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주'와 '신도'들이 펼친 광란의 밤

[현장] 마릴린 맨슨 첫 내한공연... 어정쩡한 마무리 항의소동

등록 2003.10.05 11:35수정 2003.10.05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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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올림픽 공원 펜싱경기장에서 열린 마릴린 맨슨의 내한공연.
4일 올림픽 공원 펜싱경기장에서 열린 마릴린 맨슨의 내한공연.액세스
마릴린 맨슨의 보컬이자 리더인 미스터 맨슨.
마릴린 맨슨의 보컬이자 리더인 미스터 맨슨.액세스
기다림이 컸던 만큼 관객들의 반응 또한 뜨거웠다.

3번의 공연 반려 끝에 어렵게 성사된 공연이라서 그랬는지 4일 서울 올림픽공원 펜싱경기장을 찾은 5500여명의 맨슨 매니아들은 모두들 마치 한풀이하듯 공연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맨슨 역시 공연 전 "오지 말라고 해서 더 오기가 생겼다"할 정도로 한국 공연에 집착을 보인 만큼 '맨슨표 버라이어티 쇼'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공연이 진행된 1시간 15분 동안은 '광란(狂亂)' 그 자체였다.


맨슨은 이번 공연에서 우려했던 관객모독, 국기 소각 등의 행동은 자제했지만 성행위 묘사 등은 노골적으로 해 관객들을 자극했다.

다만 공연 마지막 부분에서 앰프 이상으로 인해 더 이상 공연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맨슨과 기획사 측의 어정쩡한 반응으로 관객들이 항의 소동을 벌인 것이 아쉬움이라면 아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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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기다림, 광란은 시작됐다

"맨슨은 우리 속 어두움을 음악으로 대신 표현하는 대리인이에요. 10년을 기다렸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공연이 열린다는 소식을 접하고 기절하는지 알았죠."(웃음)

친구 2명과 얼굴에 하얀색과 빨간색 분장을 한 채 공연을 기다리던 김형민(22·대학생)씨의 말이다. 이처럼 팬들의 맨슨에 공연에 대한 갈망은 대단했다. 공연 시작 전 만난 팬들은 하나같이 공연소식을 접하고 '헛소문'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공연 자체가 우리나라에서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공연장을 찾은 맨슨매니아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공연장을 찾은 맨슨매니아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강이종행
공연 시작 4시간 전부터 올림픽 공원에 모습을 드러낸 맨슨 매니아들은 대부분 검정색 상하의를 입었다. 때때로 얼굴에 하얀색과 빨강, 검정의 맨슨식 화장을 한 팬들도 눈에 띄었다. 공연장 출입구 앞에는 '18세미만 관람불가' 표지판이 설치돼 있었고 안전요원들이 철저하게 출입을 통제했다.

공연장 앞에는 18세미만 관람불가 표지판이 설치돼 있다.
공연장 앞에는 18세미만 관람불가 표지판이 설치돼 있다.강이종행
자신을 주한미군이라고 소개한 한 외국인은 "한국에서 맨슨 공연이 열리게 되다니 믿어지지 않는다"며 "오늘은 아무 생각 없이 미치고 싶다"고 흥분하며 말했다.


오후 6시가 조금 너머서부터 1층 스탠딩석과 2, 3층 좌석으로 나뉘어 입장이 시작됐고 관객들은 설레는 마음으로 공연장 안으로 향했다.

공연은 예정시각보다 30분 늦은 7시 30분에 시작됐다. 갑자기 장내 불이 꺼지면서 새 앨범에 수록된 "This is the new shit"의 전주가 흘렀다. 이어 불이 켜지면서 가죽 재킷과 높은 굽 구두를 신고 얼굴은 흰색, 눈가엔 검정 그리고 입술은 빨간색으로 분장한 맨슨이 나타났다.

