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이 아닌 것은 따르지 마라"

걸망에 담아온 산사이야기(27)-설령산 성륜사

등록 2003.11.21 08:39수정 2003.11.22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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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청화 큰스님이 창건한 성륜사 일주문엔 님 보낸 서러움 같은 것이 남아 있었다.

청화 큰스님이 창건한 성륜사 일주문엔 님 보낸 서러움 같은 것이 남아 있었다. ⓒ 임윤수

'사람 드는 것은 표 나지 않으나 사람 나는 것은 표 난다'고 하더니 정말 그런가 보다. 구름처럼 몰려들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지금껏 있을 거란 기대는 갖지 않지만 며칠 전 다녀온 성륜사를 다시 찾아가는 길은 왠지 마음부터 허전하고 썰렁한 기분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애도 속에 연화대로 오르셨던 '청화 큰스님은 지금쯤 어디에 계실까?'하는 부질없는 궁금증이 생긴다. 이곳에선 가셨지만 저 세상에 다시 태어남을 알고 계실 테니 오는 듯이 가셨고 가신 듯이 다시 오시리라 생각하니 막연한 위안이 생긴다.


춘향골 남원과 곡성을 지나 27번 국도를 달리다 보니 저만치 전남과학대학이 보이고 옥과면을 외호하듯 둘러싼 설령산(雪靈山)이 보인다. 넓은 주변 탓인지 높게 보이지 않으나 범상치 않게 보인다.

성륜사 사무장의 전언에 의하면 나라 방방곡곡서 살생과 동족상잔이 벌어졌던 6·25때도 설령산에서 피난을 하였던 사람은 단 한 명도 다치거나 상하지 않았다고 하니 범상치 않은 산세에서 태평성세란 의미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a 범종각과 승방을 지나게 되면 지장전과 대웅전으로 올라가는 갈림길 나온다. 오른쪽으로 지장전이 보인다.

범종각과 승방을 지나게 되면 지장전과 대웅전으로 올라가는 갈림길 나온다. 오른쪽으로 지장전이 보인다. ⓒ 임윤수

풍수지리에선 산을 용이라고 한다. 산을 용이라고 하는 까닭은 산의 흐림이 마치 꿈틀대는 생용(生龍)과 같기 때문이란다. 좌우로 굽이치고(左右屈曲) 위 아래로 꿈틀대며(上下起伏) 홀연히 굵어졌다 홀연히 가늘어지는(忽大忽小) 산의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정말 살아 꿈틀대는 용과 같다.

꿈틀대는 용이 뭔가를 휘감듯 보호하듯 감싸고 있는 그곳, 설령산 중턱 아늑한 곳에 성륜사가 있으니 경내 제일 높은 곳에 자리한 벽산당 금타화상 탑비와 부도탑 그리고 조선당(組禪堂)이 멀찌감치 가물가물 보인다.

시골의 작은 면소재지인 옥과면에서 지동천이라 하는 개울을 끼고 있는 도로로 접어드니 전형적인 시골 마을 가는 길이다. 가을걷이가 거의 끝난 시골 마을은 한적해 보인다. 사실 외형으로만 한적해 보이지 김장을 하고 월동 준비를 하느라 나름대로 분주할 것임을 알면서도 마음속엔 한가롭게 그려진다.


농로를 겨우 면한 정도의 포장길을 따라 차를 몰다 보면 야트막한 고개도 넘고 작은 다리도 건넌다. 보이지 않으나 촌노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 농촌 마을로 들어서는 비포장 도로도 지나게 된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뜸해지던 집들이 작은 고개를 넘으니 보이질 않는다. 면소재지에서 10리쯤은 들어 온 모양으로 어느새 성륜사 일주문 앞에 서게 된다.

a 곱게 물든 단풍나무 사이로 대웅전이 보인다. 대웅전의 문살이 아주 곱고 화사하다.

