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249

말똥 치우는 늙은 개 (4)

등록 2003.11.10 14:50수정 2003.11.10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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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빙보주 흑염수사 후세인 대협 친전(親展)!

먼저 본문에 베풀어준 보주의 은덕에 깊은 감사를 드리며 몇 가지 급히 전할 말이 있어 밀사를 보내는 바이외다.


전서구(傳書鳩)가 더 편할 것이나 교활한 무림천자성 놈들이 해동청(海東靑: 송골매)을 풀어놓아 여의치 않소이다.

각설하고, 본인에겐 무림의 깡패인 구부시가 보주와 본문과의 관계를 빌미로 월빙보를 치려하는 현 상황이 몹시 곤혹기만 하외다. 허나, 이는 본문이 원해서 발생된 일이 아니라 음모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알아 주셨으면 하외다.

본인이 접한 정보에 의하면 세무각(世貿閣)이 무너져 내리기 전부터 무림천자성은 월빙보의 금광을 차지할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고 하더이다. 그러면 훨씬 막강해질 것이기 때문이외다.

그동안은 공격을 감행할 만한 명분이 없어 입맛만 다시던 중이었다 하오. 아마 마음 같아서는 월빙보보다도 더 많은 금광을 보유한 청성파도 치고 싶었을 것이오. 허나 같은 정파무림에 속하기에 그러지 못하는 것이었을 것이외다.

어쨌거나 그런 상황에서 세무각이 무너지자 본문을 먼저 타격하였고, 그 사건을 빌미로 월빙보 침공의 명분을 꾸민 것이오.


보주!

누누이 말씀드렸지만 본문과 세무각 폭파 사건과는 아무런 연관도 없소이다. 본문을 먼저 공격한 것은 아마도 귀보(貴堡)를 치기 전 전력 탐색을 위한 방편이었던 싶소이다.


< 중략 >

조만간 대대적인 침공이 있을 것이나 보주께서는 정면 대응을 자제하는 것이 좋을 듯 하외다. 본문이 겪어본 바에 의하면 무림천자성의 힘은 소문보다도 더 강했소이다.

미리굴이라는 천혜의 험지(險地)가 없었다면 꼼짝 없이 당할 뻔하였소이다. 불행히도 월빙보에는 미리굴과 같은 곳이 없으니 모든 힘을 어둠 속에 감춰두었다가 적절한 기회에 암습하는 방식을 채택하시는 것이 현명할 듯 하외다.

어쨌거나 구부시가 원하는 것이 금광이라는 것이 확실하니 여차하면 금광을 폭파해버려 놈으로 하여금 헛물켜게 하는 것이 좋을 듯 하외다. 놈이 금광까지 차지하면 맹수에게 날개를 달아준 꼴이 되어 점점 더 날뛰게 될 것이기 때문이외다.
그리고…

< 중략 >

자세한 내용은 본문의 형편이 나아지는 대로 직접 방문하여 말씀드릴 터이니 만반의 준비를 하심이 좋을 듯하외다.

아부가문 문주 금금존자 오사마 배상(拜上)


서찰을 가져갔던 밀사는 무사히 전달했다고 보고하였다. 따라서 월빙보가 순순히 무장 해제를 하지 않을 텐데 이상하게도 무림천자성의 협박에 굴복하는 듯하여 이상하다 생각하였다.

그러면서도 머리 좋은 후세인에게 뭔가 복안이 있어 그러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대로 내버려두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월빙보는 무기력하게 무너져 버렸다.

뭔가 준비해 놓은 것이 있을 것이라 믿었던 오사마는 허탈한 기분까지 들었다. 자신의 서찰을 받았다면 적어도 이런 지경에 처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월빙보의 궤멸로 드러났다. 하여 오사마는 뭔가 앞뒤가 맞지 않다는 생각에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안전하다 생각하였던 은신처가 발각되는 바람에 끊임 없는 추격을 당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풍찬노숙(風餐露宿)을 밥 먹듯 하며 도주하는 동안엔 어떻게 은신처를 알아냈을까 궁금했었는데 이제야 모든 것이 환해졌다.

