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을 건 역시 서울기동대원 여러분밖에.."

서울경찰청 기동단장의 '9일 노동자대회 치하문' 논란

등록 2003.11.10 12:14수정 2003.11.12 10:54
0
원고료로 응원
9일 오후 6시경 서울시청 뒷골목에서 경찰에 포위당해 항복의 표시로 두손을 들고 있는 노동자들을 경찰이 연행하고 있다.
9일 오후 6시경 서울시청 뒷골목에서 경찰에 포위당해 항복의 표시로 두손을 들고 있는 노동자들을 경찰이 연행하고 있다.오마이뉴스 권우성
9일 시청앞에서 열린 전국 노동자대회를 강제진압한 뒤 곧이어 서울지방경찰청 제1기동대 홈페이지(mprfirst.go.kr)에 올라온 기동단장의 '치하문'을 둘러싸고 논란이 예상된다.

특히 이 '치하문'에는 이날 시위 진압과정에서 부상자와 연행자가 속출했는 데도 "큰 불상사 없이 끝난 것을 치하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 어이없는 사태인식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관련
기사
- [현장중계 - 전국노동자대회] 종로거리 ' 불바다 ' 되다



9일 밤 서울지방경찰청 제1기동대 홈페이지 첫화면에 실린 '강영규 기동단장님의 치하문(11월 9일 전국노동자 대회를 마치고)'의 요지는 노동자집회를 "진압"한 것에 대해 대원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앞으로 줄줄이 있을 이라크파병 국민행동, 민주노총, 한농연, 민중연대 등의 집회에서도 "틈새훈련" 등을 통해 "기량향상"에 힘써줄 것을 당부하는 것이 골자이다.

특히 강 기동단장(경무관)은 "믿을 건 역시 서울기동대원 여러분밖에 없다는 생각에 무척 자랑스럽고 뿌듯하다, 꾸준한 훈련을 통해 진압능력을 향상시켜 주길 바란다"고 밝혀 시민사회단체들로부터 강경진압을 부추긴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또한 강 단장은 글에서 "시민단체 홈페이지나 인터넷에서 접할 수 있는 동영상, 사진들을 보면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폭력을 행사하고 과잉진압하는 것으로 오해를 불러일으킬 내용이 많다"며 "각대 및 중대 채증요원들은 채증활동에 보다 더 신경을 써야만 한다"고 주문했다.

사법처리를 위해 집회 참가자들의 얼굴이나 현장을 사진으로 찍는 경찰의 채증활동은 집회현장에서 시위대와의 불필요한 마찰을 증폭시키는 대표적인 사례다.


노동자대회가 끝나는 시각에 맞춰 어제밤 9시 40분경, 서울시경 제1기동단 홈페이지에는 강영규 기동단장의 치하문(공지사항 맨위)이 게재됐다.
노동자대회가 끝나는 시각에 맞춰 어제밤 9시 40분경, 서울시경 제1기동단 홈페이지에는 강영규 기동단장의 치하문(공지사항 맨위)이 게재됐다.오마이뉴스 박형숙
민주노총 기관지인 <노동과 세계> 인터넷판은 10일자 기사에서 강영규 기동단장의 발언을 '망언'으로 규정했다. 이 기사는 "강 기동단장은 또 수많은 노조원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어 응급실로 호송됐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경력 일부가 부상을 당하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하기도 했지만…전반적으로 큰 충돌과 불상사 없이 무사히 끝이 났다고 생각한다'며 어이없는 사태인식을 드러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의 최세진 정보통신 부장은 "중상자만도 56명에 달하고 또 부상자중 90%가 머리를 다쳤다, 이 말은 진압의 목적이 해산이나 체포가 아니라 넘어지거나 굴복한 시위대를 보복, 가격했다는 것을 방증한다"라고 성토했다.


이와관련 여성단체연합의 김기선미 정책부장은 "도저히 참여정부에서 나온 말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군사정권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단정했다. 이어 김 부장은 "궁지에 몰린 노동자들을 받아주는 성숙함을 보여야 할 정부가 그것을 진압하려한다면 오히려 국민을 더욱 위협적인 상황으로 모는 것"이라며 "관련자의 엄중문책"을 촉구했다.

인권운동사랑방의 이주영 상임활동가는 "경찰의 진압태도가 갈수록 격해지고 있다는 걸 피부로 느낀다"며 "최근 평화시위인 파병반대 집회에서도 이런 현상은 경험했다"고 말했다.

현재 인권운동사랑방과 다산인권센터 등 인권단체들은 "특히 과격성이 심한 1001부대와 1003부대를 상대로 공동대응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경찰측의 반론을 듣기 위해 10일 낮 '치하문'을 쓴 강영규 단장과 전화통화를 시도했으나 강 단장측이 응하지 않아 반론을 듣지 못했다.

