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관객 위한 쇼는 이래야 한다

하드코어 밴드 림프비즈킷 내한공연

등록 2003.12.12 14:28수정 2003.12.12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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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잠실실내체육관에서 림프비즈킷의 첫 내한공연이 있었다.
10일 잠실실내체육관에서 림프비즈킷의 첫 내한공연이 있었다.좋은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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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쿵쿵-쿵쿵 대-한-민-국!

조명이 모두 꺼져 컴컴한 공연장. 무대를 가리고 있던 검정색 대형 막 사이로 밝은 빛이 새어나오면서 드럼소리와 함께 낯익은 박자와 어설픈 외국인의 발음이 들려온다.


서태지 음악의 모태였던 미국 하드코어/핌프록 밴드 '림피비즈킷(Limp Bizkit)'의 내한공연의 오프닝은 아무도 예상치 못한 "대한민국"으로 시작됐다. 모두들 갑작스런 출발에 놀랐지만, 이내 모두 하나가 돼 잠시 동안이나마 2002월드컵의 뜨거웠던 전율을 느낄 수 있었다.

이어 묵직한 드럼과 베이스를 바탕으로 금속성 짙은 기타의 강력한 파열음은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의 체온을 점차 뜨겁게 달구기 시작했다. 거기에 카리스마 넘치는 프레드 더스트(Fred Dust) 보컬은 공연장 분위기를 한바탕 난장판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광란! 11일 저녁 8시부터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림프비즈킷의 공연은 그야말로 '관객들을 위한 쇼는 이래야 한다'는 모범답안을 보여줬다.

관객들을 위한 쇼는 바로 이런 것

림프비즈킷은 이런 밴드다

▲ 림프비즈킷의 보컬 프레드 더스트가 관중들 사이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타투이스트(문신예술가)를 하면서 Korn의 문신을 해주다가 발탁된 프레드 더스트에 의해 국내에서 림프비즈킷은 1997년 조지마이클의 Faith를 리메이크 해 홍대앞 클럽가에서 알려지기 시작했고, 2000년 서태지가 자신의 앨범을 하드코어/핌프록이라고 언급, 가장 대표적인 밴드로 림프비즈킷을 꼽으면서 인기몰이를 했다.


이후 영화 '미션임파서블2'의 주제가 Take a look around로 팬들에게 이름을 각인시켰다. 림프비즈킷은 1997년 'Three Dollar Bill Y'All' 앨범을 시작으로 올해 'Results May Vary'까지 총 4장의 앨범을 내면서 전세계 수천만 장의 앨범 판매고를 기록하며 변함없는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이들은 힙합과 록을 접목시켜 강하면서도 리드미컬한 사운드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팝스타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전 애인으로도 유명한 보컬 프레드 더스트는 "최고의 음악은 댄서블해야 한다"고 공공연히 외치며 공연장을 광란으로 만들기로 유명하다.
이날 공연은 소위 스타급 음악가들이나 예술가들이 무대에 섰을 때 보여주는 거만함이나 가끔씩 해외 음악가들이 내한해서 보여준 성의 없음(왜냐면 일본 공연의 리허설 성격이 강했기 때문. 공연 개런티는 일본의 반 수준이라고 한다)을 불식시키기에 충분했다.


관객들을 위해 이들이 배려하고 있다는 것을 그 자리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스탠딩과 좌석으로 나눠 입장한 이날 공연에서 보컬 프레드는 보디가드들의 목말을 타고 직접 관객 안으로 들어와 노래를 부르기도 했고, 객석 뒤와 심지어 무대와 멀리 떨어진 2층 좌석에 거의 기어가다시피 올라가는 성의를 보였다.

물론 프레드의 만족한 표정과 달리 엄청난 덩치의 다국적(?) 보디가드(동양인 1명, 흑인 1명, 백인 1명 등 3명)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긴장 가득한 얼굴을 해 대조를 이뤘다. 한 음악전문가는 "15년 동안 국내 해외 음악가들의 공연을 봐왔지만 이렇게 객석에까지 와서 노래 부르는 가수는 처음"이라고 놀라기까지 했다.

또 시작부터 '대한민국'이라는 의외의 카드로 팬들을 감동시키더니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며 한국에 대한 애정을 보여줬고, 커튼콜 앙코르 곡 또한 3곡이나 불러 팬들의 열광적인 갈채를 받았다.

물론 지난 10월 4일 내한했던 '마릴린 맨슨'과 같은 달 29일 공연을 가진 '린킨파크' 역시 이전 공연에 비해 호평을 받았음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가수들이 무대 아래로 내려와서 관객들과 직접 호흡하는 등의 시도는 그만큼 강한 인상을 심어 줬다.

히트곡과 새앨범의 조화

이날 공연의 오프닝은 저녁 8시부터 서태지 제작 1호 밴드인 '피아'가 맡았다. 이들은 지난 10월 린킨파크(Linkin Park) 공연 때도 오프닝을 맡아 인상 깊은 연주를 들려준 바 있다.

