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들의 박수 소리가 가장 행복한 소리죠"

[새벽을 여는 사람들 48] 무명가수 이용렬씨의 노래하는 새벽

등록 2003.11.17 08:54수정 2003.11.17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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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좋은 일로 배를 타신 분도 계시지만 안 좋은 일이 있어서 바람이나 쐬려고 배를 타신 분들도 있을 겁니다. 저는 노래로 힘을 드릴게요. 김광석의 '일어나'입니다."


흔들리는 유람선에 이용렬(33)씨의 노래가 울려 퍼진다. 강물에 반짝이는 불빛에 눈길을 빼앗겼던 사람들이 시선을 돌린다. 그리고 그의 노래에 맞춰 박수를 친다. 업소와 달리 유람선은 관객의 모든 시선이 그에게 집중된다. 흔치 않은 경우라 그가 긴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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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인사를 나누고 난 후 그가 명함을 건넨다. 으레 받는 명함이려니 했는데 자세히 보니 예쁜 그림과 함께 이름 앞에 수식어 하나가 더 붙어 있다. '희망을 노래하는 가수 이용렬'

"나무에 물을 주면 자라잖아요. 제 나무는 희망이라는 노래를 주면 자라요."

그는 초등학교 시절 양희은 노래를 테이프가 늘어질 정도로 듣고 살았다. 고등학교 1학년 때는 처음 배운 통기타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대학교에 입학하고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학비마련을 위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졸업 후 무작정 카페를 다니며 노래 부를 곳을 찾았다. 음악을 좋아하긴 했어도 가수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통기타 하나로 10년을 그렇게 세상과 맞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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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유람선 공연을 마친 그가 일산으로 이동한다. 일산에 위치한 카페와 주점에서 공연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매일 저녁 7시 30분부터 자정까지 세 곳을 옮겨 다니며 노래를 부른다.

전혀 다른 분위기의 세 곳에서 노래 부르는 덕분에 그의 노래도 세 가지 색깔로 갈아 입는다. 유람선에선 성대모창도 하며 관객의 웃음을 유도하고 조용한 카페에선 점잖게 노래한다. 그리고 조금 산만한 주점에서는 목소리를 높인다.


언제 어디에서 노래를 부르게 될지 모르는 게 이 바닥이다. 계약서 한 장 없이 사람 하나 믿고 하는 장사이기 때문이다. 당장 내일 그만 나오라고 하면 그만인 것이다. 주인이 약속했던 돈을 주지 않고 달아나도 찾을 방법이 없다. 그가 그렇게 돈을 받지 못한 경우만도 대 여섯 번. 그러나 그는 사정이 어려워서 그랬나보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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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그는 지난 10년 동안 한결같이 기타만을 고집했다. 앞으로도 통기타만을 고집할거냐는 질문에 "할 줄 아는 게 이것밖에 없다"며 너털웃음을 터뜨린다.

"기타소리는 인간적이에요. 울림이 중후하고 좋아요. 또 개인적인 생각에 통기타의 파장이 제 머리 속을 맑게 해 주는 것 같아요. 물론 검증된 것은 아니지만."(웃음)

통기타의 울림소리가 그의 머리를 맑게 해준다면, 사람들의 박수소리는 그를 가장 행복한 순간으로 빠져들게 한다.

"사람들이 박수를 쳐줄 때가 가장 행복해요. 가수들은 박수를 먹고 살아요. 가수에게 박수의 의미는 당신의 노래를 듣고 나니 오늘 하루 행복해졌다는 말이거든요. 그 순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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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10년 동안 혼자였던 그가 올 9월에 지금의 소속사를 만났다. 드라마 주제곡을 만드는 한 기획사에서 싱글 음반과 드라마 주제곡을 부르는 조건으로 계약을 맺은 것이다. 아직 언제가 될지 결정된 것은 아니지만 그의 이름을 건 앨범도 이곳에서 만들어질 것이다.

'희망 그리고 새 날'

앞으로 나올 앨범의 이름에 대한 그의 생각이다. 희망이라는 단어가 꼭 들어갈 것만 같았는데 그가 정말 '희망'이라는 단어와 '새 날'이라는 단어를 선택한다. 이제 다른 사람의 노래가 아닌 자신의 노래를 부를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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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손님이 갈 때가 되어 자리에서 일어난 것인데도 혹시 자신 때문에 그러는 건 아닐까 그는 마음을 졸인다. 취객이 노래를 못한다며 마이크를 빼앗아 간 적도 있다. 아주 가끔씩은 손님 한 명 없을 때도 있다. 그럴 때 노래 부르는 것은 정말 '텅 빈 마음'이라고밖에 표현 못하는 그이지만 노래를 멈출 수는 없다.

"노래를 부르면 일단 제 자신이 행복해지고요. 잠시나마 남들을 즐겁게 해 줄 수 있으니까. 물론 제 노래를 누구나 다 좋아할 수는 없겠죠. 세상에 100%라는 것은 없으니까요. 하지만 적어도 좋아하시는 분들은 순간의 행복이라도 느끼는 거잖아요."

그렇게 함께 행복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그가 노래를 부르는 이유다. 그런 그이기에 예전에 한 카페에서 노래했던 기억은 그가 꼽는 최고의 무대다.

"대학로였는데요. 그때 제가 만화 주제가를 메들리로 불렀는데 손님들이 제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거예요. 정말 재밌게 노래했어요. 블루스도 췄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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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노래 제목만 나와도 꼭 자신이 불러봐야 성에 차는 그다. 음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그가 부른 노래만도 몇 곡인지 모른다. 세 군데에서 부른 노래만도 25곡인데 그는 여전히 즐거운 눈치다. 덕분에 수 십 곡의 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

이렇게 그의 하루가 저물어간다. 오늘은 소속사에서 주최하는 공연준비로 새벽 4시가 가까워진 시간에 집에 돌아갈 채비를 한다. 하루하루 늘 바쁘게 살다 보니 벌써 올 한해도 다 지나가려 한다.

"올 한해 정말 정신없이 살았어요. 세월이 너무 빨리 흘러가네요. 아쉬운 게 있다면 제가 좀더 부지런히 운동도 하고 했어야 했는데….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살려고 했는데 아쉬움이 남네요. 하지만 세상에 100%는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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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그는 가수의 길을 포기하고 싶었던 적은 있어도 후회한 적은 없다고 말한다. "다시 태어나도 가수를 하겠냐"는 질문에 그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그렇다"고 말한다.

"저 가수는 노래 잘한다는 그런 말을 듣기보단 노래하면서 행복해 보인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요. 듣는 사람도 함께 행복해질 수 있는 그런 행복한 가수가 되고 싶어요."

그가 그토록 만들어가고 싶은 행복이란 어떤 모습일까?

"함께 하는 것. 그래야 행복할 수 있어요. 같이 즐거워야 해요. 나만 좋고 나만 행복한 것은 정말 행복한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같이 공유하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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