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내도 파는 책은 안 내겠다" 그러나...

귀농 생활 10년이 책으로 나오다... 그러나 나를 당황하게 하는 것들

등록 2003.10.24 07:44수정 2003.10.24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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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기념잔치를 며칠 앞두고 있는 지금 문득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벌써 2년이 더 지났다. 귀농 7년 째 되는 해에 내 집을 한 채 지을 때다. 15평을 짓자고 하는 나와, 아이들도 곧 각 방을 쓸 텐데 20평 정도는 지어야 한다는 아내와의 언쟁이다. 그러나 언쟁은 집을 다 짓고 나서도 계속되었다.

'이왕 하는 거 돈을 조금 더 들이더라도…'라는 것 때문에 언쟁은 끊이지 않았다. 이왕 하는 거 지붕은 기와로. 기와로 하려면 이왕 무광택 흙 기와로. 결혼 때도 남의 냉장고로 시작하여 중고만 얻어 살았으니 이 참에 좀 큰 냉장고로 바꾸자. 중고점에 좋은 거 많다. 싱크대 중고로 싹 가는데 40만원이면 한다는데. 하수배관도 75밀리나 100밀리나 가격은 그게 그거다. 배수뚜껑도 플라스틱 보다 신쭈(놋쇠. 구리와 아연의 합금)로 하자. 등등.

이렇게 써 놓고 보니 마치 아내가 돈을 펑펑 쓰는 사람처럼 묘사되어 버렸다. 글이라는 게 뭘 강조하려다 보면 이렇게 점층적으로 고조되는 부위가 생긴다. 이번에 발간하게 된 내 책이 딱 그렇다.

'이왕 하는 거, 이 정도야 뭐….'라는 불철저한 심리가 삶을 얼마나 흔들리게 하는가를 말하고자 한다. 삶의 원칙을 지켜 내는 것은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배와 같아서 부지런히 노를 젓지 않는 순간 배는 뒤로 흘러간다. 어젯밤 MBC 100분 토론에 이라크 파병 찬성론자로 나온 신아무개씨를 보면서 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십 몇 년 전 그가 변혁운동진영에 ‘고백’이라는 충격적인 문건을 내 놓고 경실련으로 들어갈 때, 일본으로 건너 가 박사학위를 따 올 때, 2년쯤 전 삼성경제 연구소에 있다는 얘기를 그와의 전화통화에서 알게 되었을 때 나는 거듭 놀랐었다. 울산의 공단지역 그의 단칸 자취방에서 잠시 신세지던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의 그가 주장하는 이라크 파병과는 너무 동떨어진 추억이다.

이름도 처음 듣는 어느 출판사 사장으로부터 책을 내자는 권유를 받고 나는 책을 내되 정말 필요로 하는 분들께만 무료로 나눠 주자고 했다. 내 10여년 귀농생활에 가격이 매겨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같아서였다.


대신 책 뒤에 인건비 등 책 출판에 든 모든 비용을 공개하여 책을 읽고 정말 도움이 되었다고 판단하시는 분들이 자발적으로 성금을 내 주면 그걸로 재판도 찍고 하자는 제안이었다. 그때가 올 2월쯤이다.

나의 그런 역 제안을 받고서 그 출판사 사장님은 기획 일을 하는 직원을 데리고 우리 집까지 내려왔고 자본주의에 작은 구멍이라도 뚫어보고 싶다는 내 취지를 적극 지지했다. 하룻밤 술상을 마주한 자리에서 계약이 이루어졌다.

재작년에 관록 있는 잡지 ‘말’지에서 두 분이 이곳에 내려와서 출판하자고 했을 때도 거절했던 내가, 올 초에 ‘미네르바’라는 잘 알려진 출판사에서 제안이 왔을 때도 심드렁했던 내가 무슨 바람이 불었던 것인지 지금 생각해도 알 수가 없다.


이렇게 시작된 책 내는 작업이 이제 열흘 쯤 지나면 출판 기념잔치가 열린다. 출판사 쪽에서도 내 처음 제안을 좋게 생각하고 책을 판매할 때 감자 한 봉지나 호미나 괭이 등을 선물로 줄 수 있는 기획을 해 보자고 하기도 했었지만 지금은 책값도 처음 예정했던 것 보다 더 높게 책정되어 서점에 깔리고 있는 것이다. 책의 분량이 훨씬 늘어 난 결과이기도 하다.

