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 우리의 이야기

서강훈의 즐거운 고딩일기

등록 2004.01.02 13:37수정 2004.01.02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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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쪽지 시험 보던 날, 책상의 수난을 아십니까?

서강훈
고3이 되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우리에게 세상이 요구하는 시험은 너무도 많았다. 매달 학원에서 봤던 모의고사와 1년에 네 번 학교에서 보는 중간고사, 기말고사. 그리고 지독히도 매주 봐야 했던 영어 쪽지시험까지…….

이렇게 많은 시험이 있었지만, 학생들을 제일 힘 빠지게 만들었던 것은 어이없게도 시험 시간 5분의 보잘것없었던 쪽지 시험이 아니었던가 싶다. 고3 기간, 일상처럼 공부해 온 것은 수능에 관련된 것, 즉 모의고사 공부였기 때문에 그런 공부가 힘들다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학교에서 봤던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는 시험 일주일을 앞두고 언제나 벼락치기 공부를 해왔기 때문에 그때만 고생하면 됐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의 특성상 단기간에 열을 올려 공부해도 성적이 어느 정도는 나왔기 때문에 우리는 벼락치기를 하곤 했다. 게다가 고3 기간은 말이 1년이지 사실은 1년이 채 되지 않는 시간이어서 내신 공부를 하기가 왠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중간고사, 기말고사 공부를 해도 아깝다는 생각을 할 판인데, 매주마다 보는 쪽지 시험은 그야말로 우리를 히스테리로 몰아가곤 했다. 또한 쪽지 시험 공부는 중간고사, 기말고사처럼 뒤로 미룰 수 있는 성격의 시험도 아니었다. 참다 못해 학생들은 가끔, 쪽지 시험을 보는 선생님께 항변하기도 했다.

"선생님, 너무 하신 거 아니에요? 다른 학교는 우리 학교처럼 쪽지 시험도 안 보고, 중간고사, 기말고사 공부도 조금하라고 쉽게 낸다는데. 우리는 쪽지 시험도 매주 보고, 중간고사도 어렵잖아요."

선생님께서는 그때마다 "지금 쪽지 시험 보는 것도 다 수능에 도움이 될 거야. 수능에 어떤 단어가 나올지 어떻게 아니? 그리고 아무리 수능 위주의 공부를 한다 하더라도 필요한 공부는 꼭 해야지"하고 말씀하시며 원론적인 말씀만 하셨다. 우리는 억울해도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쪽지 시험도 내신에 점수가 들어가는, 엄연한 시험은 시험이었다.


그래도 몇몇 아이들은 끝까지 반항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반항은 할 수 없었다. 소심한 고3이 할 수 있는 거라곤 다만 쪽지 시험 공부를 하지 않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선생님은 '반항'임을 인지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네들 모두 쪽지 시험을 제대로 치렀기 때문이다. 다 맞은 치는 드물었지만 모두 적어도 반 이상은 맞힐 수 있었다.

이유는 그 치들이 그 많은 단어를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도 책상에 답을 몰래 써 놓고 쪽지 시험을 치렀기 때문이었다. 영어 시간은 월요일 점심 시간 직후였다. 그날은 점심을 먹고 나면 몇몇 치들이 일찌감치 자리에 앉아 무엇인가를 열심히 적었다. 그 몇몇의 영어 쪽지 시험 흔적은 지금도 남아있다. 개개인의 책상에, 가끔은 교탁 바로 밑에 말이다(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은 바로 이 경우를 이르는 말이다).


그렇게 꼭 영어 쪽지 시험이 있던 날이면, 책상이며 벽과 같은 자기 혼자만 볼 수 있는 공간은 볼펜이며 수성 사인펜으로 수난을 당했다. 주로 책상이 그런 공간이었는데 영어 쪽지 시험 보는 날은 말 그대로, 책상 수난의 날이었다.

지금, 그 수난의 흔적을 보면서 비겁하지만 그토록 점수에 절박할 수밖에 없었던 내 지난날을 떠올린다. 그리고 또 다시 그 절박함을 이어받을 내 아래의 고딩들을 생각해 본다.

X와 Y에 대한 낙서, 우리들의 일그러진 성의 모습

남자 학교는 참으로 무미건조한 곳이다. 3년 내내, 남학생들끼리 아무리 친근하게 지낸다고 해도 학교 안에서 이성에 대한 긴장이 없다 보면 학교 분위기가 건조해질 수밖에 없다. 또한 이성에 대한 긴장이 없는 상황이 계속해서 이어지면서, 이성에 대한 이해 역시 부족하게 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인간적인 대면 접촉(?)이 없다 보니 모르는 대상에 대한 약간 왜곡된 시각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어떤 감상적인 치들은 예쁘고 다소곳하게 생긴 여성에 대한 순수한 환상(?)에 빠진다. 그리고 음란물에 중독된 가련한(?) 치들은 여성을 '행위'의 대상과 단지 멋진 몸매의 소유자로 보는 남자다운(?) 시각을 가지게 된다.

그 중에서 후자의 경우는 친구 사이에 우정을 다지며 주고받는 포르노 파일에 의해서 급속히 확산되기 쉽다. 즉 음란물을 쉽게 구할 수 있는 환경 속에서 대다수의 남학생들이 음란물을 접하게 되고, 그런 음란물은 남학생들의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서강훈
성에 대한 왜곡된 시각은 곳곳의 낙서를 통해서 그 모습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화장실에 가면 으레 있는 낙서들, 교실 벽 후미진 곳에 있는 낙서들, 칠판에 그려 놓는 낙서까지…….

