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처럼 바다처럼 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강바람포토에세이> 새집과 푸른 바다에서 들려오는 삶의 소리

등록 2003.11.05 13:36수정 2003.11.06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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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오래전 부터 비어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잠시 집을 비운 것인지 새집에는 지붕만 없는 것이 아니라 세간살이도 없다.

오래전 부터 비어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잠시 집을 비운 것인지 새집에는 지붕만 없는 것이 아니라 세간살이도 없다. ⓒ 김민수

불청객의 소란한 발자욱 소리에 잠시 자리를 비운 것인지, 아니면 이제 그 동안 머물던 집을 떠나 다른 곳으로 보금자리를 옮긴 것인지 모를 새집. 지난 가을 으름을 따러 나섰다가 으름덩굴을 꽉 붙잡고 있는 새집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내 뇌리에서 잊혀질 줄 알았던 새집이 늘 잔영처럼 새록새록 되살아 올라왔다. 맨 처음에는 그 잔영의 그림자가 무엇인지 몰랐는데 그 동안 찍어 두었던 사진들을 정리하다가 새집을 보았을 때 그 희미한 잔영의 정체가 뚜렷해졌다.

'그래, 바로 이것이었구나!'

새집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산야를 날아다녔을까? 저 검불 하나 하나를 엮으며 집을 짓기까지, 그리고 그 곳에 알을 낳고 새끼를 까고, 지지배배거리는 새끼들에게 먹이를 날라주고, 훈련 끝에 아기 새들도 푸른 창공을 날아갔겠지.

수많은 수고와 삶의 흔적이 그 곳에 있건만 머물지 않고 어디론가 떠난 버린 새. 그래서 자유롭게 창공을 날아가며, 또 어디에선가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새의 자유로움을 본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이에 비하면 우리 사람들은 얼마나 집착이 강한가.


그 집착은 때로는 자신의 수고와 땀흘림이 아니며, 자신이 누려서는 안될 것까지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의 소유로 삼는 것만을 최상의 것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래서 더 소유하고자 하면 할수록 존재하는 삶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가게 되고, 끊임없이 욕망의 목마름으로 인해 자족하는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군상.


새집을 가만히 보니 지붕만 없는 것이 아니라 세간살이(?)도 없고, 모아둔 먹이도 없다. 그러나 그들이 굶주린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없다.

필요에 의해서 짓지만 잠시 소유할 뿐 언제라도 그 곳을 미련없이 떠날 수 있기에 새는 하늘을 자유로이 날아가는 자유를 신께로부터 선물로 받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끝없는 집착과 자신만을 위한 소비. 그것을 통해서 진정 우리는 인간다워지는 것인가? 오히려 하나하나 놓아버림으로써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가난을 자청함으로써 오히려 풍부하게 사는 비결을 누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항상' 행복한 것은 아니지만 '매일 매일' 행복하다. 덜 소유하면서 존재하는 생활이 자신의 삶에 배어있기에 자족하는 삶의 행복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성서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하는 말씀이 있다.

근심과 걱정에 빠져 살아가는 이들에게 예수께서는 그들의 근심과 염려의 근원이 자신만을 위한 끊임없는 소유욕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보시고 그런 욕심을 버리면 새들보다도 더 넉넉한 삶, 자유로운 삶을 살아갈 것이라고 하셨다.

'무조건 채워주겠다'가 아니라 '염려와 근심'을 버릴 때, 즉 소유하려는 삶으로부터 자유로울 때 자신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 삶인지, 행복한 삶인지 저절로 알게 된다는 것이니 비움으로써 풍성해 지는 비결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a 섭지코지의 새벽-동트기 전 바다색깔은 마치 푸른물감이 화선지에 은은하게 퍼진 듯하다.

섭지코지의 새벽-동트기 전 바다색깔은 마치 푸른물감이 화선지에 은은하게 퍼진 듯하다. ⓒ 김민수

그리고 텅빈 바닷가, 동트기 전 푸른 물감이 화선지를 서서히 물들여 가는 듯한 고즈넉한 풍경을 바라본다. 비어 있는 것 같으면서도 풍성한 바다가 가장 잔잔할 때는 해뜨기 전과 폭풍 전이다.

무언가 큰 변화가 시작될 즈음에 가장 고요한 바다. 바다가 흔들리면 저 깊은 심연의 바다도 어김없이 흔들릴 터이지만 그 흔들림이 없었다면 지금의 바다는 없었을 것이다.

흔들림이 없었다면 아주 조금씩 썩어가다 마침내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의 냄새를 풍기며 자신들이 품고 있던 생명들을 토해냈을 것이다. 흔들림, 그것은 원하지 않는 '고난'같은 것, 그러나 그것으로 인해 생명이 생명다워 졌다는 것을 바다는 알 것이다.

바다도 한군데 머물지 않는다. 끊임없이 포말로 부서지기도 하고, 작은 물방울이 되어 미지의 세계로 끝없이 나아가다가 자신의 근원이었던 고향에 돌아가기도 하고, 어느 날에는 바다에서는 도저히 맛 볼 수 없었던 단물의 맛을 실컷 맛보기도 할 것이다.

나는 내 삶을 붙잡고 늘어지며 거치적거리게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가을이 가기 전에 생각해 보려고 한다. 수많은 수고와 삶의 흔적이 그 곳에 있건만 머물지 않고 어디론가 떠난 버린 새를 보며, 가장 큰 변화의 시간을 맞이하기 위해 고즈넉함을 품고 있는 바다를 보면서.

그것은 마치 겨울이 오기 전에 왜 나무는 훌훌 벗어버리고 알몸으로 겨울을 나는지, 아무 것도 모아들이지 않으면서도 새들은 어찌 그리도 풍성하게, 자유롭게 사는지, 바다는 어째서 모든 것을 품고도 소박함을 잃지 않을 수 있는 것인지 귀를 기울여 보는 것과도 같은 행위일 것이다.

a 지난 밤에 나갔던 배인지, 아니면 이른 새벽 나갔다 돌아오는 배일런지.

지난 밤에 나갔던 배인지, 아니면 이른 새벽 나갔다 돌아오는 배일런지. ⓒ 김민수

밤바다를 수놓았던 별빛을 담고 먼 바다에 있었던 그 배가 돌아오는 것일까? 잔잔한 바다 위에 곧 없어질 흔적을 남기며 힘차게 항구로 돌아온다.

없어질 아주 잠시의 흔적. 어쩌면 그것을 위해서 그렇게 아둥바둥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굶어 죽어도 그 없어질 잠시의 흔적을 위해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우리 인간들인지 생각해 본다. 계절의 변화 앞에 서있는 요즘 겨울을 준비하는 자연들을 보며 느끼며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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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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