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찹쌀떡~ 메밀묵~ 시끄러워 죄송합니다"

[새벽을 여는 사람들 47] '찹쌀떡 장사' 김석진씨

등록 2003.11.10 11:20수정 2003.11.11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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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찹∼쌀∼∼떡∼"
"메∼밀∼∼묵∼"


강원도 영월이 고향인 김석진(33)씨는 두 개의 직업으로 하루를 살아간다. 낮에는 유통업에 관련된 본업을 하고 시간이 남는 늦은 밤과 새벽엔 찹쌀떡 장사를 하며 빠듯한 24시간을 보낸다.

걸쭉한 그의 음성이 동네를 깨우자 경쟁이라도 하듯 곳곳에서 개짖는 소리가 터져 나온다. 얼굴이 새하얀 도시 아이들은 신기한 듯 창문을 열고 몰래 훔쳐 보다 그와 눈이 마주칠세라 이내 커튼 뒤로 숨어 버린다.

조금 짓궂은 아이들은 김씨를 졸졸 따라다니며 그의 소리에 장단을 맞추고 어느 은밀한 곳 연인들은 화들짝 놀라며 멋쩍은 웃음을 보낸다.

최대한 길고 크게! 장사의 외침을 그는 "소리를 친다"고 표현한다. 그가 치는 낯선 소리에 놀란 개들이 짖자 김씨는 "시끄럽게 해서 죄송합니다"라고 속삭이며 지나간다.

"저에겐 생계수단이지만 어찌 보면 참 미안하죠. … 모두들 내일이 있는 사람들인데 행여 저 때문에 밤잠을 설치는 건 아닌지…."


그는 '적당한' 속도로 걸어야 한다. 그가 치는 소리에 소비자가 고민을 하고 결정을 하기까지는 적잖은 '시간'이 필요하다. 동시에 곤히 잠든 사람을 깨우지 않을 만큼의 '속도' 또한 필요하다.

고민하는 소비자를 기다리는 '느림'과 잠든 이를 깨우지 않는 '빠름'을 계산해 걷는 그의 속도가 바로 '적당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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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장사가 잘 되는 곳을 김씨는 '텃밭'이라 부른다. 겨울이 깊어가기 전에 '텃밭'을 발굴해야 하는 게 요즘 그의 큰 과제 중 하나이다. 장사한지 3주가 돼 가는데도 좀처럼 '텃밭'이 발견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밤새 오토바이로 이동하며 여러 동네를 찾아다녔지만 오늘도 텃밭은 발견되지 않았다.

10-15Kg정도의 상자를 왼쪽 어깨에 메고 쉴새 없이 소리를 친다. 김씨는 "이제 슬슬 목소리가 안나오려 하네요, 아마 목소리가 터질 단계인가 봐요"라며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목소리가 잠겨 도무지 안나오는 단계를 거치면 현재보다 더 쩌렁쩌렁한 목소리를 얻을 수 있다는 게 그의 변.

"많이 걸어서 적당한 운동이 되는 것 같아요. 게다가 밤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술자리와 담배를 피할 수 있어 건강까지 챙길 수 있고. 장사를 하면서 사람 대하는 방법도 배워요. 덩달아 남들이 잠자는 시간에 돈까지 벌 수 있으니 더 좋죠!(웃음)."

날씨가 궂은 날이 곧 쉬는 날이라고 말하는 김씨는 "개인 시간이 없는 게 그저 아쉬울 뿐"이라며 "장사를 통해 오히려 얻는 것이 더 많다"고 너스레를 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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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묵은 참기름, 김, 깨를 넣고 김치를 쫑쫑 썰어 비벼 먹으면 더 맛있어요. 거기에 소주 한 잔 걸치면 또 그 맛이 기가 막히죠!"

"찹쌀떡은 남았다고 버리지 마세요. 냉장고에 얼려 두었다 먹으면 토끼가 쿵덕 쿵덕 찧는 찰떡 아이스 맛이 난답니다!"

