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251

말똥 치우는 늙은 개 (6)

등록 2003.11.14 13:54수정 2003.11.14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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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어서 오세요. 헌데 여긴 어쩐 일로?"
"하하! 일전에 낭자께서 구명지은을 베푸셨건만 황망 중에 가느라 미처 감사하다는 인사조차 갖추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려 다시 왔소이다. 헌데 이렇게 대문간에 세워두실 참인지요?"
"어, 어머! 내 정신 좀 봐… 어, 어서 안으로 드세요."
"하하! 고맙습니다."

화들짝 놀라는 표정이 재미있다는 듯 너털웃음을 지은 이회옥은 익숙한 몸짓으로 성큼 성큼 걸어 의사청으로 향하였다. 의성장에서 지내는 동안 차를 마시면서 담소를 나누던 곳이다.


"하하! 약소하지만 이걸 받아 주십시오."
"어머! 이건 뭐죠?"

호옥접이 찻잔을 내오자 기다렸다는 품에서 꺼낸 것은 비단으로 만들어진 자그마한 비단 주머니였다.

"일전에 소생이 선무분타의 순찰로 재임할 당시 그곳 여인들 사이에는 향낭을 차는 것이 유행이었소이다. 그곳의 여인들은 꽃잎을 잘 말려 넣었지만 소생은 그런 재주가 없어서…"
"어머! 이건…? 사향(麝香)이잖아요? 이건 소녀가 받기엔 너무 비싼 건데… 미안해요. 이건 받을 수 없어요."

"무슨 말씀을… 그렇게 비싼게 아니외다."
"아니에요. 소녀, 비록 일천한 솜씨이지만 의술을 지닌 의원이에요. 사향은 성질이 따뜻하며, 위장과 정신을 맑게 해주어 강심제나 각성제의 재료로 쓰이는 약재예요. 따라서 이것의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는 능히 짐작하지요."

"어이쿠, 낭자께서 의원이시라는 것을 깜박하였소이다. 허나 비싸게 주고 구한 것은 아니니 부담 갖지 마십시오."
"그래도 받을 수 없어요. 이 정도면 적어도 은자 이백 냥은 족히 나가는데… 어휴, 너무 비싸요. 그리고 소녀는 이만한 것을 받을 만한 일을 한 적이 없어요. 그러니 받을 수 없어요."


과연 호옥접은 뛰어난 의원이었다. 이회옥이 사향을 구하기 위해 지불한 은자가 정확히 이백 냥이었던 것이다.

"비싸다고요? 이백 냥이 뭐가 비쌉니까? 낭자께선 빈사지경에 처한 소생의 목숨을 구해주셨소이다. 그래서 그 은혜에 보답코자 자그마한 정성으로 준비한 것이외다. 그런데 그게 비싸다니요? 그럼 소생의 목숨 값이 이백 냥도 안 된다는 말씀이십니까?"


"어머! 그, 그런 뜻은 아니에요. 소녀의 말은…"
"아니긴 뭐가 아닙니까? 방금 낭자께서 이만한 것을 받을 만한 일은 한 적이 없다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건 소생의 목숨 값이 이백 냥도 안 된다는 것과 같은 말이지 않습니까?"
"어머! 그, 그게 아닌데…"

대략 일 각 동안이나 옥신각신하였지만 이회옥의 궤변을 이길 수 없던 호옥접은 사향 주머니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완전히 덤터기를 쓴 꼴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하하! 받아주셔서 고맙소이다."
"고마워요. 소중히 간직할 게요."

사향은 향이 강해 주머니 안에 넣어도 냄새가 난다. 그리고 이것은 약재로도 사용되지만 간혹 최음제로도 사용된다.

그러므로 겉에 차고 다니면 썩은 음식에 파리 꾀듯 사내들이 따라다닐 우려가 있다. 따라서 의복 속에 갈무리해야 하는 물건이다. 이런 것을 잘 알기에 돌아서서 주머니를 갈무리하는 호옥접을 본 이회옥의 입가에는 흐뭇한 미소가 어려 있었다.

생명의 은인 어쩌고 하면서 건넸지만 사실은 다른 의도가 있었다. 그녀가 장일정의 여인이라 생각하였기에 건넨 것이었다.