맨슨이 물을 한 모금 마신 뒤 컵을 관객들에게 던지는 순간 '광란'은 시작됐다. 관객들은 일제히 손을 위로 뻗은 채, 제자리에서 껑충껑충 뛰면서 후렴구를 따라 부르는 등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 순간만큼은 맨슨은 교주였고 팬들은 광신도들이었다.

"오늘에서야 처음 한국 친구들을 만나러 왔다. 준비됐나?"
"예!"

손으로 키스 세례를 퍼붓는 맨슨에게 관객들은 그의 공연에 목말라 있음을 통일된 함성으로 표현했다. 맨슨은 팬들이 자신의 공연을 원한다는 것을 알았고 다양한 볼거리로 맨슨식 종합선물세트를 팬들에게 선사했다.

내한 공연 Set List

This is The New Shit
Disposable Teens
Use Your Fist and Your Mouth
GBWW(Great Big Wild World)
Rock is Dead
mOBSCENE
Tainted Love
Para-noir
Dope Show
(s)ain't
The Golden Age of Groteque
Doll-Dagga Buzz-Buzz Ziggety-Zag
Sweet Dreams
Fight Song
The Beautiful People
------------------------------
(앵콜)Hate Anthem - 하지못함
맨슨은 스스로 무대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가 드러눕기도 하는 등 정열적인 무대매너를 보여줬고 때론 우스꽝스러운 미키마우스 복장을 하기도 했고 마치 긴 다리가 있는 듯 공중에 올라가 관중들의 반응을 유도하기도 했다. 그는 마치 히틀러처럼 높은 단상 위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고 무대 아래로 내려와 관객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공연에서 하지 않겠다던 '성행위 묘사'를 맨슨은 서슴없이 보여줬다. 'mOBSCENE'이란 곡에서 두 명의 백댄서들이 나치 복장을 하고 빨간 색 팬티가 그대로 드러날 정도로 짧은 치마를 입은 채 스트립쇼에서나 볼 수 있는 춤을 선보였고 맨슨의 최고 인기곡 중 하나인 '유리스믹스'의 리믹스곡 'Sweet dreams'를 부를 때는 금발과 검정머리 두 명의 댄서들이 여성 가슴 모양의 비키니 상의를 입은 채 노골적인 성행위를 묘사했다.

맨슨은 무대 앞 스피커 위해서 엎드려 있는 댄서의 팬티에 마이크를 꽂은 채 노래를 불렀고, 다리를 벌리고 있는 다른 댄서의 성기부분을 마이크로 찍는 흉내를 내기도 했다. 또한 그는 샴페인을 자신의 성기부분에 대고 흔든 뒤 따는 모습도 보였다.

이런 행위들을 지적할 수도 있겠지만 '미성년자 관람불가' 딱지가 붙은 공연인 점을 감안한다면 고개를 끄덕일 만 하다. 오히려 맨슨 공연의 필수였던 것들을 하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던 팬들의 반응은 그만큼 더 뜨거울 수밖에 없었다.

액세스
뜨거워진 공연장에 웬 찬물?

공연장 분위기는 달아오를 대로 오른 상태에서 인기곡 'The Beautiful People'이 연주됐고 관객들은 귀신에 홀린 듯 음악에 몸을 맡겼다. 곡이 한창 연주되던 중 갑자기 마이크 소리가 작아졌다. 이어 노래를 부르던 보컬 맨슨이 굳은 표정으로 아무런 말없이 무대 뒤로 사라졌다. 곧 4명의 다른 멤버들도 들어갔다. 영문은 모른 팬들은 발을 구르며 "맨슨"을 연호했지만 이들은 다시 무대에 서지 않았다.

이내 장내에 불이 들어왔고 곧이어 "여러분 잘 보셨나요? 아쉬우시죠? 저도 아쉽습니다. 오늘 공연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돌아가세요"라는 공연 기획사 관계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영문을 모르는 관객들은 "우!"라고 야유를 보내며 빈 플라스틱병 등을 던지기도 했다. 20여분이 지날 때까지 관객들이 자리를 떠나지 않자 급기야 기획사인 액세스 엔터테인먼트 대표가 마이크를 잡았다.