맛있게 먹는 법까지 일일이 설명해주는 덕에 소비자가 묵과 떡 양쪽을 흘깃거리며 저울질한다. 서로 옥신각신하다 원래 계획을 고집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결국 김씨의 환한 미소에 홀려 두 개를 사가는 사람도 있다.

"맛은 걱정 마세요! 제가 장사 한두 번 하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도 계속 다닐 건데 맛 없으면 못 팔죠! 일단 한 번 드셔보세요. 그런 다음에 말씀하세요!"

그의 활동 반경이 넓어지면서 준비된 떡과 묵이 하나 둘 팔리기 시작한다. 가벼워진 어깨만큼이나 굵고 무거웠던 그의 목소리가 경쾌해진다. 뒤에 눈이라도 달렸을까. 크게 소리를 치는데 열중하다가도 뒤늦게 저만치 들리는 그를 찾는 희미한 목소리에 급하게 뛰어간다.

"아휴, 못 들어서 죄송합니다!"

걸쭉하고 건강한 그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배가 부를 지경이다. 여전히 밝은 웃음을 선사하며 준비된 말을 하는 그의 얼굴 한켠엔 어느덧 소리 없는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한다. 김씨의 초보시절. 남이 없는 곳에 숨어 작은 목소리로 "찹쌀떡"을 외치며 흘렸던 '식은땀'이 아닌 당당한 땀방울이 그에게 힘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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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무언가 한 가지 꿈을 정했으면 그 목표의 달인이 되길 바래요. 젊은 시절 직장을 쉬이 옮겨 다니며 허황된 꿈을 꿨어요. 좀더 쉽게 소위 한탕으로 돈을 벌고 싶어 주식 등으로 많은 시간과 돈을 낭비했어요.

덧없는 꿈을 좇았죠. 한때는 다단계를 하기도 했는데, 다단계를 통해 남을 이용한 것 같아 그 점이 제 인생에 있어 가장 후회돼요. 제가 다시 20대로 돌아간다면 무언가 확실한 계획과 꿈을 가지고 한 가지에만 몰두하고 싶어요."

20대의 방황을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 김씨는 그 어느 때보다도 땀 흘려 모은 돈의 소중함을 배우며 성실히 살고 있다. "지금 열심히 사는 것으로 그 때 엎질러진 물을 채울 수 있지 않을까요"라는 자신의 물음에 해답을 제시하며.

두 개의 직업을 가지면서 김씨 마음 한 쪽엔 지울 수 없는 그리움이 생기기 시작했다. 쉴 틈 없는 일정으로 홀로 계신 어머니를 쉬이 찾아 뵐 수 없음이 그를 씁쓸하게 한다. 행여 어머니가 걱정 하실까 "바쁜 일정으로 야간 근무를 하고 있다"고 거짓말을 한 그는 아버지 없이 홀로 있는 어머니가 자꾸 눈에 밟히나보다. 농사일로 오형제를 키운 아버지는 김씨가 고3 때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드디어 자식 농사를 마쳐 이제 막 살맛 나겠구나 싶을 때 돌아가셨어요. 호강 한번 못 해보고 평생 고생만 하다 그렇게 가고 말았죠. 가끔 온 가족이 모여 식사 할 때 아버지가 생각나요. 언젠가 남들처럼 꼭 어머니와 함께 여행을 보내드리고 싶었는데. 지금은 어머니를 홀로 여행 보내 드리기도 그렇고 또 형편상 우리가 어머니와 같이 갈 수도 없어 참 안타깝네요."

오랜 시절부터 그의 꿈은 '사업가'였다. 어제도 오늘도 그는 사업가가 되기 위해 지루한 방황을 계속 해오고 있다. 그럼에도 김씨의 얼굴이 그리 밝은 건 그를 한없이 보듬어 주는 가족이 있기에 가능한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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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김씨가 영업을 하는 동안 한 손에 꼭 쥐고 있던 핸드폰이 십분 간격으로 울렸다. 사귀는 사람인가 싶어 귀동냥을 해 보니 같이 장사를 하는 친동생 김무진(30)씨와의 통화였다. 형제는 서로의 위치를 확인하고 판매 실적을 챙기며 격려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오늘은 최초로 동생 무진씨가 형 석진씨의 매출을 앞지른 날이다. 그 비결은 다름 아닌 가족 공세. 무진씨의 아내와 장모님이 그의 매출을 도운 것이다.

