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페미니스트 전여옥 분리수거해야"

노혜경 시인, 여성의 '적' 노릇하는 '여성'은 공격해야

등록 2003.10.22 11:13수정 2003.10.22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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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멜프레스 김학리


노혜경(44·부산외대 교수) 시인은 조선닷컴에 <기쁨 못 준 대통령 물러나길>이라는 칼럼을 쓴 전여옥씨에 대해 "조선일보 등 올바르지 못한 정치적 기반에 기대어 맥락이 맞지 않는 비판을 쏟아내고 있는 그는 민주당 분당 과정에서 이미경 의원의 머리채를 붙잡은 어느 여성 부위원장의 파렴치한 모습을 연상시킨다"면서 "같은 여성으로서 부끄럽다"고 말했다.

"전여옥씨 칼럼은 여성주의의 가장 부정적인 형태"

또한 노혜경 시인은 "여성의 인간적이고 우아한 포지션을 모두 배제한 채 거친 말만 쏟아내는 것이 여성이 사회에서 성공하는 길인가"라고 반문한 뒤 "전여옥씨가 칼럼, 토론 프로그램에서 연이어 보여 주는 행태는 여성주의의 가장 부정적인 형태"라고 비판했다. 진보 의식이 결여된 여성주의의 허점을 전씨가 극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는 것.

전여옥씨는 지난 1997년 페미니즘을 강력히 비판한 이문열의 장편 소설 <선택>이 파문을 일으켰을 때 여성의 편에 서서 가장 강력하게 페미니즘의 정당성을 옹호했던 인물. 하지만 그 후 전씨는 <조선일보> 등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개혁 세력을 수구 기득권의 논리로 줄기차게 비판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전여옥씨의 이러한 변화에 대해 노혜경 시인은 "이문열의 <선택> 논란이 있을 때만 해도 여성이 공격을 받으면 여성 계급 전체가 '통일 전선'을 구축해야 했기 때문에 전여옥씨만큼 발언권이 있는 여성의 목소리가 필요했지만 지금은 여성의 발언권을 얻을 수 있는 경로가 훨씬 다양해졌기 때문에 맥락이 맞지 않는 전여옥씨의 '독점권'을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노혜경 시인은 "글을 알아도 무식한 인물이 너무 많다"면서 "국민들의 의식이 성장했기 때문에 가짜 페미니스트를 '분리 수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진정한 개혁은 기득권 포기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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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멜프레스 김학리

'실천하는 지식인' 노혜경 시인. '안티조선 운동' 운영위원으로서 언론 개혁에 앞장 섰고, '노사모' 출판위원장으로서 정치 개혁을 위해 뛰어다녔으며, 대선특위 여성위원장으로 여성의 권리를 현실 속에 뿌리내리게 하기 위한 '밭'을 일군 그는 늘 시대의 소용돌이에 온몸을 던지는 시인이다.

그런 그를 사람들은 '전투적 지식인'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기자는 그와의 인터뷰에서 각종 현안에 대한 독설'을 기대했지만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미소를 담은 따뜻한 말들이 돌아왔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재신임 정국에 대한 질문부터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노혜경 시인도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에 나섰던 그 많은 사람 중에 한 명이 아닌가. 어떤 '마음의 눈'으로 현 정국을 바라보고 어떤 의미를 캐내야 하는 걸까.

"액면 그대로 믿어야죠. 독재 치하에서 겉과 속이 다른 말들에 너무 시달린 국민들은 정치를 음모론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질병에 걸려 있어요. 모든 걸 '정치 공학적 술수'로 몰아가는 '오염된 시선'을 지닌 사람도 있고요. 재신임을 묻겠다는 것은 법적 권위를 뒷받침하는 힘을 강제력이 아니라 '도덕적 성실성'에 찾아야 한다는 거죠."

재신임 정국 바라보는 '마음의 눈'

어찌 이 지경까지 왔을까. 대통령이 재임 8개월만에 재신임을 묻다니. 어쨌거나 대통령은 자신의 자리를 걸고 질문을 던졌고 정치권은 서로 대답하기 바쁘다. 국정 혼란의 주체가 누구라며 손가락질하기 여념이 없다. 타인의 목을 겨누었던 손가락 끝을 자신의 가슴으로 돌리는 태도가 절실한 대목이다.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이 있죠?(웃음) 노 대통령 지지자들이 선거에서 이기기만 하면 당장 우리 생각대로 된다고 여긴 것 같아요. 대통령이 원칙대로 하길 바라는 동시에 '반칙왕'과 싸울 때는 반칙도 불사하고 이겨주기를 바라는 거죠."

언론 개혁, 이라크 파병, 화물연대 파업, 위도 핵 폐기장 건립 계획 등 각종 문제가 줄줄이 이어지자 한나라당과 조중동, 진보 진영, 그리고 노무현 지지자들까지 노무현 흔들기에 나섰다. 아웅다웅 티격태격하는 소리에 개혁의 목소리는 묻혀버렸다.

