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호!' 소리에 놀란 새가슴

등록 2003.12.10 10:24수정 2003.12.10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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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 정상에 첫눈이 내렸다는 기별을 듣고 산을 찾았다. 대설 추위가 만만치가 않다. 옷깃을 세우고도 한기가 바람 따라 쳐들어오는 통에 덜덜 떨며 새인봉 오르막길을 오른다. 숨을 몰아쉬며 오르는 가파른 길. 훠이 훠이 오르다 보니 어느 틈에 등줄기에 땀이 솟는다.


'오호! 이래서 사람들이 산을 오르나 보구나' 혼자 생각하며 무등산 새인봉 정상에 올랐다. 양지바른 넓은 바위에 좀 앉아 쉬어 가려고 바위를 찾았다.

아! 그런데 거기 먼저와 자리를 잡고 있는 손님들이 있지 않는가.

'하나. 둘. 셋. 넷. 다섯….'

어디서 왔을까? 이 추운 겨울에 한 떼의 새들이 따뜻한 양지를 찾아 소풍을 와 있었다.

나는 행여 그들의 휴식을 방해할까 싶어 나무 뒤에 숨어서 그들의 동정을 살피고 있었다. 그런데 새들은 지금 식사 중이었다. 휴일 날 같으면 등산객들이 먹다 버린 음식물 찌꺼기, 과일 부스러기라도 주워 먹으련만 오늘은 날씨 탓인지 등산객들도 적어 먹을 게 없어서인가 그들은 파르르 팔짝 날다가 널따란 바위에 붙은 바위 옷. 그 마른 풀잎을 뜯어먹고 있다.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이 추운 겨울. 먹을 게 없어 어쩔꺼나. 벌써부터 식량이 떨어져 바위 옷을 다 뜯어먹어야 하다니….

이럴 줄 알았더라면 먹을 것을 좀 가져왔을텐데, 오늘사 말고 빈손으로 산을 올라 왔다. 게다가 사과 몇 알 가져온 아내는 이미 새인봉을 지나 장불재를 오르고 있다지 않은가.


"새들아! 미안하다!" 혼자 미안해하며 지켜보고 있는 새들이 참 귀엽다. 비록 바위 옷을 뜯어먹고는 있지만 앙증맞은 맵시에 촐랑촐랑 거리며 요리 조리 헤집고 다니며 식사를 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사랑스러운 우리네 아이들 모습이다.

그 때였다. 어디선가 "야-호!" 소리가 들려 온다. 이건 메아리가 아니다. 누군가가 발악을 하듯 질러대는 굉음이다. 새들이 놀라 고개를 쳐든다.

"야--호--!"

소리는 점점 가까이서 들려왔다. 누군가가 소리를 질러 대며 이리로 오고 있는 모양이었다. 새들이 놀라 수십 길 낭떠러지 절벽 아래로 떨어지듯, 절벽 아래 숲으로 숨고 있었다.

"야~호~!"

'왜 저리도 속이 없을까? 아무리 저 혼자 좋다지만 저리도 소리를 질러댈까?"

소리를 질러대는 주인공의 얼굴이 보고 싶어졌다. 그 사람을 만나면 자기 집에서 새근새근 잠자는 아이 옆에서 저토록 소리를 질러보라고 말하고 싶었다.

생각하면 참으로 딱한 사람들이다. 저토록 아무 생각 없이 질러대는 야호 소리에 숲 속에서 잠자던 동물들이 놀라고 때로는 새끼를 밴 짐승들이 낙태를 한다지 않던가. 춥고 배고픈 새들의 식사를 못하게 한 죄. 어찌 저 사람뿐이던가.

이 겨울. 어디선가 돈많은 사냥꾼은 사냥총을 뻥뻥 쏘고 있을 게 아닌가. 그 때마다 놀란 짐승들 이리 숨고 저리 숨다가 재미로 쏜 한 방의 총에 목숨을 잃지 않던가. 물론 자기 좋아서 하는 일 누가 탓하랴만 생각할수록 안타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야~~~호~~~!"

시끄럽다. 하도 어지러운 세상. 이런 꼴 저런 꼴 보기 싫고 듣기 싫어 찾는 숲 속에 어찌 저리도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이 또 나타났을까? 안타까운 마음 달래며 산을 내려오는데 거기 한 젊은 남자가 노래를 부르며 가고 있었다.

40대로 보이는 남자! 어쩌다가 행여 일자리를 잃고 삭이지 못할 한을 풀어내려고 산을 찾았을까, 소리를 질러대고 있을까! 측은한 생각에 보고 또 본다.

하지만 여기는 무등산 숲 속. 조용히 묵상하는 나무들이며 새들이며 산사람들도 생각해주면 어찌 아니 좋으랴 싶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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