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서 잊지 못할 고구마

등록 2003.12.10 14:20수정 2003.12.11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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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시절 유달리 가까이 지내던 녀석이 있었다. 녀석은 아무리 보아도 잘난 데가 없었다. 아무렇게나 쥐어 짜놓은 찰흙덩이 같은 꼬락서니가 말이 아니었다. 더러는 잘 생긴 놈도 있지만 왠지 내 기억으로는 녀석은 늘 촌스러워 보였다. 그런데 난 유달리 녀석을 좋아했다. 생기기는 먹다 남은 쑥떡 같아도 고놈의 맛이 그리고 성품이 그리 좋아 반했는지도 모른다.


어렸을 적 우리 집은 가난했다. 오두막집에 논밭이 적어 부모님은 항상 남의 집 일을 나가셨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늘 먹는 게 시원치 않았다. 비록 배고파 눈물을 흘려본 적은 없지만 배불리 먹는 게 소원이었다.

당시 어머니께서는 남의 집 일을 나가실 때면 아침을 굶고 나가셨다. 그러다 일하는 집에서 새참이 나오면 그제야 아침식사를 하셨다. 그럴 때면 우리 형제는 점심 때 어머니께서 일을 나가신 집에서 밥 한 술 얻어먹든가 아니면 어머니께서 미리 쪄놓은 고구마를 먹어야 했다. 한알 두알. 그것도 부족해 다투어 가며 먹던 고구마. 그저 고구마 한 입에 시디 신 김치 한 가닥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그 시절은 우리 집만 그런 게 아니었다. 가난했던 50년대 우리 경제는 참으로 말이 아니었다. 지금 우리가 겪는 경제난보다 더 견디기 어려웠다. 보리고개라도 넘기려면 고구마가 아니라 풀뿌리 나무열매로 연명을 해야 했고 쑥버무리, 나물 죽으로 허기진 배를 채워야 했다. 그러니 고구마는 우리에게 쌀, 보리 다음으로 치는 귀한 식량이었다. 그런데 내가 녀석을 잊지 못하는 건 그런 연유만은 아니다. 나에게는 참으로 잊을 수 없는 사연들이 있다.

1952년 가을, 당시 6·25 전쟁이 한참이었다. 그 때 우리 마을은 인민군 휘하에 들어갔다. 곳곳에서 살인·약탈·방화가 일어났다. 그런데 그 와중에 농사일을 힘들게 하시던 아버지께서 병석에 눕고 말았다. 그러던 어느 날 형이 물놀이하다 던진 돌멩이가 같은 마을 사는 아이 얼굴에 맞아 그 아이가 병원에 가서 몇 바늘 꿰매는 사고가 났다.

큰 일이었다. 병석에 누워있던 우리 아버지께서는 그 집에 끌려가 몰매를 맞으셨다. 법도 없던 그 시절에 일가 친척하나 없는 우리네는 말 한마디 못하고 그 일을 당하고만 있었다. 그 후 아버지께서는 병세가 더 악화해 끝내 숨을 거두시고 말았다. 내 나이 열 한 살. 아직은 죽음이 무엇인지도 모르던 시절이었다.


그 날 우리 집 초가지붕엔 아버지가 입던 옷이 널리고 젊어 지아비를 잃은 어머니의 곡성은 온 동네를 울렸다. 그런데 우린 어쩌자고 그렇게 철이 없었는지….

그 날 낮 시신 머리맡 선반 위엔 아버지께서 먹다 남은 고구마 몇 알이 바가지에 담겨있었다. 그런데 나와는 다섯살 터울인 누이동생이 그 고구마 바가지를 발견했다. 가난해서 고구마조차 양껏 못 먹었기에 마지막 죽어 가는 분에게 드렸던 그 최후의 진수성찬을 우리는 싸우면서 먹었다.


"엄마야!"
" …"
그 걸 보신 어머니께서는 말문이 막히셨다. 그저 철없는 우리 두 남매를 끌어안고 서럽게 우시기만 했다. 입에 물었던 고구마를 채 삼키지도 못하고 나도 엉엉 울었다.

벌써 45년 전의 일이다.
그 후로도 우리는 산골 밭에다 고구마를 심었다. 그리고 늦은 가을부터 그 이듬해 여름까지 고구마로 끼니를 이었다. 그러니 고구마가 얼마나 식상했을까마는 왠지 녀석은 그렇게 쉽게 물리지 않았다. 오히려 먹으면 먹을수록 그 달착지근한 맛이 야금야금 먹을 만했다.

