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248

말똥 치우는 늙은 개 (3)

등록 2003.11.07 14:02수정 2003.11.07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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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주, 무림의 깡패 구부시가 월빙보의 금광을 집어삼키려 대대적인 침공을 감행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도와드릴 형편이 못되어 보고만 있었던 것이 너무도 부끄럽소이다."
"무슨 말씀을…! 마음 써준 것만으로도 고마울 따름이외다."

"오는 동안 보주께서 두 아들을 잃었다는 소식을 들었소이다. 얼마나 상심이 크십니까? 아부가문을 대표하여 심심한 조의를 표하는 바이외다."
"휴우…! 고맙소이다. 그나저나 먼길 오시느라 애 쓰셨소이다. 그리고 본 보주도 아부가문의 소식을 듣고도 직접 도움을 줄 수 없었던 것이 참으로 안타까웠소이다. 참으로 미안하외다."


"무슨 말씀을…! 보주께서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셨기에 간신히 피신할 수 있어 지금껏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소이다. 늦게나마 감사 드리는 바이외다."
"자, 여기서 이렇게 있을 것이 아니라 안으로 듭시다."
"그러지요."

권좌에서 밀려난 뒤 끝없는 추격을 당하고 있는 흑염수사 후세인은 몹시도 초췌한 모습이었다. 늘 정갈하게 다듬어져 있던 흑염은 얼마나 손을 보지 않았는지 더부룩해 있었다. 뿐만 아니라 걸치고 있는 의복 곳곳에도 흙먼지가 묻어 있었다.

현 상황이 얼마나 절망적인지를 가히 짐작할만한 모습이었다.

그것은 아부가문의 문주 금금존자 오사마라 하여 예외는 아니었다. 무림천자성의 쌍둥이 누각인 세무각을 폭파하도록 지시하였다는 죄목으로 그의 목에는 은자 오십만 냥이 걸려있다.

그 정도 금액이면 웬만한 사람 백 명의 인생을 역전시키고도 남을 거금이다. 따라서 혹시 있을지 모를 고발자의 눈초리를 피해 끊임없이 도주하여야 하는 처지인지라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쉬지 못해 그런지 피골(皮骨)이 상접(相接)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걸치고 있는 의복도 상당히 남루해 보였다. 그 역시 의복을 갈아입을 여유조차 없이 쫓기는 신세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파괴되어 마땅히 대접할 것이 없어 미안하외다. 여기도 안전하지 않아 내일쯤 거처를 옮길 생각이었소이다."


"흐음! 너무 심려치 마시오. 어찌 보주의 처지를 짐작 못 하겠소이까? 그나저나 힘드셨을 터인데 어찌 지내셨소이까?"

오사마는 자신과 같은 처지가 되어 버린 후세인의 초췌한 모습을 보며 동병상련(同病相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 역시 무림천자성의 공격 때 아들 가운데 하나를 잃었다. 하여 진심으로 애도한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흑염수사 역시 오사마의 처지를 이해하는지라 마음이 답답하기만 하였다. 하여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힘들게 입을 열었다.

"휴우…! 꼴이 말이 아니게 되었소이다. 아이들이 상황을 살펴본다고 나갔다가 그만… 밀고자들에 의하여…"
"으으음…!"

후세인은 후사이와 후다이를 끔찍하게도 아꼈다. 그런 아들들이 한날 한시에 죽어버렸으니 월빙보의 보주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아비로서 어찌 속이 편하겠는가?

그런 마음을 능히 짐작하기에 어떤 말로 위로해야 할지 몰라 잠시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놈이 노렸던 금광들은 잘 폐쇄하시었소이까?"
"금광을 노리다니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셨소?"
"무슨 말인지 도통…?"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후세인을 본 오사마는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그럼 본 문주가 보낸 서찰을 못 받아 보셨단 말씀이시오?"
"서찰이라니요? 무슨 서찰…? 최근 일 년 사이엔 아부가문으로부터 온 서찰은 받은 적이 없소이다."

"으으음! 그렇다면…! 어쩐지…! 혈월(血月)은 안에 들라!"
"속하, 대령하였사옵니다."

오사마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시뻘건 그림자 하나가 부복을 하였다. 어떤 신법으로 들어섰는지조차 알기 힘들 정도로 고절한 신법의 소유자임이 분명한 자였다.

"문주의 비상 대권으로 명한다. 지금 즉시 한월(寒月)을 생포해 끌고 와라. 저항하면 죽여도 좋다. 결과는 즉각 보고하도록!"
"존명!"

명이 떨어짐과 동시에 혈월이라 불렸던 시뻘건 그림자는 나타날 때처럼 홀연히 사라졌다.

남과 대화 도중에 수하를 불러 명을 내리는 것은 대단한 실례이다. 아무리 세력의 태반을 잃었다고는 하지만 후세인은 일문의 장문인이다. 그리고 이곳은 그의 권역(權域)이다.

남의 집에 와서 그 주인과 이야기하다 자신의 수하를 불러 명을 내린다는 것은 예법상 도저히 있어서는 안될 일일 것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왜 그런지를 설명하여야 하나 오사마는 심각한 표정만 짓고 있을 뿐이었다. 후세인으로서는 어이가 없는 상황이었지만 심각한 표정으로 미루어 뭔가 급박한 상황이 발생되었다 판단하고 지켜보고만 있었다.

"이거 실례를 범하였소이다. 본문에 급한 상황이 생겨서…"
"괜찮소이다. 괜찮으니 괘념치 마시오."

왜 이랬는지 궁금하였지만 남의 문파 일이라고 하니 물어볼 수도 없었다. 그것이 무림의 법도이기 때문이다.

오사마는 아부가문을 폐허로 만든 무림천자성이 월빙보를 공격하겠다며 핍박하기 시작할 때 밀사를 통해 한 통의 서찰을 보낸 바 있다. 물론 수취인은 월빙보주인 흑염수사 후세인이었다.

무림천자성에 의하여 같은 마도 문파인 월빙보가 궤멸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서였고, 자신이 어려울 때 도움의 손길을 베풀었던 흑염수사에게 보은하기 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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