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 제주도에서 DJ에게 '올 인'

[정치 톺아보기 36] '햇볕정책 계승' 천명 이어 'DJ도서관' 예방

등록 2003.11.03 12:50수정 2003.11.03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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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지난 4월 22일 노무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취임 이후 청와대에서 처음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지난 4월 22일 노무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취임 이후 청와대에서 처음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 청와대 제공


노무현 대통령이 사실상 처음으로 '햇볕정책의 계승'을 정식으로 언급했다. 그것도 제주도에서다.

노 대통령은 31일 오전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2회 제주평화포럼'에 참석해 그동안의 '금기'를 깨고 분명히 '햇볕정책의 계승'을 정식으로 언급했다. 다만, 이날 제주도민과의 오찬간담회에서 노 대통령이 공식 발표한 제주 4·3 사건에 대한 정부 차원의 사과라는 '큰 사건'에 가려 주목을 끌지 못했을 뿐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예브게니 프리마코프 전 러시아 총리, 윌리엄 페리 전 미 국방장관, 커트 웰던 미 하원의원,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국대사 등이 참석한 제주평화포럼의 기조연설에서 북핵 문제를 해결 위한 6자회담이 곧 열린 것이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남북한의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관계개선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햇볕정책'을 계승한 '평화번영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남북한간 화해협력과 공동번영, 그리고 항구적인 평화정착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노 대통령 비(非) DJ 성향 핵심 참모들, 햇볕정책 '계승'보다 '극복'에 무게중심

노 대통령은 민주당 대통령 후보 시절은 물론 대통령 당선자 시절에만 해도 '햇볕정책의 계승' 방침을 곧잘 언급해왔으나,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로는 '햇볕정책의 계승'을 언급하지 않았다. 특히 전임 정부와의 차별성을 꾀한 노 대통령의 비(非)DJ 성향의 핵심 참모들은 햇볕정책의 '계승'보다는 오히려 '극복' 쪽에 더 무게중심을 둬 왔다.

이같은 조짐은 이미 취임사에서 예고되었다. 노 대통령은 지난 2월 25일 취임사에서 새정부의 대북정책을 '평화번영정책'이라고 선언하면서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 ▲상호신뢰 우선과 호혜주의 ▲남북 당사자 원칙에 기초한 국제협력 ▲국민참여 확대 및 초당적인 협력 등 네 가지 추진 원칙을 제시하였다.


노 대통령은 또 취임사에서 "김대중 정부가 이룩한 성과를 계승하고 발전시키면서, 정책의 추진방식을 개선해 나가고자"한다고 밝혔다. 햇볕정책의 성과는 계승하되 잘못된 점은 고치겠다는 뜻이다. 공과를 분명히 해 새정부의 대북정책을 '햇볕정책'과 차별화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그리고 이같은 차별화 의지는 지난 3월 한나라당이 제출한 '대북송금 특별검사법안'을 민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노 대통령이 수용함으로써 '햇볕정책'과 분명한 선을 그으려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특히 노 대통령은 5월 한미 정상회담을 전후해 현실에 적용된 방법론 측면에서 김대중 정부와 분명한 차별성을 드러냈다.


노 대통령이 기내 간담회에서 "북한이 하자는 대로 따라갈 수는 없다"고 언급한 것이 그것이다. 노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을 전후해 '북핵 문제와 경제협력사업의 연계 방침'을 밝힘으로써 북한이 핵 문제에 관해 진전된 입장을 보이지 않으면 남북관계에 직접적인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천명했다.

김근태 원내대표 "우리 통합신당은 '햇볕정책'을 온전히 계승할 것"

또 노 대통령은 지난 7월 중국 <인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전임 정부는 대북정책에 있어 성과를 얻으려 급히 서두르는 경향이 있었으나 결과는 별로 이상적이지 못했다"고 전제하고 "대북정책에 있어 원칙과 투명성을 강조하고 서로 존중해야 하며 이런 토대 위에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향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현 정부의 대북정책은 전임 정부의 정책과 기본적으로 일치하지만 과거 일부 주장과 방식에 대해 필요한 조정과 수정을 가했다"면서도 "전임 정부는 대북정책을 '햇볕정책' 혹은 '포용정책'이라 불렀으나 신정부는 대북정책을 '평화번영정책'이라 명명했다"고 덧붙였다.