당도가 많은 물고구마를 한 솥 가득 쪄 두었다가 식을 때 먹어 보라. 손으로 껍질 쓱쓱 벗기고 훌훌 빨아먹으면 잘 익은 홍시 맛이요, 달디 단 꿀맛이 아니던가. 그리고 아이들 주먹만한 알토란같은 고구마를 쇠죽솥 아궁이에 넣었다가 꺼내어 입주둥이 시커멓게 칠하면서 먹는 군고구마 맛 또한 가히 일미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생긴 것부터가 데글데글하고 곱상한 밤고구마 몇 알을 굽거나 쪄서 한 입 한 입 베어먹는 맛이 일품이다. 과자 맛이 따로 없고, 밤맛보다 더 맛있었다.

그러나 그게 아무리 맛이 일품이라 해도 고구마는 고구마다. 녀석은 제사상에 오르지도 못하고 생일상에도 못 오른다. 그 흔하디 흔한 것은 늘 천하고 가난한 이 나라 백성들처럼 말없이 제 할 일만 하는 위인이다. 그저 세도가의 기호 식품도 못되고 헐벗고 굶주린 이 나라 서민들의 구황식품이며 간식거리며 때로는 주식거리였다. 생각하면 정말 고마운 녀석이 아닐 수 없다.

1977년 1월 초순 어느 날 나는 한 아가씨를 만나기 위해 서울로 갔다. 당시 나의 행색은 말이 아니었다. 시골학교 선생이라는 말이 믿기지 않을 만큼 피골이 상접한 얼굴에 마를 대로 마른 체구. 꾀죄죄한 양복에 헤진 구두. 허름한 가방. 어디 한 군데 반듯한 데가 없는 몰골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나는 폐결핵 중증으로 8년간 사경을 헤매다 천신만고 끝에 되살아나 교단에 선 데다가 한 여자를 만났다 생이별까지 당해 사는 꼴이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도 글을 쓴답시고 쓴 나의 졸고 한 편이 어느 잡지에 실리고 그 글을 본 한 아가씨가 내게 편지를 보냈다. 그게 인연이 되어 편지를 주고받은 지 1년 남짓 만에 그 날 그녀를 만나기로 한 것이다. 생각하면 참으로 극적인 상봉이었다. 함께 식사를 하고 수필가 P선생님과 함께 덕수궁을 구경하고…. 정말 꿈만 같은 시간이었다. 처음 만난 그녀가 어찌 그리 좋던지….

나이 어린 충청도 아가씨! 어찌 감히 욕심내랴만 내 마음은 어느새 그녀에게 홀딱 빠지고 있었다. 그래서였는지 나는 은연중에 사랑의 고백을 하게 되었고 그녀는 눈물만 흘렸다. 그녀와 헤어지기 싫어 그녀가 언니와 함께 자취하며 살고있다는 송정동 그녀의 집 부근 어느 여관에 들었다. 그렇게 떼를 쓰면 다시는 만나주지 않으리라던 그녀를 기다리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아침이 밝았다. 전화를 걸었다. 조심조심. 그녀가 뭔가 보자기에 싸가지고 나를 찾아왔다. 아직도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구마 밥이었다. 불쌍한 사람 따뜻한 밥 한끼 먹여 보내겠다는 심산이었을까. 참으로 오랜만에 먹어보는 고구마 밥이었다. 언니랑 함께 먹던 손수 지은 고구마밥. 충청도 토박이들의 별식 고구마 밥을 나를 위해 가져왔다니 나는 너무너무 감격스러워 목이 메었다.

"나영아! 사랑해!" 차마 말 한마디 못하고 서울에서 내려온 나는 또 하루가 멀다하고 편지를 띄워 보냈다. 편지는 차츰 사랑으로 변해갔고 숱한 우여곡절 끝에 그녀는 1977년 7월 7일 오후 7시 가족들의 온갖 반대를 무릅쓰고 내게 왔다. 그로부터 26년 그녀는 내 인생의 반려자로 갖은 고생 다하며 함께 살고 있다.

생각하면 사연도 많은 녀석이다. 내게 슬픔과 기쁨을 주었던 고구마. 비록 천하디 천하게 보이지만 내게는 한없는 사랑으로 오래오래 기억하는 소중한 이웃이다. 우리가 가난하던 시절. 우리는 그로 하여 배고픔을 면했고 어머니, 아버지는 피곤한 줄 모르고 열심히 일했다. 지금도 녀석은 그 잎새는 된장국으로, 줄기는 나물로, 그리고 뿌리는 고구마전·고구마탕·고구마술·고구마엿으로 무엇 하나 버릴 것 없이 온통 남에게 헌신하고 있다.

'밥은 하늘'이라고 노래한 시인이 있었다. 한 때 감옥에 들어가 눈물 흘리며 먹는 밥이 얼마나 고마웠으면 하늘이라 했을까마는 정녕 고구마도 그 하늘같은 밥처럼 가난한 우리네 마음을 훈훈하게 감싸주었다. 정녕 어머니처럼 아내처럼 늘 수더분하고 고맙고 그리운 녀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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