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릿느릿 박철
일단 숲에 들어오면 아무 생각도 없습니다. 상수리나무 사이로 가을햇살이 비치고, 수북이 쌓인 가랑잎을 밟으며 작대기로 툭툭 치면서 상수리를 줍노라면 세상 모든 걱정 근심이 다 물러갑니다. 아내가 오늘은 기분이 좋은 모양입니다.
“여보, 오늘 상수리 누가 많이 줍나 내기 할래요?”
“무슨 여자가 내기를 그렇게 좋아하나? 무슨 내기?”
“진 사람이 이따 저녁에 대룡리 가서 국밥 사는 걸로 합시다. 어때요?”
“좋아! 당신 돈은 있어?”
“그럼요.”
이제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눈에 불을 키고 아내와 나는 상수리 줍는 일에 몰두했습니다. 예년보다 많지 않으니 더 열심히 작대기로 뒤적거려야 합니다. 작대기로 낙엽을 뒤적뒤적하다가 상수리가 톡하고 튀어나오면 그걸 줍는 재미가 여간 쏠쏠한 게 아닙니다. 햇살에 상수리 알이 반사되어 반짝거리면 얼마나 예쁘고 기특한지 모릅니다.
상수리를 재미로 줍는 것이지만, 한 알 한 알 주울 때마다 허리를 구부리고 주어야 합니다. 보통 힘든 게 아닙니다. 상수리 주머니에 상수리가 두어 되 정도 들어가는데 상수리가 가득 차면 등에 지고 있는 배낭에 붓고 다시 빈주머니로 상수리를 줍습니다. 주머니에 가득 주은 상수리를 배낭에 쏟을 때, 그리고 배낭이 배부르게 상수리로 가득차는 걸 보면 기분이 삼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