"여러분 공연은 끝났습니다. 저는 액세스 대표입니다. 마릴린 맨슨 공연에 성원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맨슨씨가 마지막 곡에서 과도한 음향 사용으로 전기가 나가 더 이상 공연을 못하게 됐습니다. 이 곡은 오늘의 마지막 곡이었습니다.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주세요. 저희는 이 공연을 위해 오랫동안 노력해왔습니다. 안녕히 돌아가십시오."

화가 난 관객들은 다시 물병 등을 집어던지며 야유를 보냈고 심지어 "환불해!"란 외침까지 들렸다. 결국 맨슨측에서 다시 나와 영어로 "오늘 공연은 기술적인 문제로 더 이상 못하게 됐다. 서울 공연은 너무 좋았고 다음에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고 설득했다.

공연장을 빠져나가는 관객들은 하나같이 분노에 차 있었다. 30분이 지나도록 무대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김률희(32·학원강사)씨는 "기가 막혀서 이러고 있다"며 "뭐라고 해명을 하든지 사과를 해야지 처음 나와서 대뜸 '아쉬우시죠'라고 하는 게 어딨나"며 흥분했다. 이가형(21·대학생)씨는 "공연을 위해 10년을 기다려왔다"며 "성의 없이 나온 기획사 측의 태도가 맘에 안 든다. 환불받아야겠다"고 언성을 높였다.

공연이 갑자기 중단되고 불이 켜지자 팬들이 영문을 모른 채 기다리고 있다.
공연이 갑자기 중단되고 불이 켜지자 팬들이 영문을 모른 채 기다리고 있다.강이종행
기획사 홈페이지 "공연 망친 기획사측은 사과, 환불하라"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 없고 밴드 측 잘못이라고 떠넘기기만 하다니. 그런 시건방진 말에 더 화가 나서 자리를 뜰 수 없었습니다. 반드시 공개 사과는 이루어져야 하고. 더불어 중간에 끊긴 공연에 대해 어느 정도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밴드측의 실수이건 아니건 어쨌든 공연을 기획하셨으니 끝까지 책임을 다 하셔야지요. 제대로 안되었다고 그 모든 피해를 관객에게 다 덮어씌우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아이디 : 이런 젠장 "내가 화가 났던 건" 중


마릴린 맨슨의 역사적인 공연이 끝난 뒤, 공연을 기획했던 '액세스'(www.allaccess.co.kr)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공연에 대한 비판 글들로 도배되고 있다. 액세스 측이 밝힌 관중 수는 모두 5500여명. 공연이 끝난 뒤부터 5일 오전 11시 30분까지 벌써 1300여개의 글들이 올라왔으니 1/5이 넘는 관객들이 공연에 대한 불만을 직접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맨슨이나 기획사 측의 공식적인 반응은 아직까지 없다. 다만 기획사 한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맨슨이 한국 팬들의 반응이 좋아서 기분이 좋아져 무리를 한 것 같다"며 "이날 사고와 관련 액세스 측과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만 말했다.

기획사 게시판을 보면, 자칫 관객들의 환불소동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액세스에서 기획하는 미국 그룹 린킨 파크(Linkin Park) 공연과 프로레슬링 WWE(Smack down)경기 불매운동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1999년 여름, 인천 송도에서 열린 'Triport Rock festival'의 경우, 폭우와 이에 대한 기획사(예스컴)측의 안일한 대책으로 공연이 엉망이 됐고 대규모 환불 소동으로 이어진 바 있다.

"맨슨, 장인정신 가지고 마무리했어야"
공연장 찾은 전문가 평가 "공연 자체는 만족"

이번 공연에 지켜봤던 전문가들은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다만 공연 마무리의 어정쩡함에 대해서는 모두 아쉬워했다. 특히 공연 모니터링을 했던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측의 반응도 '무난'으로 나와 공연 외적인 면에서도 성공했다고 볼 수 있겠다.

