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이발관' 문닫을 생각 없습니다

등록 2003.10.05 11:45수정 2003.10.05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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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에 인터넷 쇼핑몰에서 산 전동 이발기계
10년 전에 인터넷 쇼핑몰에서 산 전동 이발기계전희식
이발관에들 가시는가? 한 달에 한 번? 한 달에 두 번? 적어도 두 달에 한 번은 갈 것이다. 우리 시골에도 머리 한번 깎는데 7000원이다. 도시에는 더 비쌀 것이고.


오늘 머리칼을 깎고 나서 나는 제일 먼저 초등학교 6학년인 새들한테로 갔다.

"어떠냐? 잘 깎였지? 이 정도면 이제 네 머리 아빠가 깎아줘도 되겠지?”

상당히 자신에 차서 설득을 해 봤지만 이놈은 대꾸도 안 하고 나를 뒤로 돌아봐라 옆으로 돌려봐라 하더니 옆 머리칼이 너무 짧고 뒷 머리칼은 잘 안 다듬어졌다면서 싫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고 긴 머리카락 몇 개가 지적을 받았다.

어릴 때는 줄곧 내가 머리칼을 깎아 줬는데 요즘은 영 아니올씨다 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땐가. 한 번은 학교에 다녀와서 인상이 찌그러져 가지고는 다시는 아빠한테 머리칼을 안 깎겠다고 투덜거렸다. 머리 모양새에 나름의 안목을 갖게 된 것일까? 한창 사춘기라 남들의 말에 예민해서일까? 친구들이 놀렸다는 것이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읍내 초등학교 앞에 있는 미장원에 가서 머리카락을 깎고 있다. 그래서 내 이발관에는 지금껏 단 한 사람의 손님도 없이 파리만 날리고 있다. 유일한 고객이었던 새들이가 떠난 후 내 이발관에서는 내 머리카락만 깎은 지 몇 년째다. 그렇지만 휴업을 하거나 간판을 내릴 생각은 추호도 없다.

새들이가 손님 되기를 거부하는 이유는 단 하나. 아빠가 깎은 머리 때문에 지금껏 '바가지머리'라고 놀림을 받는다는 것이다.


"새들아. 이 머리는 아빠가 거울도 안 보고 혼자서 감으로 깎은 머리잖아. 네 머리는 보고 깎으니까 훨씬 더 잘 깎을 수 있어. 응? 깎을래? 그러면 말이야. 내가 미장원 가서 머리 깎는 값 4000원, 네 돼지 저금통에 넣어주고 너 컴퓨터 하게 해줄게. 옛날하고는 솜씨가 다르잖아. 안 그래?"

몇 번 더 말을 건네 봤지만 새들이는 별 관심이 없나보다. 손님 하나 유치하기 참 힘들다. 세상에 이런 조건을 내 건 이발관이 또 있으랴 싶다.

충전식 이발기계는 지금까지 한 번도 고장 난 적이 없다.
충전식 이발기계는 지금까지 한 번도 고장 난 적이 없다.전희식
내가 내 머리카락을 직접 깎기 시작한 지는 근 10년에 육박한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3만 9천원 주고 '바리캉(이발기)'을 사서 한번도 고장 난 적 없이 사용하고 있다. 3년 전인가. 아는 후배 결혼식 주례를 설 때 꼭 한번 이발관에 갔었고 그 외에는 전부 집에서 내가 내 머리카락을 깎는다.

제일 두꺼운 받침을 대고 머리카락을 빡빡 밀고 나서 받침을 갈아 가면서 뒷머리하고 옆머리를 쳐 올리는데 지금은 솜씨가 보통이 넘는다. 욕실에 가서 신문지 한 장 깔아 놓고 작업을 시작하면 10분 정도면 머리도 감고 면도까지 다 끝내는 실력이다.

내가 이발관 차리고 나서 머리카락을 깎을 때마다 계속 저금을 했다면 백만원은 모았을 것이다. 한 달 7천원씩 1년이면 8만 4천원이다. 어디 그 뿐이랴. 머리 안 감아도 되니 비누 절약에 물 절약이요. 아침에 일어나 짜부라진 머리 손질 안해도 되니 시간절약도 크다.

마음에 드는 모자 있으면 아무거나 뒤집어써도 머리 스타일 구길 일 없어 편하다. 요즘은 새들이 관심이 좀 고상해져서 그런 일이 없지만 초기에는 바리캉을 쥐어 주면 내 머리를 가지고 반 시간은 넉넉히 놀 수 있는 기막힌 놀이터가 되기도 했다.

정 중앙으로 '고속도로'를 냈다가 '외곽 순환도로'도 내고 '4차선 고속도로'에 '2차선 국도'까지 만들곤 했다. 한번은 새들이가 '중앙분리대'까지 만들어 내길래 장차 토목기술자가 되려나 싶기도 했다.

머리칼이 옷에 박히면 골치다 보니 으레 우리 부자는 욕실에서 발가벗고 일을 벌인다. 이발료 걱정이 없으니 마음만 먹으면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새들이 놀이터가 되곤 했었다. 머리칼을 자주 자르다보니 항상 나는 나이가 다섯 살 정도는 젊어 보인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삼손이 머리칼을 잘리고 나서 힘을 잃었다지만 머리칼을 자주 자르는 나는 어느 모로나 힘이 넘친다.

받침대의 높이가 다양하다. 23mm가 제일 크고 제일 작은것은 3mm이다.
받침대의 높이가 다양하다. 23mm가 제일 크고 제일 작은것은 3mm이다.전희식
이런 세월이 벌써 10년이니 나름대로의 개똥철학 하나쯤 생겼다. 왜 사람(남자)들은 꼭 머리를 이발관에 가서 돈 내고 깎아야 하는지 심각하게 되물어 봐야 한다고 본다. 머리 모양새는 또 어떤가. 다들 똑 같아야 하는 이유가 뭔가? 자기 머리 자기 눈에 보이는 거 아니지 않은가? 남 보라고 내 돈 내고 매달 머리칼을 깎는다는 사실을 다른 동물들이 알게 되면 분명 비웃을 것이다. 만물의 영장이라더니 웃긴다고 손가락질할지도 모른다.

6-7년 전에 광주에서 있었던 어떤 모임에서 우연찮게 나는 내 이발관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되었다. 민족의학자 장두석 선생이 회갑을 맞아 전국의 장기수 할아버지들을 모시고 큰 잔치를 벌인 자리에 초청 받아 갔었는데 거기서 있었던 일이다.

역시 손님으로 오신 정토수련원의 법륜스님이랑 또 다른 손님들이랑 식사를 하는 중에 절친한 사이인 어느 수녀님이 법륜스님보고 스님 '이 교정' 좀 하시라고 했었다. 그러고 보니 법륜스님 앞니가 뻐드렁니였다. 이때 스님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그런 말씀 많이 듣는데요. 저는 보이지도 않고 불편하지도 않아요. 보시는 분들이 보기 불편하시면 돈 내서 내 이빨 고치세요. 저는 괜찮습니다"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남의 눈치보고 살지 않는다는 완곡한 표현으로 들렸다. 나 자신을 잘 간수할 일이라는 중요한 깨우침이 심금을 울렸다.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이때 '나 홀로 이발관'에 대한 자부심이 얼마나 컸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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