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창녀 방에 걸린 깡마른 갈까마귀"

갈까마귀 그림 그리는 심재 조규성 선생을 찾아서

등록 2003.10.16 00:54수정 2003.10.20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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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깡마른 갈까마귀 한 마리가 있다. 내 서재 벽면에 걸린 놈의 눈빛은 허무, 불안, 결핍, 고통, 광기 이런 것들과 어우러져 어렵게 찾은 평상심을 앗아가고 항상 복잡한 감정의 기복과 충동을 강요하곤 했다.

그의 그리기는 일종의 주술같은 치유의식이다
그의 그리기는 일종의 주술같은 치유의식이다김대호

기어코 작가를 만나 따져 보리라 전시회마다 발 품을 팔았지만 그는 마치 잡인의 침범을 금하는 소도(蘇塗)의 천군(天君)인양 은둔해 있었고, 나도 아직은 때가 아니라 자위하며 3년 세월을 보냈다.


그의 전시회에서 나는 차마 붉지 못하고 차갑게 시들어 가는 '불꽃'과 '비애(悲哀)의 몸체(갈까마귀)'를 다시 발견할 수 있었다. 벅찬 감동과 우울한 혼미(depressive stupor)가 동시에 밀려왔다. 자유분방하게 하늘을 나는 당신은 도대체 뭐가 그리도 외롭고 그리운 것인가?

그리고 3년 후. 해남군 산이면 대진리 양지뜸에 은둔해 있는 올해 환갑의 심재 조규성 선생을 만났다. 그는 불도 켜지 않은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인불을 켜고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는 그의 표정은 상주도 관도 없는 반란군의 시체 무더기에 내려앉아 저승길로 인도하는 '갈까마귀'의 그것처럼 무표정하고 공허해 보였다.

부인이 3년을 묵혔다는 쑥차를 내왔다.

"연대 국문과를 나와서 조선일보에 들어갔는데 박통 때라 기사를 쓰기만 하면 캔슬당하니 화가 나서 8개월만에 때려치웠지. 중국 장대천 화백 전시회에 갔다가 그림을 보고 갑자기 내가 헛살고 있다는 생각이 불쑥 들더라고, 그래서 바로 짐 싸들고 낙향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지"

그는 처음에는 광주에 가서 의제 허백련 선생이 생전에 만든 연진회에 들어가 그림 공부를 했는데 자꾸 의제 선생 판박이로 그림을 그리라고 해서 다시 그만두고 목포로 내려왔다. 혼자 여관방에 몇 달을 틀어박혀 유명 화가들의 그림 모사를 수백수천번 반복하며 그림 공부를 했는데 범죄자로 오해도 받았고, 종이 살 돈이 떨어지면 신문지고 벽면이고 가리지 않아 여관주인에게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


화실 문이 열리고 장년의 한 사내가 고개를 들이밀었다.

"형님, 수술 끝내고 하도 피곤해서 좀 쉬러 왔소. 차나 한잔 주십시오"


목포한국병원 강철수 원장이었다.

이제 해가 지고
길 위의 기억은 흐려졌으니
어둠 속에서 중얼거린다.
나를 찾지 말라.
무책임한 탄식들이여
길 위에서 일생을 그르치고 있는 희망이여
<심재의 제목 없는 시 중에서>


절망의 나락에서 만난 든든한 후원자 강철수원장
절망의 나락에서 만난 든든한 후원자 강철수원장김대호
선생과 강철수 원장의 인연은 각별하다. 바닥까지 이른 절망의 늪에서 극적으로 만난 것이다.

"스무해를 키운 둘째 아들을 가난 때문에 잃고 집은 법원에서 붙여 놓은 차압 딱지로 도배가 되고 마누라와 자식들은 내 얼굴만 처다 보는데 해결할 방법이 있어야지. 그냥 그림만 그리고 자빠져 있었지. 그때 생면부지 강 원장이 오늘처럼 화실 문을 열고 들어오더라고"

7년 전 대흥사를 다녀오던 강 원장은 우연히 심재 선생의 화실 팻말을 발견하고 호기심에 들어 왔다가 차압 딱지 속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50대의 한 남자가 연출하는 묘한 풍경에 거의 공포에 가까운 전율을 느꼈었다고 회상한다. 그것이 인연이 돼 지금은 심재 선생의 든든한 후원자로 친혈육 이상으로 가까운 사이가 됐다.