바로 그 때문에 '대미 외교통'이자 '리틀 DJ'로 불리는 한화갑 의원은 "북한은 김대중 대통령 때보다도 지금 더 남북교류에 더 적극적인 자세로 임하고 있으나 남북교류는 김대중 대통령 때보다 미미하다"면서 "노무현 대통령이 북한 핵문제를 비롯한 대북정책에 있어서 부시 행정부와 코드를 맞추기 급급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지난 10월 당시 김근태 통합신당(현 열린 우리당) 원내대표가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햇볕정책을 '온전히' 계승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도 말로는 '계승'을 언급하면서도 실제로는 '극복'에 더 무게중심을 둬온 듯한 노무현 정부의 '평화번영정책'에 대한 비판을 역설적으로 언급한 것으로 읽힐 수 있다. 다음은 그 대목이다.

"한반도에서 전쟁을 방지하고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안은 햇볕정책입니다. 6·15 공동선언을 통해 한반도에 비로소 평화의 새싹이 움텄습니다. 이로 인해 기나긴 남북간의 반목과 대립이 해소되고 화해와 협력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습니다. 건강한 한미관계와 남북관계를 동시에 유지시킬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정책입니다. 우리 통합신당은 '햇볕정책'을 온전히 계승할 것입니다."

노 대통령 "나는 DJ가 심은 4·3 특별법 감귤나무의 감귤을 딴 것"

그렇기 때문에 노 대통령이 '햇볕정책의 계승'을, 그것도 제주평화포럼에서 정식으로 언급한 것은 더더욱 의미심장하다. 제주평화포럼은 김대중 대통령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제1회 포럼 때는 김대중 대통령이 직접 참석해 기조연설을 했다. 동북아 '평화의 섬'과 '국제자유도시'는 이미 그때 축조된 것이다.

알다시피 2년마다 열리는 제주평화포럼은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역사적인 6·15 남북정상회담을 기념해서 만든 국제포럼이다. 이는 2001년 6월 15∼17일 열린 제1회 포럼의 명칭부터가 '남북정상회담 1주년 기념 동북아의 공동평화와 번영을 위한 제주평화포럼'인 데서 충분히 알 수 있다.

문정인 교수(연세대 국제정치)가 주도적으로 기획한 제주평화포럼의 배경 또한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 1주년 기념 ▲제주 평화의 섬, 동북아 중심거점, 국제자유도시 기반 구축 ▲세계 평화를 위한 주요 정상회담의 의미 부각 등으로 요약된다. 제주 출신인 문정인 교수는 소장파를 대표한 이종석 박사(현 NSC 사무차장)와 함께 학계에서는 유일하게 김대중 대통령의 남북 정상회담 특별수행원으로서 역사의 현장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보았다.

바로 그 제2회 제주평화포럼에서 대통령으로서는 두번째 기조연설을 한 노 대통령의 연설의 키워드도 남북한 국방장관 회담과 제3차 장관급 회담이 열린 '평화의 섬'과 매력적인 '국제자유도시'였다. 모두 김대중 정부가 추진해온 남북 정상회담 및 '평화의 섬' 제주의 '국제자유도시'화가 낳은 성과물이자 그 연장선에서 진행되는 정책들이다.

