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가을은 찾아오고김대호
다시 차에 시동을 걸었다. 산감나무 잎이 제법 노랗게 가을을 탄다. 군경에 의해 오래 전 소개된 암챙이들의 집은 이미 산이 되고 논은 늪이 되어 산짐승을 위한 훌륭한 터전이 되어 있었다. 두어 시간을 산길에서 머물다 하산 코스로 접어드니 산을 허무는 '밤재터널' 굴착 공사가 한창이다. 소나기 뒤끝에 대가리를 내민 꽃무릇이며 살 오른 표고버섯을 구경하느라 한참을 보내고서야 산을 내려올 수 있었다.
장흥군 유치에서 오른 산길은 강진군 옴천에서 끝이 난다. '암챙이 촌놈'의 족쇄가 지겨워 처자식 거느리고 도시로 뛰쳐나온 녀석의 아버지는 살았고 '암챙이 촌놈'이 자랑스러운 녀석은 죽었다. 세월이 흐르고 나는 여전히 살아남았고 가정을 꾸렸고 이 땅에 살다갔다는 가장 확실한 흔적인 딸 아이가 세상이 태어나 '아빠'라고 불러줌으로써 나는 더 확실하게 존재하게 되었다.
부재(不在)가 녀석에게 자유를 주었을까?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 남았다.
그러나 지난밤 꿈속에서
친구들이 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강한 자는 살아 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
우리는 강해서 살아 남은 것일까?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일까? 표현하지 않지만 때로는 살아남은 것이 참을 수 없는 슬픔이 되고 비겁함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살아남은 당신은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말할 수 있는가?
어쩌면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남겨진 사람들의 회환'일 뿐이다. '부재(不在)하게 될(혹은 된) 것들에 발목이 잡힌 건 여전히 살아 남은 사람들'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마음 놓을 자리 보지 않고, 마음 길 따라가니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