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이 사주신 파란 고무신

검정 고무신, 하얀 고무신, 그리고 무좀방지용 백구두

등록 2003.10.11 12:10수정 2003.10.11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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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아버님의 팔순을 맞아 부모님을 찾아뵙는 길, 지난 추석에도 찾아뵙지 못해서 서운했는데 서울에 도착하기 며칠 전부터 어머님으로부터 전화가 이전보다 자주 온다.


"이번에 오면 뭐 해줄까?"
"그냥 드시던 것 먹으면 되요. 너무 많이 준비하지 마세요."
"그려, 식혜도 했고 토란국도 끓일 건데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지금 얘기해라.
"그러면 청포묵 조금만 해 놓으세요. 엄마가 만들어 주신 묵이 먹고 싶네."

오랜만에 올라가는 서울이라 만날 사람들도 많고 일정도 빡빡해서 집에서 밥이나 먹을 수 있을까 모를 일인데, 무조건 '되었다'하면 서운해하실 것 같아 '청포묵'을 먹고 싶다했으니 어머님은 흥얼흥얼 찬송을 부르시며 막내생각을 하시면서 묵을 쑤실게다.

오랜만의 짧은 만남. 건강하신 부모님들을 뵙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하다. 오랜만에 손주들 재롱도 보시고 다시 헤어져야 할 시간이 가까워 온다.

이것저것 바리바리 싸주시는데 서울에 올 때 가져온 짐보다 더 많은 짐이 기다리고 있다. 그 중에 아주 특이한 선물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파란 고무신'이었다.

"어머니, 이게 뭐예요?"
"응, 파란 고무신이다. 시장에 나갔다 너 주려고 한 켤레 사왔다. 맞는지 신어봐라."


신기하게도 딱 맞았다. 어림짐작으로 아들의 발 크기를 아실 텐데 어쩌면 이렇게 딱 맞는 고무신을 사오셨는지 어머님의 자식 사랑하는 마음이 얼만큼인지 가늠이 되질 않는다.

"밭일하는데는 고무신이 최고여. 괜히 운동화 신고 빨랫감 늘이지 마라. 물 많이 쓰는 것도 죄다. 그렇다고 맨발로 하면 유리같은거 찔려서 발 상하면 안되니 고무신 신고해라."


어머님은 환경운동을 하신 적도 없고, 그런 종류의 책도 본 적이 없는 분이지만 삶자체가 환경운동가이시다. 설거지를 할 때도, 빨래를 할 때도 최소한의 물만을 사용하시고 대부분의 물건들은 재할용되고, 버려지는 것이 없다.

"밭에 뭐 심었니?"
"올라오기 전에 검은콩 거뒀고 이제 내려가면 배추와 무, 마늘, 쪽파 심을 것이 많아요."
"그려, 땅 놀리면 죄받는다. 그리고 기왕에 농사짓는 것 잘해서 손가락질 받지 마라."

목회하는 아들이 작은 텃밭을 가꾸는 일에 대해서 잘하는 일이라고 받아주시는 어머니는 흙에서 배울 것이 많다고 믿으시는 분이시다. 시장에 나가셨다 파란 고무신을 보는 순간 아들을 생각했을 것이고, 작은 텃밭을 가꾸는데 꼭 필요한 것이라고 여기셨을 것이리라.

어린 시절에는 검은 고무신을 많이 신었다. 여름철에 발에서 땀이 나면 찔꺽거리는 소리와 느낌이 별로 좋질 않았지만, 고무신을 뒤집어 탱크놀이도 하고 다 헤어질 때까지 신던 고무신도 고물장수에게 가져가면 강냉이를 한움큼씩 주던 기억이 아련하다.

철없이 강냉이가 먹고 싶어 새 고무신을 빨리 닳게 하려고 질질 끌며 신기도 했는데 왜 그리도 질기던지. 그리고 여름날 삼태기를 가지고 고기를 잡으러 나갔다 고무신에 물을 채워 버들붕어를 담아오던 기억들은 또 얼마나 봄날같은 기억인지. 늘 검정 고무신만 신던 나에게 하얀 고무신은 선망이었다.

"엄마, 이젠 하얀 고무신 사주라."

그러나 검정 고무신보다 하얀 고무신이 조금 더 비싼 탓이었는지 그 꿈은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다.

고무신에서 탈출을 하게 된 것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부터다. 간혹 검은 교복에 고무신을 신고 오는 친구도 있긴 했지만, 운동화가 주류를 이루었고 그렇게 고무신은 나에게서 잊혀져 갔다.

그리고 다시 고무신을 대하게 된 것은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였다.
유행이었을지도 모르고, 그만큼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있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여름에 농촌활동을 가면서 한 켤레 마련했던 하얀 고무신은 변신의 변신을 거듭하며 나의 발을 보호해 주었다.

하얀 고무신에 매직이나 유성펜으로 내 것이라는 표시를 한다. 여러 가지 표시 중에서 가장 재미 있었던 것은 각종 유명메이커로 둔갑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앞부분을 가위로 오려내면 완벽한 '무좀방지용 백구두'가 되기도 했고, 검정 고무신을 신고 왔던 친구가 한 켤레씩 바꿔 신고 가는 바람에 하얀 고무신과 검정 고무신을 짝 신발을 신고 등교하기도 했다.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신은 것이었는데 한 때는 후배들도 유행처럼 고무신을 신고 다녔었다.

가장 잊혀지지 않는 순간은 신입생환영회 때였다. 각과를 소개해 주는 시간이었는데, 갑작스럽게 내가 소개를 하게 되었는데 문제는 신발이었다. 강당을 꽉 메운 신입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강단에 올라서는데 여기저기서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문제의 고무신 때문이었는데, 하필이면 그 날 오른쪽은 나이키 무좀방지용 백구두, 왼쪽은 흑구두였던 것이다.

그러나 어쪄라. 강대상에 서니 다행히 고무신을 보이지 않았지만 나의 신발을 보았던 앞쪽의 신입생들은 내려갈 때 다시 한번 나의 최신(?) 구두패션을 보려는 듯했다. 그리고 이후에도 그 고무신 덕분에 유명인사(?)가 되었다. 그 사건 이후 나는 고무신을 신지 않았다.

그리고 고무신은 아주 오랜 시간동안 잊혀졌고 오일장에 나갔다가 갖가지 색깔의 고무신이 나와있는 것을 보았다. 그 아픈 추억때문일까? 고무신을 살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서울에 와서 어머님이 손수 준비하신 고무신, 그것도 검은 색도 아니고 흰색도 아닌 파란 고무신이라니.

어머님이 사주신 파란 고무신을 신고 텃밭에 나가 마늘도 심고, 쪽파도 심었다. 어머님의 사랑이 가득 담겨있는 파란 고무신. 한 동안 나와 더불어 나의 작은 텃밭에서 무던히 많은 씨앗을 뿌리고 거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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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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