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자 아버지와의 화해...이 주의 새 책들

<오랑캐꽃> <은빛 물고기> <바닷가 마지막 집> <해뜨기 전 한 시간>

등록 2003.11.18 16:31수정 2003.11.18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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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자 아버지와 화해하다
- 양헌석 장편 소설 <오랑캐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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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천문학사

단언컨데 '만만하고 하찮은 삶'을 사는 인간은 세상에 단 한 명도 없다. 어떤 곡절을 가슴에 품고 살건, 한 사람 한 사람의 생이란 시쳇말로 소설책 10권만큼의 사연과 드라마는 담고 있다.


대부분의 소설가가 한번쯤은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싶어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되돌아 자신을 지금 이곳에 있게 한 여러가지 구구한 사연들. 아버지와 어머니, 고향과 유년시절의 추억 등등.

1988년 한 기자가 쓴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타오르고>라는 책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평론가들 역시 이 기자 출신 작가를 주목했다. 그러나 그도 잠깐, 1990년 절필선언을 한 이 작가는 자그마치 13년을 침묵함으로써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졌다. 그 절필선언에는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내 이야기를 쓰고싶다"라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2003년 늦가을. 바로 '그 작가' 양헌석(47)이 '내 이야기'를 쓴 장편소설 <오랑캐꽃>(실천문학사)를 들고 돌아왔다. 사회주의자였던 아버지와 그로 인해 불행을 강요받았던 유년, 연좌제의 사슬을 끊고 교사와 기자가 되기까지의 힘겨웠던 여정, 그리고 아버지와의 진정한 화해에 이르게 한 문학에 관한 이야기까지를 담은 이 작품은 언필칭 자전소설이다.

양헌석은 <오랑캐꽃>을 통해 '사회주의자' 아버지를 둔 윤기립, 윤지원 남매의 이야기를 풀어감으로써 세상, 혹은 아버지와의 진정한 화해를 시도하고 있다.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윤지원과 소극적이고 피해의식이 강한 윤기립은 내 속에 존재하는 분열된 두 개의 자아"라고 말하는 양헌석은 어쩔 수 없는 그늘에 가려진 인간의 인생이 세월의 격랑을 겪으며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담담한 문체와 튼실한 문장 속에 담아냈다.


양헌석의 부친은 실제로 자신이 지향했던 이념 때문에 20년 세월을 감옥에서 보낸 비전향 장기수. 그의 아들로서 살아온 작가의 청년시절이 평탄했을 리 없다.

하지만 양헌석은 말한다. "이건 아버지의 이야기가 아닌 내 이야기"라고. "이념소설이 아닌 인간의 인생을 그려낸 소설로 읽어달라"고. 그러나 우리는 안다. 그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기까지 그가 겪었을 정신적 육체적 시련을.


<오랑캐꽃>을 접한 소설가 조정래는 "분단시대를 형상화하는 새로운 기법이 놀랍다"라는 말로 양헌석의 출간을 축하했다.


연어를 통해 인간을 보다
- 고형렬 에세이 <은빛 물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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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출판사

'그들은 한 곳에 머무르지 않는다. 한곳에 머무르면서 자신들 종족의 정신을 노쇠시키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몸을 끝없이 집단으로 움직이는 집시들이다.'

기가 막히다. 연어의 회귀를 이처럼 근사한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될까? 이건 시인이니까 가능하다. 그것도 맑은 서정과 따뜻한 눈을 가진 고형렬 시인이기에 가능하다.

<대청봉 수박밭> <사진리 대설> 등의 시집을 통해 독자들의 섬세한 감성을 자극했던 고형렬 시인의 에세이 <은빛 물고기>(바다출판사)는 일생동안 3200Km의 바다와 강을 헤엄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물고기 연어의 생태를 추적하고 있다.

아니, 비단 생태만이 아닌 연어의 마음과 몸짓 하나하나가 가지는 의미, 그리고 그 연어를 있게 한 환경의 문제까지를 시인은 낮은 목소리로 우리들에게 들려준다.

<은빛 물고기>가 가진 미덕은 표면상으로 드러나는 연어의 삶과 죽음에 관한 미세한 관찰이 아닌 듯하다. 이 책이 가진 진정한 미덕은 연어의 이야기를 인간의 이야기에까지 자연스레 확장시키는 고형렬의 애정과 넉넉한 품이 아닐지.


소설의 쓸쓸함한 분위기가 만화로 전해질까?
- 전경린 원작 <바닷가 마지막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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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가서

출판사 '이가서'에 의해 추진되고 있는 한국 현대소설의 만화화 작업이 박완서, 이문열, 이청준의 1차분 출간에 이어 2차분 출간으로 이어지고 있다. 2차분으로 출간된 책은 전경린의 <바닷가 마지막 집>과 하성란의 <곰팡이꽃>. 90년대를 대표하는 두 여성작가의 소설이 만화로 옷을 바꿔 입고 독자들과 만난 것이다.

처음 출간소식을 접했을 때 걱정스러웠던 건 전경린 소설이 담고있는 우수에 찬 쓸쓸한 분위기를 만화라는 장르로 소화가 가능할까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걱정은 그야말로 기우에 불과했다. 젊은 만화가 이원희는 <바닷가 마지막 집>의 무대가 된 음울한 늪지의 시골풍광과 주인공 '나'의 갈팡질팡하는 내면풍경까지를 훌륭하게 그림으로 옮겨냈다.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 한 편의 드라마로 제작됐을 때의 느낌을 그대로 가져다주는 <바닷가 마지막 집>. 하성란의 <곰팡이꽃> 역시 만화가 가진 극대화된 전달의 힘이 그대로 느껴진다. 추후 출간 예정이라는 전상국과 오정희, 송기원과 이제하의 작품 역시 전작들이 보여준 성과를 이어갈 수 있을지 기대된다.


그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이유
- 지미 카터의 <해뜨기 전 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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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다스북스

미국의 39대 대통령인 지미 카터(79). 그는 재임시보다 퇴임 후 더 주목받는 특이한 이력의 사람이다. 임기를 마친 후 애틀랜타에 비영리 봉사재단을 설립하고, 각각의 이해관계가 대립하는 나라들간의 갈등해소를 위해 북한과 아이티, 수단과 보스니아로 동분서주한 그는 평화정착과 인권신장에 이바지했다는 이유로 2002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최근 출간된 <해뜨기 전 한 시간>(김정신 역. 미다스북스)은 남주 조지아의 시골소년이 거대한 나라 미국의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비밀을 들려주는 동시에 지미 카터가 현재까지 행하고 있는 각종 평화활동과 인권보호활동의 원동력이 어디에서 발원되었는지를 알려준다.

언제나 부지런했지만 원칙에 있어서는 엄격했던 아버지, 자는 시간외에는 손에서 책을 놓지 않던 간호사 출신의 어머니, 흑인과 백인은 모두가 존중받아야 마땅할 꼭 같은 인간임을 알게 해준 흑인목사 윌리엄까지 저자의 유년을 지배했던 사람들은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도 지미 카터의 거울이다. 그 거울을 통해 끊임없이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는 카터였기에 그의 오늘날이 있은 것이 아닐지.

오랑캐꽃

양헌석 지음,
실천문학사,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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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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