곱게 물든 단풍나무 사이로 대웅전이 보인다. 대웅전의 문살이 아주 곱고 화사하다. ⓒ 임윤수

며칠 전, 청화 큰스님의 영결식이 있던 그 때 군중들의 다양한 모습들이 다시 떠오른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설화처럼 이야기하던 큰스님의 청빈한 삶이 그려질 듯 그려질 듯 머릿속에 펼친 캔버스에 아롱대나 잘 그려지진 않는다.


온갖 잡다한 짓 다하고 돌아다니는 속물 중의 속물이 감히 선승 큰스님의 고고한 일상을 한순간에 그리려니 감조차 잡히지 않는 게 당연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니 피식하고 웃음이 나온다.

인파로 빼곡하였던 다비장과 주변이 휑하니 비었건만 비었다는 느낌이 그렇게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발길이 일주문을 들어서니 성륜사가 텅 빈 듯한 느낌이다. 청화 큰스님의 그늘이 성륜사를 꽉 채우더니 그 그늘이 사라진 탓인지 허전하단 생각을 감출 수가 없다.

성륜사는 20여 년 전 청화 큰스님이 원력을 세워 이곳, 전남 곡성군 옥과면 옥과리 설령산에 10여만 평의 터에 창건한 절로 특정 본사에 귀속된 말사가 아니고 대한불교 조계종 성륜불교문화재단으로 등록되어 있다고 한다.

a 대웅전에서 내려다본 경내는 한적하기만 하다. 사진 중앙쯤의 건물 가운데 마당에서 영결식이 있었다.

대웅전에서 내려다본 경내는 한적하기만 하다. 사진 중앙쯤의 건물 가운데 마당에서 영결식이 있었다. ⓒ 임윤수

청화 스님은 전남 무안에서 태어나 24세(1947년)가 되던 해 송만암 스님의 상좌인 금타(金陀) 스님을 은사로 백양사 운문암에서 출가하였다고 한다. 은사 스님인 금타 스님에게서 '청화(淸華)'라는 법명을 받게 되며, 불문에 들어 47년을 산중 선방에서 수행에만 전념하신 산승(山僧)이며 당대 최고의 선승(禪僧)이라고들 한다.

큰스님은 전국 각지를 돌며 수행하다 신라말 구산선문의 하나였던 고찰 태안사를 복원하고 서울의 광륜사와 이곳 성륜사를 창건하였다 한다. 청화 큰스님은 장좌불와(눕지 않는 생활)와 1종식(하루 한 끼만 먹는 생활)으로 평생을 수행하며 청빈한 구도자의 길을 솔선수범하신 분으로 입적하시기 전까지 성륜사에 주석해 계셨다고 한다.

멀리서 볼 때는 역동하듯 힘차게 흐르던 설령산 산세가 경내로 들어서니 아가를 안고 있는 어머니의 양팔처럼 부드럽게 성륜사를 안고 있다. 산이 병풍처럼 둘러싼 듯 하지만 그보다는 아가를 안고 있는 어머니의 양팔처럼 부드럽게 안으로 굽은 산세가 성륜사를 외호하고 있다.

수백 년 수천 년의 장고한 역사가 없기에 역사성에서는 미천해 보이지만 당대를 대표할 최고의 선승이 창건하고 주석하였던 곳인만큼 성륜사는 선풍이 분명한 곳이다.

a 청화 큰스님의 사리 습과가 이루어지고 있던 조선당은 깔끔한 한옥으로 전망이 탁 트여  산하와 진입로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청화 큰스님의 사리 습과가 이루어지고 있던 조선당은 깔끔한 한옥으로 전망이 탁 트여 산하와 진입로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 임윤수

일주문으로 들어서 금강문(천왕문)을 지나게 되면 좌측으로 종무소가 있다. 종무소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며 보이는 건물들 대부분은 스님들이 공부하며 참선하는 승방이며 선방이다.

일반 절들에 비해 유달리 무단청의 건물들이 많이 눈에 띄는데 그런 건물 대부분이 승방이나 선방이니 성륜사는 경내 자체가 선방이며 참선의 공간인 듯하다.