낙서는 주로 팔 할이 X와 Y를 그려놓은 것뿐이다. 그 방식하며 발상은 딱 음란물의 그것을 빌려왔다. 그 밖에는 특정한 개인의 이름을 써놓고 '누구 누구는 포르노 테이프를 100개나 봤다'라는 장난 투의 낙서들이다.

그 낙서들이 언제 누구가 한 것인지는 절대 알 수 없다. 무수히 생겨났다가 사라지고, 또 다시 생겨나는 낙서들. 그것은 화장실 청소를 하시는 아주머니와 아저씨들의 수고를 가중시킨다.

한창 혈기왕성한 남학생들만 모여 있는 남자 고등학교. 그 남학교 곳곳에는 성에 대한 발칙한 낙서들이 있다. 또한 남자 고딩들의 왜곡되고 과장된 성이 가감 없이 드러나는 곳, 그곳에 우리들의 일그러진 성의 모습이 있다.

바보 같은 우리네의 별명, 낙서로 영예로운 출석부 속에 길이 남다

"똥쟁이!"

이 별명은 본인이 학기 초에 얻은 매우 불명예스러운 별명이다. 깨끗하고 성실한 이미지를 쌓으려(?) 항상 노력을 해 왔던 터라, 급속하게 확산되는 별명과 그것으로 인해 나의 이미지를 상실해감을 느꼈을 때 나는 '아차'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서 지금도 내 별명은 '똥쟁이'다. 가끔 들춰보는 친구들의 핸드폰 속에서 나는 내 이름이 아닌 꼭 별명으로 저장되어 있다.

어떻게 이런 별명을 얻게 되었는가 하면 사연은 길다. 때는 고3 초, 나는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졌다. 코피를 흘리는 대신 나는 화장실을 들락날락거렸다. 심하면 하루 4번까지 갈 정도였으니 그런 별명을 얻을 수밖에……. 아침 조회 시간에도, 수업 시간에도, 야자 시간에도 나는 화장실에 가야만 했다. 내 속에 무언가 있다는 것이 께름칙하게 느껴졌다. 그 때 내 장은 극도로 예민했다. 휴지는 필수품이었다.

지금은 '제대 말년'의 고딩으로서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와 있다. 내 장은 확실히 건강하다. 그래서 친구들이 여전히 "어이, 똥쟁이!" 할 때마다 나는 완강히 부인한다.
"이제는 하루에 한 번밖에 안간 다니까."
그래도 내 별명은 여전하다.

별명을 만들어 내는 유형에는 딱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독특한 이름, 둘째는 생김새, 셋째는 평소의 우스꽝스럽거나 독특한 행동이 그 아이의 별명을 만든다.

별명이란 것 자체가 남을 깔아내려 좌중을 웃기는 것이기 때문에 별명으로 인해 놀림 받는 것을 싫어하는 아이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그 아이는 시간이 갈수록 자연스레 친구들이 별명을 부르던 부르지 않던 신경을 쓰지 않게 된다. 이내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사실 별명이 있고 설사 그 별명이 자신의 맘에 들지 않는다고 해도 싫어할 이유는 못된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별명이 있다는 것은 친구들과 친밀하게 잘 지내고 있다는 반증이 아닌가. 그만큼 친구들이 나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이고, 놀림 받는 것도 우습게 잘 받아 넘기기만 한다면 그다지 질이 나쁜 농은 아닌 것 같다.

우리 반의 경우는 친목이 돈독해서 서로 우스꽝스러운 별명을 잘도 지어서 불러주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의 점심 시간,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그간 입을 통해서만 부르던 별명을 집대성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출석부 앞에 있는 사진란. 그곳에 우리는 사진 대신 각 번호별 친구의 별명에 걸맞은 그림을 그려 넣었다. 그림 담당은 단연 미술을 공부하는 H군의 몫이었다.

서강훈
7번 M군은 평소의 행실때문에 '폭력경찰'이 별명이었으며, 8번 P군은 '군인'이 별명이었다. 재깍 그 둘의 사진란에는 무장 경찰의 모습과 군인의 모습이 그려졌다. 그리고 16번 Y군은 생김새가 미즈노 교수를 닮아 별명이 '미즈노'였고 그 다음 번호 친구의 별명은 축구 선수 이천수를 닮았다고 해서 '이천수'였다. Y군의 사진 란에는 미즈노 교수의 일그러진 사진이, 다음 번호를 가진 친구의 사진란에는 프리메라리그에서 활약 중인 이천수의 사진이 붙여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바보 같은 별명들이며, 장난놀이가 아닐 수 없지만 서로를 허물없이 부르도록 새로 만든 명칭인 별명은 꽤나 정겹다. 그 못 잊을 정겨움은 아마도 우리 반 출석부가 폐기되는 날까지, 출석부 맨 앞 사진란을 장식할 것이다.

그리고 출석부를 장식했던 낙서는 친구 관계를 폐기처분 하지 않는 이상 내 뇌리 속에서 그 치들의 별명과 더불어 온건히 기억될 것이다. 남겨진 낙서와 더불어 우리들만의 이야기도 남은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인터넷신문 하니리포터에도 송고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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