다음은 강영규 경무단장이 쓴 치하문의 전문이다.

11월 9일 전국노동자 대회를 마치고...

사랑하는 서울경찰청 기동대 직원 및 대원 여러분!

크고 작은 상황대비, 방범근무, 시설경비 등 어려운 여건 하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다해주고 있는 여러분의 노고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들도 피부로 느끼겠지만 금년 들어 각종 집회·시위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최근 분석결과 전년도에 비해 전국은 52.7%, 서울은 58.8%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종 상황에 효율적으로 대비하여 큰 불상사 없이 오늘에 이른 것은 무척 다행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모두가 기동대원 여러분의 고생과 노력, 그리고 땀방울 덕분이며 '믿을 건 역시 서울 기동대원 여러분 밖에 없다'는 생각에 무척 자랑스럽고 뿌듯하기도 합니다.

경제가 어려운 상황인데도 최근 시위양상을 보면 모두들 힘으로만 밀어붙이려 하고 극단적인 방법까지 동원하려는 태세입니다.

지난 11. 6. 민노총 파업·집회시 서울에서는 각목을 들고 나온 시위대를 초기에 진압하여 불법시위 용품을 회수하고 과격 폭력 시위 주동자를 검거하여 잘 마무리하였지만 전북 등 일부지방에서는 다수의 대원이 부상을 당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번 11. 9 '전국 노동자 대회'에서는 각목뿐만 아니라 쇠파이프, 화염병 까지 등장하는 극렬한 양상을 보여 상황 대비중이던 우리 경력 일부가 부상을 입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하기도 하였지만 극렬 행위자를 검거하고 불법 시위용품을 회수하는 등 전반적으로는 큰 충돌과 불상사 없이 무사히 끝이 났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진압능력 향상을 위해 평소 갈고 닦은 훈련 덕분에 가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신병들이 많고 방범 동원, 철야 근무 등으로 시간상 제약이 많아 어렵기는 하지만 앞으로도 꾸준히 틈새 훈련을 통해 여러분들의 기량을 향상시켜주기 바랍니다.

비록 귀찮고 힘들더라도 시민뿐만 아니라 기동대원 여러분 자신의 신체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훈련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임해야 되겠습니다.

사랑하는 서울 경찰 기동대 가족 여러분!

경찰은 사회각층의 다양한 목소리가 자유롭게 분출되고 참된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있도록 자율적인 집회·시위는 최대한 보장하고 과격·폭력 시위 등 불법행위에 대하여는 엄정하게 대처하면서 시민의 안전과 인권을 확고히 보장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러한 경찰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한 채 우리를 향해 돌을 던지고 각목을 휘두르는 시위대를 보면 여러분들의 고생이 피부로 느껴지며 마음이 아프고 안타깝기도 합니다.

시민단체 홈페이지나 인터넷에서 접할 수 있는 동영상과 사진들을 보면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폭력을 행사하고 과잉 진압하는 것으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장면을 쉽게 접할 수가 있습니다.

현장 상황을 객관적이고 균형된 시각으로 평가할 수 있도록 하고 불법 폭력시위 행위자에 대해 엄정한 사법처리를 하기 위해서는 채증활동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각대 및 중대 채증 요원들은 보다 더 신경을 써야만 하겠습니다.

앞으로 민주노총, 전교조, 전농연, 민중연대, 이라크 파병반대국민행동 등이 주최하는 대형 집회가 연말까지 계속 이어질 예정입니다.

비록 현재 상황이 어렵고 힘들더라도 많은 국민들이 우리를 믿고 성원을 보내주고 있으며 우리의 노력과 희생이 정당한 평가와 지지를 받고 있다는 자부심과 함께 책임감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또한 시위대와 우리 기동대원들의 안전이 집회관리의 일차적 목적임을 명심하여 큰 충돌이나 부상자가 없도록 모두가 우리의 형제 자매이고 가족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남은 기간 전 기동대원이 마음을 맞춰 서로 혼연일체가 되어 어려운 시기를 잘 대처해 나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주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2003. 11. 9
기동단장 경무관 강영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콩나물밥 이렇게 먹으면 정말 맛있습니다 콩나물밥 이렇게 먹으면 정말 맛있습니다
  2. 2 유인촌의 문체부, 청소년은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유인촌의 문체부, 청소년은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3. 3 "손님 이렇게 없을 줄은 몰랐다"는 사장, 그럼에도 17년차 "손님 이렇게 없을 줄은 몰랐다"는 사장, 그럼에도 17년차
  4. 4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에 '조선일보' 왜 이럴까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에 '조선일보' 왜 이럴까
  5. 5 윤 대통령 측근에 이런 사람이... 대한민국의 불행입니다 윤 대통령 측근에 이런 사람이... 대한민국의 불행입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