고 창문 너머로 수바위가 한눈에 쏙 들어온다. 화암사 경내 어느 곳 어떤 전각에서도 수바위와 눈을 맞출 수 있지만 이곳 란야원에서 창틀을 통해 바라보는 수바위가 제격인 듯 하다.

요즘 웬만한 절 근처엔 전통 찻집이 있다. 그러나 다른 전통 찻집에서는 맛볼 수 없는 송화밀차(송화 가루와 꿀로 만드는 차)와 호박 식혜는 이곳 란야원의 자랑이다. 가을비조차 내려 기온이 뚝 떨어진 요즘 화암사엘 들리게 되면 제법 쌀쌀하다는 느낌이 든다. 이럴 때 란야원에 들러 김이 모락모락 나는 전통차 한잔을 마시면 몸도 마음도 훈훈해지고 행복감이 찾아들 듯하다.

비를 피해 찾아든 찻집에서 곱살한 아주머니가 내다 주시던 따끈한 찻잔에는 푸근함과 따뜻함이 듬뿍하다. 구도를 맞춘 듯 창틀에 적당한 크기로 들어선 수암과 계곡에서 올라오는 물소리가 삼차원 수채화로 눈길을 고정시킨다.

a 부도에서 화암사의 천년 역사와 고승들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부도에서 화암사의 천년 역사와 고승들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 임윤수


사람을 기쁘게 하는 많은 것들 중 '덤'이 주는 기쁨을 빼놓을 수는 없다. 화엄사를 찾게된 것은 산행에서의 덤이며 기쁨이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닿은 인연으로 생각한다.

산사를 찾다보면 가끔 인연이란 말을 실감하게 된다. 어떤 곳은 꼭 찾아가리라 작정을 하였다가도 피치 못할 사정으로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화암사는 덤처럼 우연이 아주 우연이, 백담계곡을 지키고 있는 한 분, 설악산 관리사무소 백담분소장 손관수님과의 우연한 인연으로 찾게 되었다.

봉정암엘 오르려 하니 기상 특보로 산행이 금지되어 일정이 막막해졌다. 막막함을 달래고자 관리사무소를 찾으니 화암사를 소개해 주었다. '멀지 않은 곳에 좋은 산사가 있다'는 것. 고찰에 주변의 풍광도 좋지만 그 규모에 비해 많이 알려지지 않은 좋은 곳이라고 한다.

그려준 약도를 따라 찾아가니 그곳에 화암사가 있었다. 계획에도 없었고 알고 있지도 못하던 좋은 산사를 아주 우연이 들르게 되니 여기서 얻어지는 기쁨이 덤이며 인연에 얻어진 복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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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좋아하는 거 다 좋아하는 두 딸 아빠. 살아 가는 날 만큼 살아 갈 날이 줄어든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는 사람.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란 말을 자주 중얼 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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