그래서일까. 노 대통령은 제주평화포럼 참석에 이어 가진 '제주도민들과의 대화'에서 4·3 사건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고서 제주도민들로부터 기립박수를 받자, 그 자리에서 그 박수를 DJ의 공(功)으로 돌렸다. 노 대통령은 "사실은 4·3 특별법은 국민의 정부 시절에 김대중 대통령이 마음먹고 만든 법"이라면서 "제가 오늘 받은 박수가 김대중 대통령과 함께 받는 박수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4·3 사건에 대한 정부 차원의 사과로 기립박스와 뜨거운 환대를 받은 노 대통령은 "생각해 보면 열심히 못자리(모내기) 하는 사람도 있고, 논 메고 하는 사람도 있다"고 전제하고, "타작도 일이고 감귤이 잘 익어도 따야 감귤이다"면서 "(그래서) 제가 박수를 받았지만, 제가 부탁도 하기 전에 4·3특별법(이라는 감귤나무)을 심고 가신 김대중 대통령께 마음으로 박수를 보내신 것으로 이해한다"고 거듭 밝혔다.

노 대통령의 방문은 전·현직 대통령의 새로운 정치문화를 여는 첫 사례

노 대통령은 이날 저녁 서울 국제경제자문단 일행과의 만찬에서도 한국을 '매력적인 투자처'라고 소개하면서 "김대중 정부 5년 동안 외자에 대한 국민적 인식이 완전히 바뀌었다"면서 "한국 국민은 지금 외국자본에 대해 합리적인 태도를 갖고 있으며, 이는 불필요한 규제 철폐와 외국기업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데 있어 국민적 저항이 그만큼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북핵 문제와 '카드 빚' 같은 김대중 정부의 '부정적 유산'으로 인해 어려움에 처한 자신을 '신세타령'하던 때의 침울한 모습과는 상반된 모습이다. 노 대통령은 '재신임 국민투표 승부수'를 통해 지지도를 회복하면서 서서히 정국 운영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자신감은 11월 3일 노 대통령의 김대중도서관 개관식 참석으로 절정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은 이에 앞서 '햇볕정책'의 상징으로서 DJ와는 뗄래야 뗄 수 없는 '평화의 섬' 제주도에서 DJ에게 '올인' 하는 모습을 보여준 셈이다.

청와대측은 30일 "청와대 안에서 '여러 경로'를 통해 노 대통령의 행사 참석 건의가 올라왔고, 참석하는 쪽으로 최종 결론을 내렸다"며 "현직 대통령으로서 전직 대통령을 예우하고 새로운 '전직 대통령 문화'를 지원한다는 차원"이라고 개관식 방문 배경을 밝혔다.

이와 관련 일부에서는 내년 4월 '황산벌'에서 민주당과 운명을 건 한판 승부를 벌여야 하는 '열린우리당'을 지원하기 위한 '억지 춘향'식 발걸음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래서 민주당에서는 수성(守成)을 위해 박상천 대표는 물론 '리틀 DJ' 한화갑 의원과 장남 김홍일 의원까지 나서자, 열린우리당에서도 김원기 주비위원장과 김근태 원내대표만으로는 역부족해 급기야 막판에 노 대통령까지 직접 나선 것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정치적 해석에 대해서는 양측이 모두 손사래를 젓는다. 그리고 그런 의도가 있건 없건, 어느 당을 지지하건 간에 퇴임한 뒤 정상적인 활동을 한 대통령 문화가 없는 상황에서 현직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의 행사에 참석해 전직 대통령에 대한 존경과 예우를 표시하는 것은 새로운 정치문화를 여는 첫 사례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칭찬받을 일이다.

'김대중 햇볕정책'의 '전도사'로서 대북송금 사건에 연루되어 곤욕을 치른 임동원 전 국정원장은 "김대중 정부는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정책)으로 화해협력을 추진했는데 반해 이 정부는 평화와 번영이라는 목표 자체를 정책으로 삼은 점이 달랐는데, 이제 비로소 제 자리로 돌아온 느낌이 든다"고 소회를 밝혔다.

한편 노 대통령은 김대중도서관 방문을 계기로 남북관계 전문가이자 민족 지도자로서의 DJ의 적극적 역할을 당부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김대중 전 대통령 또한 인사말에서 "한국은 남북문제의 당사자로서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면서 "비록 정치에서는 은퇴했지만 민족의 화해 협력과 평화를 위해서 할 수 있는 헌신을 아끼지 않겠다"고 '화답'할 예정이어서 주목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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