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마술을 속임수로 보세요?

[새벽을 여는 사람들 50] 그 꿈 같은 무대의 주인공, 마술사 이제민

등록 2003.12.03 09:58수정 2003.12.18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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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저는 매일 생각하는 게 네 가지가 있어요. 새로운 마술을 만들어야지. 선생님께 지적받지 말아야지. 오늘은 어떤 마술을 할까. 마술 연결을 어떻게 할까.”


이제 경력 3년차인 마술사 이제민(25)씨. 경력으로만 따지면 그리 길지 않은 기간이지만 그는 과감히 “마술에 목숨 걸었다”고 말한다.

그의 꿈이 처음부터 마술사였던 것은 아니었다. 예술경영을 공부하기 위해 프랑스 유학을 준비하던 중, 외국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려는 목적으로 마술을 배웠다. 처음에 딱 한달만 배우기로 했던 것이 지금까지 이어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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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올해 세계마술대회에 출전했던 이제민 마술사입니다. 여러분들의 큰 박수를 바랍니다.”

무대 커튼이 걷히자, 멋지게 차려입은 이씨가 서 있다. 먼저 커다란 막대기를 장미로 바꾸는 쇼를 선보인다. 이어 연달아 계속되는 그의 현란한 마술 솜씨에 관객은 그저 넋 놓고 숨죽일 따름이다.

긴장한 탓인지 오늘따라 마술 도구를 떨어뜨리는 실수가 잦다. 그러나 당황하지 않는다. 익살스런 표정으로 분위기를 다시 잡은 후, 그의 마술 세계는 계속된다.


“마술은 정말 매력적이에요. 무대에서 혼자 책임을 져야 하잖아요. 마술사인 자신까지도 말이죠. 또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모두 보여줘야 관객들의 집중도가 더 높아지는데, 그때 저를 바라보는 그 눈빛, 그 시선들이 정말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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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마술을 배운지 3개월 만에 프로마술사의 길에 들어서겠다는 이씨를 대하는 주변의 반응은 '너무 빠른 결정이 아니냐'는 것이었다. 심지어 그의 스승인 정은선씨마저도 좀더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보자고 했다. 그러나 유학까지 포기하고 하려는 일에 확신이 없었겠는가. 천직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3년이 지난 지금, 그 확신에 자신감까지 붙었다.

“마술을 할 때, 진짜 마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언제가 ‘나는 마술을 믿습니다’라는 문구를 보고 감동 받은 적이 있어요. 마술은 마술이죠. 그 뿐이에요.


그런데 일부 관객은 마술을 단지 속임수라고 생각해요. 그게 제일 안타까워요. 지금도 마술이 하나의 기술로 인정받고 있지만, 이제 곧 ‘마술은 마술이다’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시기가 올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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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올 여름 네덜란드에서 열렸던 세계마술대회(FISM)를 얘기하는 그의 목소리에서 힘이 느껴진다.

"무엇보다 자랑스러웠어요. 아시아에도 일루젼(환상) 마술을 할 수 있음을 알리는 것과 또 그것을 하는 마술사가 '한국인'이라는 게 정말 뿌듯했어요. 특히 제가 한복 입고 아리랑 노래에 맞춰서 마술을 했거든요."

이씨는 3년 마다 한번씩 열리는 이 마술대회에 한국인으로는 처음 출전한데다, 아시아인으로는 최초로 일루젼 종목에 도전해 세간의 많은 주목을 받았다. 한복을 차려입고 ‘견우와 직녀’를 소재로 한 마술을 선보였다는 그의 표정에 자부심과 아쉬움이 교차한다.

“정말 많이 아쉬워요. 대회가 끝나고 우연히 심사위원하고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말씀하시길 공연은 좋았는데 내용이 이해하기가 어렵다며 3년 뒤에 다시 보자고 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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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그의 첫무대는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아체험 24시간’에서 그의 스승인 정은선씨와 함께 무대에 오른 것. 수천 명 관객 앞이었지만 긴장감보다는 가슴 속 두근거림이 더 컸다고 한다. 수천 명의 시선을 끌고 가야 하는 것. 그것이 두근거림의 이유였다.

마술을 통해 그는 잃어버렸던 자신의 모습을 되찾았다.

“항상 어렸을 때부터 전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이 세상의 중심은 나이고, 그 주인공 역시 나일 것이라는…. 그런데 점차 크면서 자신감을 많이 잃었는데, 마술을 시작하면서 다시 자신감을 되찾은 것 같아요. 어느 무대이든 주인공은 나잖아요. 더 나아가 인생의 주인공도 될 수 있다고 전 믿어요. 누구든 마술을 한 번이라도 하게 된다면 사랑하지 않고는 못 견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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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현재 이씨는 일본 도쿄방송의 초청을 받은 상태다. 크리스마스 특집으로 방송되는 이 프로그램은 아시아 마술사 6명과 일본인 마술사 6명이 대결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는 여기서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시도하는 수중 마술을 선보일 예정이다. 때문에 요즘 그는 이 대회 준비로 하루 24시간이 빠듯하다.

“누군가 그랬어요. 마술의 종류는 하늘에 떠 있는 별의 수와 같다고. 그 어떤 마술사도 모든 종류의 마술을 모두 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바람이 있다면 나만이 할 수 있는, 내가 처음으로 하는 마술을 갖고 싶어요. '이제민 마술'이라고 불리는. 그거 하나만큼은 내가 세계에서 최고가 되는 마술을 하고 말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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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무대마술과 테이블 마술까지 마치고 아니 밤 12시가 가까워진다. 정리를 하려고 하자 두 명의 손님이 들어온다. 관객이 있는 한 그의 마술은 멈출 수 없기에 오늘 하루 마무리는 잠시 미뤄둬야 할 것 같다.

그는 ‘행복한 마술사’를 꿈꾼다. 행복은 전염되는 것이라 믿기에 그는 자신이 먼저 만족하고, 행복하고자 한다.

“사람들에게 마술을 정말 마술처럼 보여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어려운 일이라든지 이루어지기 힘든 일이 이뤄졌을 때 '마술 같은 일이 일어났다'고 하잖아요. 제 마술을 보면서 사람들이 꿈을 꿨으면 해요. '정말 마술 같은 일이 내게 생겼으면 좋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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