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삶의 방식을 바라보기

[서평] <콩깍지 사랑>(추둘란 지음)

등록 2004.01.02 13:49수정 2004.01.02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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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콩깍지 사랑

콩깍지 사랑 ⓒ 소나무

"둘이 먹지, 얼마 되지도 않는 걸 뭐허러 나누남."(31쪽)

이 말이 작은 것이라도 나누려는 마음에 대한 고마움의 인사라는 것을, 글쓴이가 설명을 덧붙이기 전에 난 알지 못했다.


"애기 엄마는 어디 가유? 난 은하 가는디……. 차가 언제 올라나."(191쪽)

그리고, 이것이 한글을 모르는 할머니가 '은하'에 가는 버스가 오면 알려달라고 건네는 말이라는 것을, 역시 알 수 없었다.

삶의 방식뿐 아니라 말하기 방식도 조금은 다른 곳의 이야기를 읽기 시작하면서, 나는 이 글을 통해서 내가 감동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다만, 나와 다른 생활을 하는 사람, 도시를 특히 도심을 좋아하는 나와는 다른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하며 사는지 호기심이 생겼을 뿐이다.

그러면서 절대 감상적이 되지 않으리, 싸구려 감수성을 자극하는 일에는 절대 동요되지 않으리라는 결심도 했다. 하지만, 글을 읽으면서 그런 마음의 빗장이 나도 모르게 조금씩 풀리는 것을 느꼈다.

내가 그렇게 경계심을 품었던 것은, '다운천사와 울보엄마의 시골이야기'라는 말을 표지에서 봤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장애아를 키우는 엄마의 눈물겨운 수기쯤으로 이 글을 오해하는 마음도 있었나 보다.


하지만, 이 책은 이런 나의 우려를 말끔히 씻어주었다. 글쓴이의 아들이 장애아라는 사실 역시 다른 사람들에게나 특별한 일이지, 정작 글쓴이에게는 다른 아이와 다를 바 없는 그저 사랑스러운 아들일 뿐이었다.

글쓴이는 시골(좀더 적절한 표현이 있다면 좋겠는데) 생활에서 겪게 되는 매우 사소한 일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그 솔직하고 개인적인 이야기는 예민한 감수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결코 읽는 이에게 감동을 강요하지도 않으며, 섣불리 무언가를 가르치려 들지도 않는다.


그저 시골에서 살면서 알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 장애아를 키우며 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된 이야기, 서른을 넘기면서 이십대에는 알지 못했던 것을 깨닫게 된 이야기, 도시에서와는 다른 삶의 방식을 익혀가면서 달라져 가는 자신에 관한 이야기…….

이 책을 읽는 동안 계속 머릿속을 떠다니던 말은 '도대체 잘 산다는 것은 뭘까,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걸까'하는 것이었다. 글쓴이야말로 정말 자신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시에서 신었던 양말들이 밀려난 것처럼,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해 배웠던 삶의 방식들도 하나씩 밀려나, 이제 저는 좀더 편안하고 느슨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좀 다른 뜻으로 그 일을 받아들입니다. '왜 그런 실수를 했을까?' 자책하던 것을 '왜 그렇게 얽매여 살았던가?'하고 어리기만 했던 저를 여유롭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97~99쪽에서 발췌)

글쓴이는 도시 생활에서는 깨닫지 못했지만 시골에서 살면서 깨닫게 된 것이 많다고 한다. 하지만, 누구나 시골(정치적으로 좀더 올바르고 자연스러운 표현이 없을까)에서 생활한다고 해서 글쓴이와 같은 깨달음이나 삶의 새로운 의미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고, 글쓴이 또한 그렇게 말하고 있지는 않다.

시골에서 사는 것은 아니지만, 시골에 가서 살고 싶지는 않지만, 나도 글쓴이처럼 내 삶을 제대로 '살'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생각해 보았다. 바로 지금 내 자리에서 말이다. 의미도 없이 쫓기거나 휘둘리지 않고, 정말 내 삶을 '살아낼' 수 있는 지혜를 나도 이 도시에서 찾을 수는 없을까 라는 고민을 해본다.

도시에서 종종거리며 살면서도 어쩌면은 글쓴이가 보여주는 삶에 대한 여유과 느슨함을 흉내낼 수는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자연과 가까이 살고, 또 그곳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글쓴이의 이런 감수성은 흉내낼 수 없을 것 같다.

"소나무의 굴곡이 여느 때와 다르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마치 편안히 이야기할 때 이쪽저쪽 모로 눕는 할배들처럼, 어떤 날은 늙은 소나무 할배들이 정말 몸을 뒤척이거나 모로 돌아눕기라도 한 것 같답니다.

… 그러고 보니 소나무 할배들은 솔숲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마을에는 옛날 한옥을 새로 고친 집이 몇 있는데, 대개 들보 같은 뼈대는 그대로 두었습니다. 현대식으로 고친 집에 살림살이도 다 현대식, 그런데도 옛것 그대로인 굵직한 소나무 들보를 보고 있노라면 묘한 느낌을 받곤 합니다. 소나무 곁에 살던 사람들은 죽어 소나무 아래 묻히고, 사람 곁에 살던 소나무는 죽어 사람의 집으로 들어가 자자손손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것입니다."
(106쪽)

그리고, 이런 감수성과 더불어 곳곳에 나타나는, 그렇지만 결코 읽는 이를 불편하게 만들지 않을 정도의 예민함이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 아닐까 싶다. 소소한 일상에서, 무심히 지나칠 수 있는 이웃들의 모습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작은 들꽃 하나에서도 잠시 멈춰 서서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지혜와 그것을 담담하게 글로 풀어낼 수 있는 능력, 이 두 가지가 열심히 밑줄을 그어가며 책을 읽게 만든 것 같다.

아이랑 씨름하고 있는 언니를 보면서, 그 동안 잘못 산 것 같다는 친구의 푸념을 들으면서 불쑥불쑥 이 책 생각이 났던 걸 보면 나는 이 책이 꽤나 마음에 들었나 보다. 처음에 가졌던 경계심 없이 마음을 열고 다시 읽는다면, 더 큰 울림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어떻게 사는 것이 정말 잘 '사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자신의 삶에 충실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사람을 사랑하고 함께 어울려 사는 것이 왜 중요한지 등에 대해서 말이다.

덧붙이는 글 | 도서정보 사이트 리더스가이드(www.readersguide.co.kr)의 베스트리뷰로 뽑힌 구번일(bunilee) 님의 글입니다.

덧붙이는 글 도서정보 사이트 리더스가이드(www.readersguide.co.kr)의 베스트리뷰로 뽑힌 구번일(bunilee) 님의 글입니다.

콩깍지 사랑 - 추둘란의 마음이 따뜻해지는 수필집

추둘란 지음,
소나무,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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