출판 기념회에 사람들을 모시느라 나는 초청장도 300여장이나 찍었고, 메일도 보내고, 게시판 돌아다니면서 안내문도 올렸다. 초청장을 호주머니에 가지고 다니면서 만나는 사람들 마다 주었다. 어떤 사이트는 후배에게 자네 이름으로 좀 올리라고 부탁까지 했으니 말 다했다.

갑자기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었다. 어느 후배가 ‘도대체 왜 그래? 사람들 불러다 책 주고 밥 주고 술 주고 공연하고 왜 그래야 돼?’라고 물어 왔을 때 그랬다. 니가 제대로 된 농사꾼 되려면 멀었다는 비난이 담겨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여기까지 밀려 온 것이다. 정말 얼렁뚱땅 이렇게 되었다.

이 글 쓰는 동안에 KBS 라디오 에서 전화가 왔다. 매주 화요일에 하는 "책으로 여는 세상" 담당 PD 라고 하면서 다음주 화요일에 서울 스튜디오까지 와서 대담을 나누자고 했다. 생방송인 모양이다. 어려우면 전화로 10분정도 인터뷰 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정말 낯이 뜨거웠다. 차마 방송까지 나갈 수는 없었다.
이렇게 연락 해 주신 것은 정말 고맙고 감사하지만 더 좋은 다른 책들을 소개 하시면 좋겠다고 사양을 했다. 전화 끊고 나니 문득 출판사에서 책도 보내고 당부도 드리고 해서 내게 온 전화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출판사 쪽에 미안해해야 하나? 아냐 이 정도는 글 쓴 사람이 결정해도 되겠지.

책 제목이나 가격도 내 뜻과는 다르게 정해지고 나는 아직 책 구경도 못했는데 인터넷 서점에 쫙 깔렸다고 친구로부터 메일이 왔다. 나는 책의 제목을 최종 단계에서 ‘똥냄새 땀냄새 흙냄새’로 하자고 했었는데 그렇게 되지 않았다.

차라리 주장이나 연구 글이라면 낫겠다고 생각한다. 생활을 드러내는 글들이다 보니 진실의 문제가 내내 부담으로 왔다. 글들이 내 진실을 담고 있나? 과장하고 있지는 않는가? 은폐하지는? 책임 질 수 있는가? 진짜 너 그렇게 살고 있냐? 앞으로도? 이런 질문을 계속 나한테 하게 되었다.

출판사에서 10여 년 써 온 내 글들을 추려서 가 편집해 보냈을 때도, 탈고를 부탁 해 왔을 때나 제목을 보내왔을 때도, 표지 디자인을 세 개나 만들어 내려 보냈을 때도 이런 것들이 내내 나를 괴롭혔다.

못내 부끄러웠다. 헌데 무슨 출판기념잔치겠는가. 아는 사람 몇몇에게 추천사를 부탁할 때는 그래도 덜했다. 한 친구가 ‘추천사는 자기보다 더 유명한 사람한테 받는 건데 나 같은 사람한테 그런 걸 다 부탁해?’라고 해 놓고는 추천사에서 낯 뜨거운 극찬을 했을 때도 혀를 몇 번 차는 것으로 넘어갔었다.

출판사에서 ‘머리말’을 써 보내라고 할 때였다. 제일 쉽게 쓰여 져야 정상인 머리말을 나는 제일 힘들게 써야했다.

‘책을 내도 파는 책은 안 내겠다. 사고팔고 하는 짓들이 결국 사람사이에 차별을 만든다’고 내가 기염을 토할 때 어떤 친구는 빙긋이 웃으며 그거 참 참신한 마케팅 전략이 되겠다고 했었다. 내가 책을 나게 되었다고 했더니 대학교수로 있는 어느 분과 정치를 하는 어떤 사람은 대뜸 ‘그래? 돈 많이 들었겠네?’라고 하는 것이었다. 돈 받고 책 낸다고 내가 어리둥절해 하자 그 사람이 되레 어리둥절해 했다.

책 내며 겪은 일들이다. 이 글을 보고 책 선전 참 교묘하게 한다고 혀를 차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앞으로 겪어 내야 할 난감함의 첫 관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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