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풍기 앞에 콩이 쌓여간다.전희식
정말 콩은 콩알만 했다. 깨는 깨알만 했고.
출판 기념회다, 외지에서 온 손님들 접대다, 산판에 땔감 실으러 가랴 또 길동무의 보따리학교 예비학교가 예고 없이 이틀간 열려 이것 돌보랴 그래서 거들떠 볼 겨를이 없다가 오늘에야 겨우 콩하고 깨를 다 까불었다.
그동안 타작을 해서 마루 밑에도 넣고 마루 위에도 얹고 또 리어카에 실어둔 채 볼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았는데 다 꺼내서 따가운 햇살에 눈 찌푸려가며 전부 다 까불어서 자루에 넣었다.
곡식을 갈무리해서 자루에 넣고 보니 온 몸에 먼지를 뒤집어쓰고 콧구멍은 시커먼 먼지 덩어리가 뭉쳐 나왔지만 기분은 가을 하늘만큼 개운해진 하루였다. 물론 밭에는 아직도 타작하지 않은 검정콩이 남아 있다. 서리태도 제법 되고 들깨도 100여 평 타작을 못하고 있다. 날씨가 너무 좋다보니 자꾸 미루기만 하는데 이러다가 날벼락 맞지, 농사일이라는 건 미루는 게 아닌데 철을 어기다가 낭패 보지 싶어 항상 마음을 졸인다.
숨죽인 바람, 목덜미고 파고드는 까시래기
옛날에는 가을걷이가 시작되면 선들선들 가을바람이 솔잖게 불어 밭이건 앞마당이건 그냥 바람에 날려서 콩이랑 깨랑 알곡을 가려냈는데, 세상이 뒤숭숭해서 그런지 바람도 안 분다. 비자금이다 대선자금 수사 확대다 난리가 법석이다 보니 바람도 숨을 죽인 것일까?
근데 오늘은 바람이 내리치다가 어느새 올려치기도 하고 내 몸을 기둥 삼아 회오리치기도 해서 도저히 작업을 할 수가 없었다. 웬만하면 전기를 안 쓰고 기름도 안 쓰는 게 생태농을 하는 사람들의 원칙이지만 할 수 없이 나는 선풍기를 꺼내 와서 바람을 부쳤다. 먼지가 내 몸을 기둥삼아 콧구멍을 향해 솟구쳐 올라오는 데는 별 도리가 없었다. 목덜미로 파고드는 까시래기들이 땀구멍마다 박혀와 봐라. 까지래기에 장사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