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의 옥상텃밭과 나의 작은 텃밭이야기

등록 2003.10.12 23:01수정 2003.10.13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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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어머니와 아버지는 늘 새벽예배를 마치시면 옥상으로 올라가셔서 옥상에 만들어 놓은 텃밭을 가꾸신다. 그 옥상 텃밭이며 화분들이 얼마나 아기자기하고 실한지 옥상에 올라가는 분들마다 십중팔구 '세상에!'를 연발하신다.


오랜만에 부모님을 찾아 뵙고 옥상에 올라가 보았다.
"세상에!"
부모님의 옥상텃밭이 신혼부부의 살림살이라면 저의 작은 텃밭은 소꿉놀이하는 수준이다.

제주에서는 이제 막 노지감귤이 출하되기 시작했는데 옥상화분에 심은 귤은 더 일찍 노랗게 익어간 듯 하다. 하늘을 배경으로 찍으면 영락없이 제주의 귤밭에서 찍은 사진으로 착각을 할 정도로 무성하게 귤이 열렸다.

"아버지, 혹시 무슨 농약같은 것 치세요?"
"아니다. 한약찌꺼기 얻어다 넣어주고 아침저녁으로 물 한 번씩 주는 게 전부다."

옥상화분에 담긴 흙이기에 흙 관리를 잘못하면 썩기 마련인데 몇 년째 저렇게 풍성한 귤을 맺는 것을 보면 단지 한약찌꺼기가 약효가 있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의 사랑을 먹고 자라는 것 같다.

"너도 텃밭 좀 가꾸는 모양이던데 그래, 흙을 만지면서 느끼는 바가 많으냐?"
"그럼요. 이번에 검은콩은 다 털어 봐야 알겠지만 돈으로 치면 오만원이나 될지 모르겠네요. 그래도 누가 와서 '50만원 줄 테니 콩파슈'해도 못 팔아요. 거기에 들어간 정성을 생각하면 그렇게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물론 거저 이웃들에게 나누는 것이야 돈이 들어가도 하겠지만요."
"흙을 만지면서 조금 자연스러워졌구나."
"아버지 좇아가려면 멀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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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요즘 배추가 금값이라는데 옥상텃밭에는 싱싱한 배추가 무성하다.


"올해는 배추 값이 금값인데 정말 배추 예쁘게도 자랐네요. 이것도 마찬가지로 한약찌꺼기와 아침저녁 주는 물이 전부에요?"
"농약을 안 치려면 벌레를 일일이 잡아줘야지 안 그러면 이파리가 남아있지 않아."

배추잎 한 장 한 장에 닿았을 부모님의 손길을 생각하니 저 배추를 담근 김치는 더 맛이 있을 것만 같다.


노동이라는 것, 요즘이야 이해타산적으로 적게 노동하고 많이 버는 것이 지혜로운 것이요, 능력인 것처럼 인식하지만 원래의 노동은 땀흘린 만큼 얻는 것에 만족하고 더 나아가서는 노동한다는 것 자체가 삶의 한 표현이요, 삶의 일부였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옥상텃밭에서의 노동은 물질로 환산할 수 없는 수많은 가치들이 들어있다. 두 분이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시며 밭일을 하실 때 사랑하는 사람과 더불어 일할 수 있다는 행복감을 느끼셨을 것이요, 이것을 거두어 나누어 먹을 이웃들과 자식들을 생각하시면서 이내 행복하셨을 것이고, 자칫하면 무료할 수 있는 노년의 시간들을 활기차게 했을 것이다. 그것 외에도 얼마나 소중한 두 분만의 이야기가 숨어있을까?

나도 작은 텃밭을 가꾸며 때로는 현대인들이 보기에 어리석은 노동을 종종 한다. 씨앗 값이며 뙤약볕에서 일을 하는 것이며 땀흘리는 수고를 물질로 환산하면 그것같이 밑지는 일이 없다.

그러나 흙을 만지며, 씨앗을 뿌리고 밭을 갈고 때로는 풍성하게 거두면서 얼마나 많은 자연의 소리를 듣는지 모른다. 나의 내면과 대화를 하면서 절망이라든지 슬픔 등 나를 옭아매려는 끊임없는 욕심의 사슬들을 하나 둘 보내버리고 아주 작은 희망들로 하나 둘 채워나가다 보면 비록 손은 거칠어지고 온 몸이 뻐근하지만 책상에 앉아서는 얻을 수 없는 소중한 것을 얻게 된다.

나의 텃밭은 부모님들의 텃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은 조건이면서도 그 곳에서 거두는 것은 비교하기가 부끄러울 정도로 부실하다. 그래도 그것을 몸으로 모시고, 아이들이 맛나게 먹는 모습을 보며, 이른 새벽 촉촉한 이슬을 머금고 있는 채소를 솎아내는 아내의 손에서 행복을 느낀다.

a 작두콩

작두콩 ⓒ 김민수

분명히 나의 작은 텃밭에도 작두콩을 심기는 심었는데 구경도 못했다. 아예 싹이 나오질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심어놓고는 심었다는 사실조차도 깜빡했을 것이다. 그래서 분명히 다른 씨앗을 뿌리느라 심었던 작두콩을 갈아엎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옥상에 열린 작두콩을 보는 순간에서야 '어라, 나도 심었는데'까지 생각할 수 있는 것이 나의 기억력의 한계점인지도 모르겠다.

정말 작두모양의 크기 만한 콩이 탐스럽다.

올해 나의 작은 텃밭의 검은콩농사는 낙제점은 면한 듯 한데 완전히 털어 봐야 할 것 같다. 태풍 매미가 콩밭을 흔들어 놓지만 않았으면 아마 동네에서 가장 콩 농사를 잘 지었을 정도로 무성했는데 역시 이파리를 잃은 뒤에는 더 이상 영글지 않았다. 그래도 검은콩이라고 갖출 것은 다 갖추고 있어서 씨앗으로는 사용하지 못하겠지만 콩국이나 다른 것을 만드는데는 큰 지장이 없을 듯하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농사에 관한 한 전문가시고 나는 완전 초보다. 그러나 흙을 만지고 씨앗을 뿌리고 거두는 과정에서 느끼는 행복감은 전문가이신 부모님들이나 초보농사꾼이거나 사이비농사꾼이 나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부모님의 텃밭과 나의 작은 텃밭. 하나는 도심의 옥상에 자리하고 있고 하나는 작은 농어촌 마을에 자리하고 있지만 흙을 만지는 그 순간에 서로 이어주고 있다. 내가 흙을 만지며 순간순간마다 부모님을 생각하며 기도하듯이 어머니와 아버지도 흙을 만지실 때마다 서툰 손으로 텃밭을 가꾸는 아들을 생각하실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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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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