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으로 타는 태양의 즐거운 울림

갑신년을 여는 표선리 바닷가에서

등록 2004.01.01 13:59수정 2004.01.01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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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갑신년의 태양은 떠 오르고

갑신년의 태양은 떠 오르고 ⓒ 김강임

어둠은 새를 낳고, 돌을
낳고, 꽃을 낳는다.
아침이면,
어둠은 온갖 물상을 돌려주지만
스스로는 땅 위에 굴복한다.
무거운 어깨를 털고
물상들은 몸을 움직이어
노동의 시간을 즐기고 있다.
즐거운 지상의 잔치에
금으로 타는 태양의 즐거운 울림.
아침이면,
세상은 개벽을 한다.


(박남수 시인의 '아침 이미지' 전문)


새벽 5시 30분, 세상은 아직 잠들어 있었다. 제일 먼저 무거운 어깨를 털고 몸을 움직이는 것은 일출을 보기 위해 떠나는 자동차들의 행렬이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달리는 차량 행렬이지만, 오늘은 어쩐지 그 의미가 다르게 느껴진다. 항상 처음이라는 말은 신선하고 야릇한 설렘이 있다.

새해 첫날 , 그것도 처음으로 밝아 오는 태양을 맞이한다는 것은 참으로 감격스러운 일이다. 비록 지난 한해는 힘들고 안타까운 일이 많았었지만, 무사히 한해를 잘 넘겼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다.

a 여명

여명 ⓒ 김강임

우리 가족이 도착한 곳은 표선 해수욕장 부근에 있는 조그만 해안도로였다. 무거운 눈꺼풀을 비비고 1시간을 달려왔는데도 바닷가 해안 마을에는 아직 동이 트지 않았다. 동쪽으로 달려가자, 조그만 표선리 바닷가는 고요가 흐르고 있었다.

" 엄마 여명이 트고 있어요."


딸애의 말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여명! 가슴을 따뜻하게 해주는 말이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 커튼을 젖히면 늘 동쪽 하늘은 상기되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항상 동쪽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축복받은 사람들이라고 여겼다. 남들보다 하루를 먼저 시작할 뿐 아니라, 늘 여명의 순간들을 맞이할 수 있으니 말이다.

정말이지 동쪽으로 달려가니 내가 사는 곳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여명의 물상들을 느낄 수 있었다. 나보다 더욱 간절하게만 해를 기다리는 것은 바닷가에 무수히 깔려있는 이름 없는 돌과 갈매기. 그리고 이름 없는 생명체들이다.


a 아침을 기다리는 것들

아침을 기다리는 것들 ⓒ 김강임

지난밤 어둠이 너무 깊었기 때문일까? 새해를 맞이하는 온갖 물상들은 비상을 하며 새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 멀리 보이는 해안 마을과 등대. 바닷가 생물들을 보니 박남수 시인의 '아침 이미지'가 생각났다.

새해 첫날에 뜨는 해는 누구에게나 특별함이 있다. 그것은 저마다의 소원을 담아 마음속에 간절히 띄워 보내는 소원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즐거운 지상의 잔치에 모두가 주인공이 되어 또다시 떠오르는 갑신년 해는 태양처럼 이글거렸으면 좋겠다.

a 어둠은 새를 낳고...

어둠은 새를 낳고... ⓒ 김강임

그래서일까? 새해 첫날에 뜨는 해는 쉬이 떠오르지 않는다. 인내하고 기다리고 마음속 깊이 염원해야 그 모습을 드러내 보이는 태양. 갑신년 새해 첫날의 태양도 마중 나온 사람들의 애간장을 태웠다.

바다는 잔잔한데 왜 이리도 태동이 없을까? 그것은 수평선 위에 검은 구름이 짙게 깔려 있기 때문이다. 벌써 해뜰 시간은 지났는데도 진통이 시작되지 않으니 바닷가 마을은 술렁대기 시작한다.

a 구름과 숨바꼭질

구름과 숨바꼭질 ⓒ 김강임

7시 50분. 갑자기 구름 속에서 무엇인가 잉태하고 있었다. 마치 엄마 품에서 자라고 있는 태아의 모습처럼 금줄을 두른 붉은 덩어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곳 저곳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구름의 시샘은 지난해의 경제 사정만큼이나 혹독했다. 그러나 구름을 타고 다시 돌아온 태양은 수줍은 듯, 그 모습을 드러내 보이지 않았다. 모두가 간절해지는 순간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어젯밤까지 간직했던 소망도 모두 잊어 버렸다. 그리고 오직 해가 떠오르기만을 기다렸다. 구름을 타고 온 해는 이미 바다 속에서 진통을 끝내고 돌아왔다. 기다림에 애를 태웠던 만물은 구름을 타고 불끈 솟아오른 아침해를 보고 또 보았다.

a 기다림에 얼굴을 내밀고

기다림에 얼굴을 내밀고 ⓒ 김강임

그 속에 무엇이 담겨 있을까?
못다 이룬 꿈. 희망. 소망. 그리고 모든 이의 건강. 언제나 그러했듯이 새해 첫날에 내가 빈 소원은 변함이 없다. 그러나 올 한해는 새해 첫날 떠오르는 아침해처럼 '금으로 타는 즐거운 울림'이었으면 좋겠다. 어둠 속에서 다시 잉태하는 붉은 태양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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