록 전문 월간지 'Hot music' 김훈 편집장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공연이 열렸다는 것 자체로 공연문화의 장을 열었다고 볼 수 있겠다. 다만 맨슨이 어제 기자회견에서 공연에서의 모습들은 "예술가적인 마인드를 담고 있다"고 말했다는데, 오늘 마지막에 보여준 행동으로 봐서는 '예술가'적인 것 보다 '엔터테이너'적인 것이 많았다고 생각한다. 욕심일 수 있지만 예술가라면 공연이 그렇게 중단됐더라도 다른 어쿠스틱으로 하든지 대안을 가지고 작품을 완성했어야 했다. 맨슨이 공연에 조금 더 장인정신을 가지고 작가주의적으로 접근했다면 이렇게 허탈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체육관이어서 그런지 사운드가 조금 뭉개지는 경향이 있었지만 이해할만하다. 선곡에 있어서는 한국팬들에 대한 배려가 조금 부족했다고 본다. 예전 스매싱 펌킨스 공연 때 선곡은 우리 팬들을 위한 곡들이었다."

김봉환 'Hot music' 기자

"공연 자체는 너무 좋았다. 록밴드로는 드물게 공연과 쇼적인 부분을 결합시켜 버라이어티한 요소를 부각시키는데 성공한 것 같다. 물론 마지막 부분은 이해가 잘 안가고 아쉽기도 하다. 맨슨은 보컬에서 실수 여부를 따지기 이전에 의상, 무대장치 등을 결합시킨 하나의 엔터테이너로서 봐야할 것 같다. 음향 등 기술적인 부분에서도 큰 무리가 없었다. 지난 번 일본 공연 때도 맨슨팀은 사운드를 잘 잡았다.

혹시 오늘 성행위 묘사 등 하지 않겠다던 행동들을 보여줬는데 혹시 다음 공연에 지장을 줄까 우려된다. 하지만 어차피 언젠간 해야할 공연이었다면 맨슨이 테이프를 잘 끊었다고 생각한다. 심의에서 이런 락 공연도 예술로 봐야 한다. 왜 영화는 되는데 음악은 안되나."

임성규 유니버설 뮤직 대리

"지금까지 내한공연 중에서 음악적으로나 퍼포먼스적으로나 가장 뛰어난 공연 중 하나다. 많은 공연들이 일본을 거쳐오거나 일본을 가기 바로 전에 공연을 잡아서 그랬는지 워밍업 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맨슨 공연은 여러 번 무산돼서 그런지 자신이 열심히 했던 것 같다. 오늘 음향도 펜싱경기장이라는 비전문 공연장에서 한 것치고는 괜찮았다. 안타까운 점은 끝 부분이다. 왜 그랬는지 잘 모르겠다."

권장희 기윤실 문화소비자 운동본부 총무

"공연 잘 봤다. 미국에서의 이전 공연과 비교하면 어쨌든 (맨슨이) 절제하려고 애쓴 것 같다. 전체적으로 무난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오늘 중점으로 뒀던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청소년 출입 관리 부분이고 또 하나는 공연에서 하지 않겠다던 하드코어 적인 요소들이 지켜지나 하는 부분이었다. 전자는 완전히는 아닐지라도 대체적으로 잘 지켜졌다. 후자 역시 특별히 무리는 없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기존 공연과 비교했을 때에는 성적인 부분이나 욕설 등이 월등하게 많았던 것 같다. 우리는 공연의 내용을 가지고 반대할 생각이 없다. 다만 '연소자 관람 이용불가'음반이 온라인에서 청소년에게 판매되는 것을 막는 등의 연장선상에서 공연 모니터링 한 것이다." / 강이종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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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동안 한국과 미국서 기자생활을 한 뒤 지금은 제주에서 새 삶을 펼치고 있습니다. 어두움이 아닌 밝음이 세상을 살리는 유일한 길임을 실천하고 나누기 위해 하루 하루를 지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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