강철수 원장은 "심재 선생의 그림은 심한 사회 불안, 궁핍, 정신적 고통 등을 그림을 통해 자신의 감정으로 표출하는 일종의 '치유 의식'"이며 "고통의 씨앗임은 그림 속에 분명히 나타나지만 한편으론 정신적인 위기를 넘기는 결정적인 처방이 되기도 한다"고 나름의 의학적 분석을 한다.

감정의 기복을 강요하는 심재의 갈가마귀
감정의 기복을 강요하는 심재의 갈가마귀김대호
"예전에 삼학도에 옐로우 하우스라는 창녀촌이 있었는데 우석 정기식 선생이 거기서 그림을 해서 가끔 놀러갔지. 그런데 창녀 아가씨 방에 내 그림이 떡 허니 걸려 있는 거야. 내가 우석에게 당장 떼 내라고 항의를 했지. 마치 이발소나 다방에 걸린 싸구려 그림 취급을 받는 것도 같고 그곳을 출입하는 이들이 얼마나 비웃었을까 생각에 얼굴이 후끈거리고…"

심재는 자기 그림을 처음으로 알아 준 사람이 사창가에서 몸을 팔던 나이든 창녀였다는 고백을 했다.

미대를 다니다 팔자가 꼬여 목포까지 흘러왔다는 나이든 창녀가 '삭막한 배경에 뼈만 앙상한 새 그림이 꼭 자기를 닮아서' 화대를 모아 구입했다는 것이다.

창녀에게 한방 맞은 그는 그때부터 대중 사이에서 줄타기하듯 그림을 그리는 것을 포기했다. 기존의 질서를 거부한 그림 그리기와 그 특유의 어눌한 선문답, 불쑥 사람의 심기를 뒤집어 놓는 괴팍한 말투로 인해 그에 대해 비평가들의 호오(好惡)가 갈렸다.

심재는 당시의 무관심과 혹독한 비평에 대해 '어떤 고통에 찬 신음에 내게 와서 나를 좀 슬프게 할지라도 이 우주 안에 한 작은 파도 소리에 씻기고 씻겨 햇빛이 오는 한낮은 저 개털 위의 젖은 물잎새처럼 젖어 피련다'고 시로 적었다. 그때 이 사람은 한마디로 신기하고 별나고 사랑스러웠다. 훗날 이 터무니없는 치기와 오만함에 대한 대가를 얼마나 혹독하게 치러야 할지 그때는 몰랐을 것이다.

그에게 술과 담배는 호흡하는 유일한 증거다
그에게 술과 담배는 호흡하는 유일한 증거다김대호
선생은 요즘 '허깨비처럼 벌판에 선 느낌'이라고 몇 번이고 반복한다. 이 세상을 살다간 사람 치고 슬픔이 없었던 사람은 없는데 환갑의 나이에 자신이 그동안 어디서 무엇을 한 것인지 뒤따라온 그림자를 좀체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선생은 끝없이 절망하는 연습을 해오며 때로는 악마와 공모라도 해서 탈출구를 찾아보려는 병적인 집착을 하기도 하고 술과 담배로 인해 살아있음을 확인할 뿐 숨쉬기조차 어려웠던 숱한 고통에 절망하기도 했다.

지독한 이기심, 이런 것들 사이에서 종내는 도망가버리려고도 했지만 결국 온갖 비인간적인 것들에 대한 악다구니라도 써야 한다는 멍에까지 짊어질 예감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바로 살아있는 사람의 멍에 말이다. 결국 그의 갈까마귀는 자화상이었다.

심재는 환갑의 나이에 이제야 붓 드는 법을 겨우 알았다고 말한다. 아직도 세상은 낯설고 버겁지만 장대천 화백의 그림에서 배웠듯이 빈손으로 떠나는 사람들에게 '당신은 헛살지 않았다'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당신은 헛살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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