2층으로 된 범종각을 지나면 설법전이 나온다. 대중들이 생전 청화 큰스님의 설법을 들었을 공간이나 현재는 분향소로 이용되고 있었다. 또한 이 설법전에는 스리랑카 정부에서 기탁 받아 봉안하고 있는 부처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기에 평소에는 이를 친견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단다.

좌우로 늘어선 승방을 지나 조금 더 올라가면 그곳에 지장전이 있고 지장전 위로 대웅전이 있다. 대웅전과 비슷한 높이지만 조금 떨어진 좌측에 커다란 건물이 있으니 바로 옥과미술관이다.

a 조선당 앞에는 군더더기 없이 단촐 한 바위와 절구가 놓여 있다. 큰스님의 청빈한 삶 또한 이처럼 깔끔했었을 듯하다.

조선당 앞에는 군더더기 없이 단촐 한 바위와 절구가 놓여 있다. 큰스님의 청빈한 삶 또한 이처럼 깔끔했었을 듯하다. ⓒ 임윤수

전라남도 옥과미술관은 아산 조방원 화백(雅山 趙邦元 畵伯)이 평생 동안 수집한 간찰(簡札, 오늘날 편지)과 서화(書畵), 서첩류(書帖類), 성리대전 목판각(性理大全 木板刻)이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이뿐 아니라 백제·통일신라 시대 암·수막새와 고문서, 전남 중진작가들의 작품들이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대웅전에서 조금 더 가파른 길을 따라 산 쪽으로 올라가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오른쪽으로 들어서면 선방으로 가게 된다. 선방은 영결식 날 사람들이 말하던 청화 큰스님의 맑은 모습이 떠오를 만큼 깨끗한 한옥의 건물로, 탁 트인 전망이 막힌 마음도 뚫어줄 듯하다.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들어서면 조선당(組禪堂)과 청화 큰스님의 은사 스님인 벽산당 금타 화상의 탑비와 부도탑이 있는 곳으로 가게 된다. 청화 큰스님은 은사 스님에 대한 공경과 예를 탑비와 부도탑으로 후세에 남겼으니 이 또한 실천적 설법이라 생각된다.

조선당은 성륜사에서 제일 꼭대기에 있는 건물로 한마디로 마음조차 깨끗하게 해 줄 만큼 깔끔한 주변에 깔끔한 구조다. 동그랗게 둘러싼 산의 중앙에 자리잡아 포근하게 안겨 있고 산하를 굽어보듯 시야가 넓어지니 혼탁한 마음이 사라질 듯하다.

조선당의 옆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니 뭔가에 열중하던 스님이 흠칫 놀라며 손짓으로 나가라 하신다. 언뜻 보아도 청화 큰스님의 사리를 습과하는 과정인 듯하다.

a 성류사 제일 높은 위치에 청화 큰스님의 은사스님 되는 벽산당 금타화상의 탑비와 부도탑이 있다. 청화큰스님은 은사스님에 대한 공경과 예를 탑비와 부도탑으로 후세에 남겼으니 이 또한 실천적 설법이라 생각된다.

성류사 제일 높은 위치에 청화 큰스님의 은사스님 되는 벽산당 금타화상의 탑비와 부도탑이 있다. 청화큰스님은 은사스님에 대한 공경과 예를 탑비와 부도탑으로 후세에 남겼으니 이 또한 실천적 설법이라 생각된다. ⓒ 임윤수

순간적으로 갈등이 생긴다. 다시는 못 보게 될 저 광경, 큰스님의 사리를 습과하고 있는 그 광경을 카메라에 담을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갈등이 머리를 복잡하게 만든다. 꾸중 한 번 듣고 기회의 사진을 찍을 것인가, 말 것인가?

선뜻 결정이 되지 않는다. 멈칫거리며 스님의 손짓에 따라 일단 문을 닫고 나니 '인연이 아닌 것은 따르지 말라'는 생각이 홀연히 찾아 든다. 큰스님은 입적하시기 전에 "올 때도 빈손으로 왔는데 굳이 마지막 가는 길 호화롭게 할 필요 있냐"며 "죽은 뒤 거적에 말아 일반 화장터에서 화장해 아낀 돈은 불우 이웃 돕기에 써달라"는 유언을 하셨다고 한다.

