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250

말똥 치우는 늙은 개 (5)

등록 2003.11.12 15:45수정 2003.11.12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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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해 주고도 팽(烹)당하게 생긴 오사마는 역용약으로 모습을 바꾼 뒤 사라졌다. 다음에 그가 나타난 곳은 상계(商界)였다.

평범한 상인의 모습을 한 그는 무림천자성에서 받은 은자를 불리고 불린 끝에 거부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이것으로 태동하던 아부가문을 지원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아예 아부가문의 문주가 되었고, 이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무림천자성의 자랑이었던 쌍둥이 누각 세무각이 처참하게 무너져 내리는 일대 사건이 벌어졌다.

얼마 후, 아부가문의 오사마가 원흉이라면서 대대적인 공세가 시작되었다. 무림천자성으로서는 없애고 싶은 인물과 문파을 없앰과 동시에 월빙보를 치기 위한 명분 축적이 되는 일이니 그야말로 일석이조(一石二鳥)인 셈이었다.

오사마로서는 마른 하늘에 날 벼락 같은 일이었다.

분명 세무각 같은 대형 건축물을 무너뜨려 무림천자성에 막대한 타격을 입힐 계획을 수립한 적은 있지만 실제로 폭파하라는 명을 내린 적은 결코 없기 때문이다.

혹시나 하여 강호에 파견하였던 모든 제자들에게 즉시 귀환하라는 명을 내렸다. 혹시 수하 가운데 누군가 저지른 일일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랬다면 마땅히 상을 내릴 만한 일이었기에 말을 하면 막대한 상금을 하사(下賜)하겠다고 했으나 어느 누구도 자신이 저질렀다고 하는 제자들은 없었다.

하여 대체 누가 저지른 일인지 궁금해 하던 차였다. 그러다가 월빙보가 아부가문을 물심양면으로 도왔기에 세무각 폭파 사건이 가능했다면서 월빙보를 응징하겠다고 나설 때가 되서야 정확한 속내를 알아차렸다.


무림천자성이 어떤 일을 처리할 때 어떤 수순을 밟아 처리하는지 그 속성을 잘 알고 있었기에 짐작 가능한 일이었다.

눈에 가시 같던 후세인을 제거함과 동시에 막대한 매장량을 지닌 금광들을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금광으로 따지면 월빙보보다는 청성파 쪽에 더 많은 금광이 있지만 같은 정파무림에 속하기에 내놓고 공격할 수 없어 차선책으로 택한 것이 바로 월빙보였던 것이다.

졸지에 기반의 태반을 잃은 오사마는 무림천자성이 더 강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복수할 길이 멀어지기 때문이다. 하여 금광을 차지하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흑염수사에게 서찰을 보냈던 것이다.

오사마가 한참 이맛살을 찌푸리고 있을 때 붉은 인영 하나가 그의 발 앞에 부복하며 입을 열었다.

"속하, 혈월 보고 드립니다."

"보고하라."

"속하, 문주께서 명하신 대로 한월을 생포하려 하였으나 워낙 극심하게 반항하는지라 할 수 없이 그의 수급을 베었사옵니다."

"으음…, 역시!"

"그의 품에 이것이 들어 있었습니다."

혈월이라는 사내가 바치는 것을 받아든 오사마는 낮은 침음성을 터뜨렸다. 설마 했던 한월이 무림천자성의 간세라는 것이 확인되었기 때문이었다.

손바닥에 쏙 들어갈 정도의 크기를 지닌 그것은 만년한철로 만든 것으로 전면에는 구름을 뚫고 오르는 검이 양각되어 있었고, 배면에는 순찰 삼백구호라는 글귀가 음각되어 있었다.

그것은 무림천자성 순찰원 소속의 신패였다.

오사마도 한때 이러한 신패를 지닌 적이 있었다. 다만 숫자 앞에 외(外)라는 글자 하나가 더 추가되어 있는 신패였다.

그것은 외부인사이면서 순찰원을 위해 일하는 사람에게 지급되는 신패이다. 그렇기에 한눈에 신패를 알아본 것이다.

"문주! 무슨 일인지 물어도 되겠소이까?"

지금껏 침묵으로 지켜보던 후세인이 궁금하다는 듯 묻자 오사마는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쉰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

"보주! 본문에 쥐새끼가 있었소이다."

"쥐새끼라니…? 무슨 말씀이시오?"

"간세인 줄도 모르고 놈에게 서찰을 맡겼으니… 본인의 불찰을 부디 용서하여 주시길 바라외다."

"……?"

"밀사로 보냈던 한월이라는 놈이 무림천자성의 간세…"

오사마의 설명이 이어지는 동안 후세인의 눈에서는 형형한 안광이 뻗쳐 나오고 있었다. 월빙보가 왜 무림천자성의 공격 목표가 되었으며, 왜 모든 일에 순순히 협조했는데도 가공할 공격을 퍼부었는지를 비로소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이날 오사마와 후세인은 흉금을 털어놓고 무언가를 숙의하였다. 물론 아부가문과 월빙보를 궤멸시키다시피 한 무림천자성에 공동으로 대항할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었다.

다음 날, 일단의 무리들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들은 뭔가 굳은 결심을 한 듯 하나같이 굳은 표정이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은 후세인과 오사마, 그리고 당사자들뿐일 것이다.

* * *

"어머, 이 공자님! 아니 당주님!"

"하하! 낭자, 정말 오랜만에 뵙소이다. 여전하신 모습을 뵈니 그 동안 강녕하셨던 모양입니다."

"예? 아, 예에…"

오늘은 아흐레에 한번 소화타가 쉬는 날이다. 하여 곱게 단장을 하고 기다리다 가볍게 대문 두들기는 소리가 들리자 한걸음에 달려나와 문을 열었는데 기다리던 장일정 대신 이회옥이 서 있자 호옥접은 화들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본 이회옥의 마지막 모습은 굵은 포승줄로 묶인 채 순찰원 고수들에 의하여 호송되어 가던 모습이다.

그때는 배루난과의 혈전 탓에 생겼던 상처는 모두 치유된 상태였다. 따라서 일찌감치 의성장을 떠났다면 그런 일을 겪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말만 믿고 이마에 새겨진 흉측한 흔적을 지우기 위하여 소화타를 기다리고 있던 때였다.

그런데 흉터를 지우기는커녕 소화타의 밀고로 생포되어 간것이다. 원망을 할 법한 상황이었지만 이회옥은 그동안 고마웠다는 듯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너무 미안해 하지 말라는 의도에서였지만 호옥접은 그 미소 때문에 여러 날 전전반측(輾轉反側: 잠 못 이뤄 이러 저리 뒤척이는 모습)을 되풀이하여야 하였다.

구원을 요청한 사람을 벼랑 끝으로 밀어버린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던 때문이다. 그래서 이회옥이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알아보려 여기저기 다리를 놓았던 것이다.

참수형에 처해지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서였다. 혹시라도 그렇게 되면 두고두고 회한으로 남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사면복권에 이어 당주로 승차까지 하였다는 소식을 듣고는 놀란 가슴 쓸어 내리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도 장일정의 밀고(密告)에 몹시 미안한 감정을 느꼈다. 하지만 만날 수 없었기에 그런 마음만 품고 있었을 뿐이다.

언젠가 만나기만 하면 장일정을 대신하여 사과할 요량이었다. 하지만 그 시기가 언제일지는 짐작할 수 없었다.

무림천자성의 당주는 결코 한가한 직분이 아니며, 만나고 싶다고 해서 언제든 만날 수 있는 그런 자리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느닷없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서 있으니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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