이후 20여분간의 중간휴식 뒤 환하던 공연장 불이 꺼졌다. 8시45분께 검정 커튼이 떨어지고 지직거리는 금속음들을 앞세운 3집 앨범 수록곡 'My Generation'이 시작됐다. 비즈킷 맴버들은 모두 면티셔츠와 반바지 등 편한 복장으로 무대에 섰다. 관객들은 손을 위로 번쩍 들고 리듬에 몸을 맡겼고 껑충껑충 뛰기도 하고 서로 몸을 부딪치는 '슬램(Slam)'을 하면서 공연을 만끽했다.

복잡하지 않은 무대 구성이었지만 DJ를 맡은 DJ 러셀(DJ Lethal) 앞에 차곡차곡 쌓인 파랑과 흰색 스피커 5대에서 레이저빔 같은 조명과 리드미컬 하게 바뀌는 다른 조명이 묘한 조화를 이뤄 흥을 돋웠다.

"감사합니다"라고 말을 하는 보컬 프레드의 인사와 함께 이어진 곡들 역시 분위기를 뜨겁게 달아오르게 했다. 이들은 '미션임파서블2'의 주제가로 인기를 모은 'Take a look around', 1집 수록곡인 조지마이클의 리메이크 곡 'Faith', 2집 'Nookie', 3집의 'Hotdog', 최근 발표된 4집에서 'Eat you alive' 등 인기곡을 연주하며 하드코어의 진수를 보여줬다.

특히 공연 동안 프레드는 브리이크 댄스를 추기도 하고 겉옷을 벗기도 하면서 스스로 즐기는 모습을 보였고, 관중들을 무대위로 불러 함께 무대를 이끌기도 했다.

또 이들은 예정된 순서가 끝난 뒤에도 무대에서 맴버들과 이야기를 나눈 뒤 앙코르 곡을 즉흥에서 들려주기도 했다. 프레드는 'Special just for you'라며 곡을 이어갔고 마지막으로 "One more?"라며 한곡을 더 선사했다.

"안 왔으면 후회할 뻔 했다"

프레드가 객석 위에 있는 스탠드석까지 올라와 관객사이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프레드가 객석 위에 있는 스탠드석까지 올라와 관객사이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좋은콘서트
밤 10시20분께 공연이 끝난 뒤에도 관객들은 한참 동안 혹시 모를 앙코르를 기다리며 자리를 지켰다. 결국 완전히 끝났음을 알아챈 관객들은 차례로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대부분 관객들의 얼굴은 2시간여 동안의 난장에 상기돼 있는 표정. 그러나 깊이 배어있는 만족감들을 엿볼 수 있었다.

사실 올해 국내 한 록음악 잡지에서 선정한 '팬들이 뽑은 최악의 앨범순위' 2위가 이들의 새앨범 'Result May Vary'였다. 이번 음반은 음악성과 대중성 사이에서 표류한다는 혹평을 받았고, 특히 이전과 다르게 느린 곡들이 많아 공연에는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는 비판적인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막상 공연을 직접 보니 "오히려 계속해서 밀어붙이는 식이 아니라 중간 중간 적절히 분위기를 전환해줄 수 있는 역할을 이번 음반의 곡들이 할 수 있었다"는 평가가 들리기도 했다.

공연장을 나서던 언더록 밴드 위치스의 보컬 하양수씨는 "지난번 린킨파크 공연보다 훨씬 좋았다"며 "무대매너, 관객들을 위한 배려는 '짱'이었다"고 극찬했다.

헤비록 밴드 크래쉬의 보컬겸 베이스 안흥찬씨 역시 "기존의 거물급 그룹들과 비교해 더 자유스럽게 진행된 공연이었다, 재밌었다"고 말한 뒤 "다만 새음반의 곡들이 많이 들어가 조금 아쉽긴 하다"고 평가했다.

새로 출범할 음악전문 캐이블방송 EM미디어의 성시권 PD는 "안 왔으면 후회할 뻔했다, 이전까지의 내한공연들은 대부분 일본의 작은 도시 정도의 성의 없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오늘 이들은 몸을 사리지 않고 충실한 공연을 보여줬다"며 "아쉬운 것이 있다면 전체 연주시간이 짧았다는 것 정도"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날 입장한 관중은 5천여명이라고 공연을 기획한 좋은콘서트 측은 밝혔다. 그러나 흥행에는 실패했다고 한다. 이는 대부분 학생이 주를 이룬 록매니아인 가운데 10월부터 2달 사이에 유명밴드들의 내한이 계속 이어져 8만원 전후의 비싼 관람료를 내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이런 가운데 내년 1월 29일에는 림프비즈킷을 발굴해 대표적인 밴드로 키우고 하드코어/핌프록의 초기 주자인 Korn이 서태지와 함께 공연이 계획돼 있어 흥행에 성공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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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동안 한국과 미국서 기자생활을 한 뒤 지금은 제주에서 새 삶을 펼치고 있습니다. 어두움이 아닌 밝음이 세상을 살리는 유일한 길임을 실천하고 나누기 위해 하루 하루를 지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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