형답게 "많이 팔았네!"라고 격려하는 석진씨지만 왠지 동생이 더 형 같아(?) 보이는 건 왜일까. 어머니가 석진씨에게 바라는 가장 큰 효도가 '장가'이듯 형을 앞지르고 장가를 간 덕분인지 형 같은 동생 무진씨 또한 홀로인 형이 연신 마음에 걸리는 눈치이다.

석진씨는 "그게 어디 내 마음대로 되나요?, 내 몸 하나도 먹고살기 이리 바쁜데…" 라며 쓴웃음을 짓는다.

무진씨와 석진씨는 이미 중학교 시절 용돈을 벌기 위해 찹쌀떡 장사 경력을 지닌 형제이다. 까까머리 시절. 하나에 25원하던 찹쌀떡을 팔았던 그들은 오히려 뱃속으로 들어갔던 게 더 많았다며 짓궂은 웃음을 교환한다. 커피 한 잔에 담소를 나누는 것도 잠깐. 서로의 고달픔을 뒤로 다시 또 '텃밭' 찾기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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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한편, 도무지 화내는 법을 모를 것 같은 웃음이 가시지 않는 석진씨의 얼굴에도 '화'가 번졌던 날이 있었다.

'야! 너 일루와봐!' 나이도 비슷한 한 남성이 술에 취해 그를 보고 처음 던진 말이다. 아파트에서 장사를 하는 중 시끄럽다는 민원이 들어와 경비원에게 정중히 사과하며 막 길을 나서던 찰라, 난생 처음 보는 이에게 들었던 그 한 마디는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믿었던 김석진씨에게 회의감을 맛보게 했다.

"제가 아무리 떳떳하고 당당해도 외부의 시선은 꼭 그렇지 만은 않은 것 같아요. 제가 남의 돈을 훔치는 것도 아니고 피해를 주거나 또 나쁜 짓을 하는 것도 아닌데. 비록 어려워도 열심히 살려고 정정당당히 남들 자는 시간에 부지런히 일해 돈 버는 건데. …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도 모르느냐? 내가 찹쌀떡을 판다고 사람을 무시하는 거냐? 라며 같이 싸웠죠. 그러더니 나중엔 미안하다고 말하더라구요."

김석진씨에게 도시 생활은 적막하고 냉정했다. 생활이 점점 어려워져 두 개의 직업을 가지게 되면서 자연스레 친구들과의 연락도 끊겼다. 김씨는 작게 한숨을 쉬며 "연락하면 오히려 친구들이 더 부담스러워 할 것 같아 이상하게 못하겠네요"라며 말끝을 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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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몇 개의 가파른 비탈길을 오르고 황량한 도로를 넘어왔을까. 잔기침이 잦아지는 김씨의 쉰 목소리가 점점 가라앉기 시작한다. 여섯 시간을 걸으며 그가 판 수량은 찹쌀떡 5개와 묵 1개이다.

가로등만 빛나는 새벽 2시. 불빛의 흔적이 가물거리는 거리를 뒤로 그 또한 조심스런 발걸음으로 장사를 마무리 한다. 가까운 미래. 그의 이름을 내건 사업을 위해 기꺼이 단잠과 맞바꾼 그의 하루가 저물고 있다.

물질적인 것보다도 자주 찾아 뵙는 게 효의 으뜸이라고 생각하는 김씨는 잘 알면서도 행동으론 옮겨지지 않는다며 마지막까지도 어머니에 대한 애틋함을 감추지 못한다. 자신이 사는 방식으로 '어머님께 보답 할 수 있는가?'라는 자문에 해답을 찾으며.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는 것 같아요. 그렇지 않나요?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올바르게 사는 모습 보여드리고 싶어요. 열심히 살다보면, 그렇게 지내다 보면 해답이 나오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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