서찰을 전하라고 보냈던 밀사 한월은 허위 보고를 하였다. 이는 그가 무림천자성에서 보낸 간세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녕 그것이 사실이라면 서찰은 전달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구부시의 수중에 들어 있을 것이다.

예상이 사실이라면 지금껏 아부가문의 재건을 위해 세워둔 모든 복안을 전면 재조정하는 불상사가 일어나야 마땅하다. 그렇기에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던 것이다.

세인들은 전혀 모르는 일이지만 아부가문의 문주가 되기 전 오사마는 무림천자성과 손잡고 일을 한 적이 있었다.

그 일은 마도 문파 가운데에서도 이단(異端)으로 확인된 어떤 문파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는 것이었다.

무림천자성이 직접하지 않고 오사마에게 의뢰한 것은 마도인들의 습성을 파악하지 못하여 습득한 정보가 정확한 것인지 여부를 알지 못하기에 취한 조치였다.

워낙 위험한 일이었기에 그 일로 오사마는 제법 많은 액수의 은자를 거머쥘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무림천자성 순찰원에서 자신을 표적으로 한 암살자들을 보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럴 때 사람들은 토사구팽(兎死狗烹)이라는 말을 한다. 이 말은 사기(史記) 회음자열전(淮陰侯列傳)에 나오는 말이다.

항우(項羽)를 멸하고 한(漢) 나라의 고조(高祖)가 된 유방(劉邦)은 소하(蕭何), 장량(張良)과 더불어 한나라 창업 삼걸(三傑)의 한 사람인 한신(韓信)을 초왕(楚王)에 책봉했다.

그런데 이듬해, 항우의 맹장(猛將)이었던 종리매(鍾離昧)가 한신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 고조는 지난날 그에게 고전한 악몽이 되살아나 크게 노했다.

그래서 당장 압송하라고 명했으나 종리매와 오랜 친구인 한신은 고조의 명령을 어기고 오히려 그를 숨겨 주었다.

이때 고조에게 한신이 반역을 꿈꾸고 있다는 상소가 올라왔다. 이에 진노한 고조는 참모 진평(陳平)의 헌책(獻策)에 따라 제후들에게 이렇게 명했다.

"제후들은 초(楚) 땅의 진(陳: 하남성 내)에서 대기하다가 운몽호(雲夢湖)로 유행(遊行)하는 짐을 따르도록 하라."

한신을 진에서 포박하던지, 나오지 않으면 제후(諸侯)의 군사로 주살(誅殺)할 계획이었던 것이다.

고조의 명을 받자 한신은 예삿일이 아님을 직감했다.

그래서 아예 반기를 들까하고 생각해 보았지만 죄가 없는 이상 별 일 없을 것으로 믿고 순순히 고조를 배알하기로 했다.

그러나 불안이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교활한 가신(家臣)이 한신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종리매의 목을 가져가시면 폐하께서 기뻐하실 것이옵니다."

한신이 이 이야기를 하자 종리매는 크게 노했다.

"고조가 초나라를 치지 않는 것은 자네 곁에 내가 있기 때문일세. 그런데도 내 목을 가지고 고조에게 가겠다면 당장 내 손으로 잘라 주지. 하지만 그땐 자네도 망한다는 걸 잊지 말게."

얼마 후, 종리매가 자결하자 한신은 그 목을 가지고 고조를 배알했다. 그러나 역적으로 몰려 포박 당하게 되었다.

"교활한 토끼를 사냥하고 나면 쓸모가 없어진 좋은 사냥개는 삶아 먹히고[교토사양구팽(狡兎死良狗烹)], 하늘 높이 나는 새를 다 잡으면 좋은 활은 곳간에 처박히며[고조진양궁장(高鳥盡良弓藏)], 적국을 쳐부수고 나면 지혜 있는 신하는 버림을 받는다고[적국파모신망(敵國破謀臣亡)] 하더니 한나라를 세우기 위해 분골쇄신(粉骨碎身)한 나를 죽이려 하시오?"

이 말을 들은 고조는 여러 제후들이 보고 있었기에 한신을 죽일 수 없었다. 그랬다가는 제후들이 다른 마음을 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한신은 회음후(淮陰侯)로 좌천되었고, 그의 주거는 도읍인 장안(長安)으로 제한당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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