이 말씀엔 '사리를 거두지 말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유추된다. 자칫 선(禪)과 법력의 척도를 사리의 유무와 다소만으로 판가늠할 속인들의 우매한 입방아를 사전에 차단하며 또 다른 가르침을 주고 싶으셨는지도 모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큰스님은 전신이 사리라 할 만큼 부지기수의 사리가 습과되고 있다고 한다.

a 경내 건너 쪽에 전라남도옥과미술관이 보인다.

경내 건너 쪽에 전라남도옥과미술관이 보인다. ⓒ 임윤수

어제 18일 오후, 가슴을 뛰게 하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다름 아닌 큰스님의 사리를 친견할 수 있는 기회가 19일 오후 5시까지 주어진다고 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수백 리 길 마다 않고 부랴부랴 찾아가니 계획이 변경되어 사리는 친견을 할 수 없단다.

18일 하루는 참배자들에게 친견할 기회를 주었다고 한다. 그러다 18일 저녁 문도회에서 큰스님의 유지에 대한 견해 차로 당장의 사리 친견은 취소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추후에도 그 사리를 신도들에게 친견(공개)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한 결정은 아직 서지 않았다고 한다.

a 성륜사에 곳곳에는 승방과 선방이 있다. 무단청의 건물이 한층 깔끔해 보인다.

성륜사에 곳곳에는 승방과 선방이 있다. 무단청의 건물이 한층 깔끔해 보인다. ⓒ 임윤수

어떤 형태로든 연락을 받거나 소식을 듣고 큰스님의 사리를 친견하고 카메라에 담아 보겠다 불원천리 성륜사를 찾아 온 기자를 포함한 적지 않은 내방객들에겐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어쩌랴. 인연이 아닌 것을. 인연이 아니려니 하고 마음을 접어도 아쉬움은 감출 수가 없다. 한적한 성륜사 곳곳을 들려 참배하고 둘러보며 일주문을 뒤로하고 터벅터벅 걷다 보니 '청화 큰스님이 생존해 계시면 이럴 때 어떻게 하셨을까?'하는 반문이 생긴다.

사리 자체를 거두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리고 성급했던, 실수였던 일단 친견을 공개하였었다면 그것을 실천하였을 듯하다. 성급함이나 실수에 따른 과오는 당신이 평생 떨치고자 하였던 삼독(三毒)의 하나인 치(癡, 어리석음)에 기인한 것으로 생각하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곤 그 어리석음에서 온 실수를 깨치기 위해 더더욱 수행에 정진하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승가의 율을 알지 못하는 속인의 옹졸함일까?

a 설법전에는 스리랑카 정부로부터 기증 받아 봉안중인 진신사리가 모셔져있고 평소에는 친견도 가능하다고 한다. 현재는 청화 큰스님의 영정이 모셔져 있었다.

설법전에는 스리랑카 정부로부터 기증 받아 봉안중인 진신사리가 모셔져있고 평소에는 친견도 가능하다고 한다. 현재는 청화 큰스님의 영정이 모셔져 있었다. ⓒ 임윤수

어찌되었던 번복된 결정은 많은 사람들을 황당하게 하고 혼동시켰으며 입장을 곤란하게 한 것만은 사실이다. 차제에 다시는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고 가신 큰스님의 유지가 잘 지켜지고 전이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 간절하다.

성륜사는 호남의 길지(吉地)에 아름답게 피어난 피안의 길목임이 틀림없다. 더구나 당대 최고의 선승이 창건하고 그 선풍이 그늘처럼 곳곳에 드리웠으니 더 말해 무엇하리.

창건주 선승 청화 큰스님의 고명에 걸맞는 명찰로 속인들에게 길이길이 속세의 번뇌를 끊고 피안의 언덕으로 들게 하는 커다란 법계의 일주문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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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좋아하는 거 다 좋아하는 두 딸 아빠. 살아 가는 날 만큼 살아 갈 날이 줄어든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는 사람.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란 말을 자주 중얼 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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