당주에 취임한 후 이회옥은 무림천자성 내에 잠입해 있는 제세활빈단원 가운데 하나를 호출하였다. 그리고는 무천의방 부방주인 소화타의 출신이 어디인지를 확인해 보라는 지시를 내렸다.

세상에는 동명이인이 많다. 게다가 장씨는 어디를 가든 흔히 볼 수 있는 성이다. 따라서 소화타 장일정이 사촌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의성장에서 보았던 그는 어린 시절 자신과 함께 뛰어 놀았던 개구쟁이와 윤곽이 너무도 비슷하다 느꼈다.

그러나 내놓고 알아볼 수는 없었다.

의문사(疑問死)한 철마당주와 철검당주, 그리고 그들의 휘하 사십여 명이 하나의 사건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아직 하나 남아 있기 때문이다. 태극목장의 모든 식솔들을 몰살하라 지시한 것이나 다름없는 철기린 구신혁이 바로 그이다.

그는 며칠 전 갑작스럽게 연공관에 들었다. 언제 나올지는 알 수 없으나 그가 나오면 의문사는 새롭게 조사될 것이다.

따라서 태극목장과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 안 되겠기에 비밀리에 알아 보라 이른 것이다.

무림천자성 사람들은 어디 출신이며 누구에게서 무공을 익혔는지가 알려져 있다. 하지만 소화타는 남의와 북의에게서 의술을 전수 받았다고만 알려졌을 뿐 다른 것은 알려진 바가 없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위험을 무릅쓰고 알아본 것이다.

예상은 적중하였다!

소화타는 어릴 적 헤어졌던 장일정이 분명하였던 것이다.

입이 무거운 그가 스스로 신분을 노출시켰을 리는 만무한 일. 그의 출신을 가르쳐준 사람은 다름 아닌 호옥접이었다.

아파(牙婆 :여인들이 사용하는 화장품이나, 노리개 등 패물을 팔러 다니는 방물장수)로 변장한 제세활빈단원이 그녀에게 접근하여 그가 대흥안령산맥에서 왔다는 것을 알아냈던 것이다.

세상에 장일정이라는 성명 석 자를 지닌 사람은 많을 것이다. 그러나 늑대와 호랑이들이 들끓는 대흥안령산맥에서 살았던 장일정은 흔하지 않을 것이다.

소식을 접한 이회옥은 시간 날 때마다 무천의방을 기웃거렸다. 얼굴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그 결과 사촌동생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 길로 사향을 구입하러 나갔던 것이다.

장래 제수(弟嫂)씨가 될 호옥접에게 선물하고 싶어서였다. 물론 과다한 실혈로 빈사지경에 처했을 때 자신을 구해준 은혜에 보답하려는 의미도 담긴 그런 선물이었다.

오늘, 호옥접은 이회옥이 약간은 이상하다 느꼈다. 모르는 사람은 아니지만 전보다도 더 친숙하게 대하는 듯하였기 때문이다.

아주 잠깐 장일정이 오지 않을 때 그의 다정다감함에 약간 마음이 흔들린 적이 있었다. 하지만 장일정이 다시 드나들기 시작한 이후에는 이회옥을 깨끗이 단념하였다.

살인을 저지른 범인이므로 죽을지도 모르는 사람이고, 설사 죽음을 면한다 하더라도 언제 볼지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느닷없이 방문하여 과분한 선물을 내밀었고, 그것을 받았다는 부담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마주하고 앉았다.

따라서 왠지 모를 어색함 때문에 서먹한데 그는 전혀 아닌 듯 너무도 친숙하게 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하! 오늘은 조금 늦는 모양입니다."
"늦다니요? 뭐가요?"
"그야, 여기 의성장 장주인 소화타의 귀가가 늦는다는 거죠."
"예. 아마 잠시 후면…"

쿵! 쿵! 쿵!
"어머! 왔나봐요."

말을 하는 동안 밖에서 대문 두들기는 소리가 들리자 호옥접은 어색한 상황을 피할 절호의 기회를 만났다는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한 걸음에 대문가로 달려갔다.

"뭐야? 누가 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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