"노 지지자들까지 흔들리니까 노무현과 이념적 지향이 다른 진보 진영이 욕심이 더욱 늘어난 거죠. 진보 진영은 노무현에게 실망한 사람들이 자신들 쪽으로 올 거라고 판단한 거죠. 하지만 진중권씨 등의 진보 진영이 노무현 정부를 비롯한 개혁 세력을 비판한 것은 노 지지자들을 더 결집시킨 결과를 낳았어요. 그것대로 긍정적인 의미가 있지만 수구 세력들과 싸울 힘을 노무현 옹호하기에 바쳤다는 점에선 부정적인 의미가 있죠."

요컨대 수비하기에 급급하지 말고 응집력을 갖고 공격에 힘써 결정력을 높이라는 말일 터다. 그런 의미에서 노혜경 시인은 수구 세력들의 이데올로기 공세에 대해서 철저하게 공박해야 한다고 말한다. 반공, 친미, 신자유주의에 대한 이데올로기 공세는 국민들에게 '허위의식'을 주입하기 위한 지배 담론인 까닭이다.

"송두율 교수를 몰아세우는 거 봐요. 또 하나의 색깔 공세 희생양이죠. 사유와 실천을 이어 붙이며 살아가려 했던 개인의 업적을 이데올로기 공세로 묻어버리는 거죠. 그래서 누가 이득을 볼까요. 수구 세력이잖아요."

현실 바꾸기 위해 현실과 부대끼는…

진보의 가치는 결국 세상을 느리게나마 앞으로 나아가게 하기 위해 '땀'에서 찾아야 할 터다. 하지만 진보와 개혁을 부르짖던 남성들도 유독 여성 문제에서만큼은 결사적으로 반대하거나 어정쩡하게 침묵하면서 뒷걸음질치고 있다. 왜일까. 여성 문제에 관해 올곧은 말을 했다가 살해 협박까지 받았던 노혜경 시인은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정치든, 경제든, 여성 문제든 결국 가진 것에 대한 집착이 보수화의 원인이에요. 모든 억압은 기득권의 논리에서 발생하죠. 진보 진영 남성들이 여성 문제에 대해 때로는 더욱 적대적인 건 여성에 대한 지배마저 포기하면 그나마 지닌 남성으로서의 기득권을 잃어버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겠죠. 진보의 '이념을 입에 올리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천을 몸에 붙여'야만 해결될 문제일 듯합니다."

여성계의 반성이 필요한 부분은 없을까. 여성 권익과 양성 평등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참신한 기획과 다양한 방법론을 연구해야 하지 않을까. 노혜경 시인 역시 여성 운동계가 반성해야 할 점이 있다는 것은 인정했다.

"내가 주장하는 대의와 신념이 올바르다 해서 나라는 인간이 자동적으로 훌륭하고 올바르게 되는 것은 아니거든요. 좋은 말을 하면 좋은 행동을 해야 하는 거지요. 그래서 말하기가 무서운 거죠(웃음). 여성 운동도 결국 개혁의 논리를 받아들여야죠. 개혁은 기득권을 내어놓는 것에서부터 이어지는 거잖아요."

노혜경 시인은 "여성의 적은 여성이다"라는 세설(世說)에 "공감하고 아파하는 자매의 시선"으로 맞선다. 하지만 여성의 적 노릇을 하는 여성들은 과감하게 공격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기 현실에 안주하는 기득권 여성을 어떻게 가만둬요. 전여옥 같은 사람이 여성의 이름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데요."

그런데 노혜경 시인의 가정 생활은 어떨까. 회사원이었던 남편은 경제난의 영향으로 비정규직, '잠재적 실업자'가 되었다면서 노혜경 시인은 웃는다. 그리고 딸이 한 명 있다면서 더 크게 웃는다.

현재 고등학교 1학년인 딸은 1999년 '사고'를 쳤다. <인물과 사상>에 소설가 신경숙이 의존적이며 공주병에 걸린 반여성적인 인물을 만들어 낸다는 비판글을 투고했던 것. 이후 진보 성향 인터넷 사이트는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 때 '똘똘한' 딸은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지금은 모범생으로 변신했어요. 아쉬워요. 대안학교를 보내고 싶었는데 이 녀석 욕심이 커서. 별다른 교육법은 없어요. 남편과 딸과 함께 '섹스'와 '동성애자'에 대한 토론을 하는 정도?(웃음) 저보다 남편의 역할이 커요. 저만 있었다면 딸은 세상에 대한 적개심만 키웠을 거예요. 자녀 교육에 있어서 아빠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한 것 같아요."

문학과 예술과 사회적 약자와 여성을 위해, 그리고 가족을 위해 자신이 처해 있는 현실과 늘 부대끼는 삶을 사는 노혜경 시인. 그의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머리와 입과 몸이 따로 노는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리라. 그는 앞으로도 지금처럼 살아갈 것이다. 최근 낸 산문집의 제목처럼, '천천히, 또박또박 그러나 악랄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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