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사람 달래는 건 정부몫”

일본군 위안부 원혼 달랜 황해도 굿보전 전수회 회원들

등록 2003.12.10 16:41수정 2003.12.10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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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꽃같은 나이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여인들의 혼을 위로하기 위한 해원진혼굿이 11월 29일 서울동부여성발전센터에서 열렸다

꽃같은 나이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여인들의 혼을 위로하기 위한 해원진혼굿이 11월 29일 서울동부여성발전센터에서 열렸다 ⓒ 신바람예술학교 제공


지난 11월 29일 ‘황해도 굿 보전 전수회’는 서울 동부여성발전센터에서 ‘일본군 위안부를 위한 해원진혼굿’을 벌였다.

회장 김상순(38)씨는 13년 전인 1990년 ‘또하나의문화’가 주최한 일본군 위안부 진혼굿에서 처음 위안부에 대해 알게 됐다. 이후 무속생활 19년 중 13년을 일본군 위안부들에 대한 짐을 안고 살았다. 그리고 2003년, 10명의 전수회 회원들과 함께 사비를 들여 ‘일본군 위안부를 위한 해원진혼굿’을 벌인 것이다.

한결같이 고운 중년의 여인인 전수회 회원들은 굿을 준비하며 아프지 않은 이가 없고, 굿을 하면서 울지 않은 이가 없다고 한다. 회원들은 굿을 끝내고 나면 홀가분해질 줄 알았던 마음이 더 무겁고 아프다고 말한다.

손유애씨는 “굿하고 나면 개운할 줄 알았는데 더 무겁고 아프다. 10만에서 20만이라는 희생자 중 겨우 300명 몫의 넋만 달랬을 뿐이니 나머지는 허공을 떠돌 텐데…”라며 죄스러워한다.

김명식(47)씨는 “혼신을 모시는데 태산같이 많았다”며 그 “무게감으로 다리가 후들거려 주저앉고 말았다”고 말한다.

오수자(46)씨는 여전히 울음 섞인 목소리로 “위안부 이야기를 말로만 들었지 이만큼 고통스럽고, 슬프고, 악몽 같은 느낌인 줄 몰랐다. 일본은 할머니들이 죽을 때만 기다리는데, 그 분들 돌아가시기 전에 사죄를 받아야 한다”라고 말한다.

“일본은 할머니들 죽기전에 사죄해야”


a “굿하고 나면 개운할 줄 알았는데 더 아프다. 겨우 300명 몫의 넋만 달랬을 뿐이니…” 황해도 굿보전 전수회 회원들.

“굿하고 나면 개운할 줄 알았는데 더 아프다. 겨우 300명 몫의 넋만 달랬을 뿐이니…” 황해도 굿보전 전수회 회원들. ⓒ 신바람예술학교 제공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평소 연구한 적도 없고 그저 무속인으로 살아왔을 뿐인 이들은 위안부 여성들과 한세대를 살아온 듯 그들의 목소리를 대신한다.

노순자(54)씨는 “할머니라지만 그때는 앳된 소녀였다. 무서운 전쟁 속에 힘없는 나라에 태어나 죽었는데 그걸 묻어두고만 있다니 ‘열불’이 난다”고 한탄한다.


이용려(45)씨는 “탑돌이를 하는데 너무 떨리고 추웠다. 혼신들은 논두렁에서 아랫도리를 드러내고 죽은 것을 수치스러워 하며 감추고 싶어했다”고 당시 느낌을 이야기한다.

같은 여성으로서 그저 달래보자고 시작한 해원굿이 앞으로는 징용, 전쟁, 학도병, 호국대로 끌려간 젊은이들을 달래는 진혼해원굿으로 더 커질 모양이다. 오수자씨는 “언제 또 만날까가 이제 걱정”이라며 기약할 수는 없으나 앞으로도 고통스럽지만 혼을 달래는 일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한다.

전쟁희생자 전담 ‘민주무당’ 별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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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바람예술학교 제공

김상순씨는 “4·3희생자, 일본군 위안부 진혼굿, 전쟁희생자들을 위한 굿을 하다보니 ‘민주무당’이라고 하더라”며 “해원굿을 하고 보람이 더 커졌다”고 말한다.

하지만 전수회 회원들은 무당은 죽은 이의 넋은 위로하지만 산 사람의 마음을 달래는 것은 정부의 몫이라고 이야기한다. 일본으로부터의 공식 사과와 위안부 여성들의 생계대책을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김명식씨는 “앞으로 이런 비극이 없어야 한다. 진작 정치인들이 나섰어야 하고, 끝까지 할 수 있는 데까지 해야만 한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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